시대와 국가의 희생양이 된 막시밀리안 황제

마네가 증언하는 프랑스 대외 정책의 참사


황제의 처형 장면을 다룬 이 작품의 주제는 프랑스군이 스페인 마드리드 민중을 처형하는 장면을 담은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데, 마네는 1년 반 동안 유화나 석판화를 통해 이 비극적인 사건을 계속해서 다루었다.

글 > 이미혜(경성대학교 교수)


막시밀리안 황제의 총살

1867년 6월 19일 멕시코 케레타로에서 막시밀리안 황제가 총살됐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일원인 막시밀리안은 멕시코 정치에 간섭하던 나폴레옹 3세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다가 3년 만에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19세기 중반 멕시코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858년 가난한 원주민 출신의 법률가인 베니스 후아레스가 대통령이 됐다. 당시 국민 대부분은 후아레스를 지지했으나 대지주·가톨릭 성직자들은 개혁에 격렬히반대했다. 멕시코는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다. 힘이 밀린 보수 세력은 프랑스에 원조를 요청했다. 해외 식민지 확장을 꾀하던 프랑스는 옳다구나 하며 이 사태에 개입했다. 나폴레옹 3세는 1862년에 군대를 파견했고,1864년에는 막시밀리안을 허수아비 황제로 내세웠다. 막시밀리안 체제를 통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합스부르크 왕가와 공고한 동맹을 유지하려는 이중 포석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뜻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프랑스 군은 반격에 나선 멕시코 공화군에 패배를 거듭했고, 1866년 결국 군대의 철수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퇴위를 거부하던 막시밀리안은 결국 공화군에 체포되어미구엘 미라몬, 토마스 메히아 두 장군과 함께 총살됐다. 1867년부터 1869년 사이에 마네는 이 사건을 주제로 대형 유화 석 점, 소형 유화 한 점, 석판화를 제작했다. 대형 유화 석 점 가운데 첫 번째 것은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멕시코 공화군을 본 적이 없던 마네는 군인들에게 멕시코인의 일반적 복장인 통 넓은 바지를 입히고, 솜브레로라고 하는 챙이 넓은 모자를 씌웠다. 사람들 표정은 그려 넣지 않았다. 몇 달 뒤 마네는 이 그림을 밀어 놓고 두 번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은밀히 퍼진 처형 현장의 사진과 판화를 접한 마네는 멕시코 군복이 프랑스 군복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림 속 드러난 마네의 증언

두 번째 그림부터는 군인들이 말쑥한 유니폼을 입고,원통형 모자를 쓰고 있다. 사람들의 얼굴 특징도 알아볼 수 있다. 그림은 명확해졌지만 정치적 의미가 너무컸다. 막시밀리안의 죽음은 프랑스의 실패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예술을 검열했다. 그림은 전시될 수 없었고, 석판화도 출판되지 못했다. 그림들은 팔리지 않은 채 스튜디오에 처박혀 있었다. 1883년에 마네가 죽은 후, 유산 상속자인 의붓아들 레옹이 두 번째 그림을 네 쪽으로 쪼개버렸다. 에드가 드가가 부랴부랴 달려가 조각난 그림을 회수했지만 세 쪽밖에 거두지 못했다. 이 망가진 그림은 끼워맞춰져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다. 쿤스트할레 만하임이 소장한 세 번째 그림은 막시밀리안 시리즈의 최종 완성 버전이다. 마네는 몇 가지 세부 사항을 추가했다. 황제 오른편에 있는 메히아 장군이 총탄을 맞고 쓰러질 찰나다. 황제는 미라몬 장군의손을 잡고 꼿꼿이 서 있지만 너무나 창백해서 유령처럼 보인다. 미라몬 장군의 어두운 얼굴에서는 공포심이 역력하게 보인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배경에 그려넣어진 구경꾼들이다. 담장 위에서 사람들이 투우를관전하듯 이 장면을 주시하고 있다.


소설가 에밀 졸라는 “프랑스가 막시밀리안을 쏘았다!”라고 한 줄의 메시지를 남겼고, 이 그림들은 전시가 금지됐다. 이 그림들이 세상에 나온 것은 20세기로 접어든 후였다. 1905년에 첫 번째 그림과 세 번째 그림이 파리에서 전시되었고, 이어서 베를린에서도 전시됐다. 1910년에 쿤스트할레 만하임이 세 번째 그림을 사들였다. 연습 삼아 그린 소형 유화는 코펜하겐 글립토테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므로 현재 마네가 그린 그림 넉 점이 모두 프랑스 바깥에 있다. 예술의 나라, 관용의 나라로 자부하는 프랑스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작품은 껄끄러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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