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죽음, 유럽 ‘산업혁명’의 어두운 그늘
‘복지’는 ‘성냥팔이 소녀’를 구할 수 있을까?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이 ‘아동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그의 동화가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는 작품에 속할 만큼 인기가 높은 이유 중 하나는 ‘문명화’의 양면성이 공존하며, 교훈의 클리셰를 탈피하고 판타지 요소가 듬뿍 가미됐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품이자 결말이 너무나 강렬한 ‘성냥팔이 소녀’는 유럽 산업혁명의 양면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글 > 편집실
19세기 산업혁명기의 유럽을 모티브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1845년 12월에발표한 단편소설 ‘성냥팔이 소녀(The LittleMatch Girl)’의 결말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임팩트가 너무 강하여 꿈과 희망도 없는 잔혹동화로 통하는 안데르센의 대표작이다.
그의 동화가 아이들에게 적합한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아이들에게 읽히기에는 너무 잔혹하고 구슬프기 때문인데, 동화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즉, 작가들은 사회를 보는 자신의 관점을 동화에 투영했고, 동화는 그런 사회의 모습을 풍자한다.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연말인 겨울에 작은 소녀가 추위에 떨고있는 상황 속에서 성냥을 팔고 있었다. 소녀는 성냥이 팔리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혼났기 때문에 성냥이 다 팔리기 전까지는 집에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연말의 분주함 때문인지 소녀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깊은 밤에 소녀는 집 앞에서 성냥에 불을 붙였다. 소녀는 성냥의 불길과 함께 따뜻한 난로, 칠면조 등의 음식이 진열된 식탁, 크리스마스 트리 환상이 나타났다가 불길이 사라지면 동시에 사라진다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 소녀는 할머니가 “별똥별은 누군가가 죽어가는 상징이다”라고 말한 것을 떠올렸다. 다음번의 성냥에서 나온 불길에서는 할머니의 환영이 나타났다. 성냥의 불꽃이 사라지자 할머니가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 소녀는 당황해서 갖고 있던 성냥에 모두 불을 붙였다. 할머니는 밝은 빛에 휩싸이면서 소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천국으로 갔다. 새해 아침 소녀는 성냥을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죽었다. 그러나 소녀가 성냥불로 인해 할머니와 함께 천국에 가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가난은 오직 개인의 책임?
동화(童話)문학 이론가 잭 자이프스(JackZipes)는 민담이나 동화가 ‘문명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데, 문명화는 가치와 규범이 정착되는 과정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저항까지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동화는 당대 사회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철학, 도덕 등을 깨우칠 수 있도록 교훈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 재치 있는 은유적·상징적인 요소를 설치해 놓기도 하는데, 이는 동화 속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안데르센이 동화를 집필하던 시기의 덴마크는 지금의 복지국가 이미지와는 너무 딴판이었고, 산업혁명을 겪던 여느 유럽 국가들과 다를 바 없었다. 더욱이 『성냥팔이 소녀』가 출간(1845년)될 즈음, 유럽 중북부에는 대기근이 찾아와 덴마크 코펜하겐의 영아사망자가 230명(출생아 1천 명당) 선까지 치솟을 정도로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내아이에게 신발까지 빼앗겨 엄동설한에 맨발로 세상과 맞닥뜨려야 했던 성냥팔이소녀의 현실은 당시 유럽 주요 도시 빈민가정 어린이의 삶의 궤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추운 나머지 손이라도 녹여볼 요량으로켠 성냥불 속에 비친 판타지 세계는 소녀의 죽음을 더욱 애달프게 한다. 산업화의 물결은 유럽 전역의 지역공동체를 해체시켰고, 구성원들은 도시로 유입돼 파편화된 산업노동력으로 전환됐다. 빈민층은 자선단체나 종교기관 등이 베풀던 전통적인 빈민구제 시스템의 온정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교회들도 영국에서 제정된 ‘신구빈법’과 같은 중앙집중화, 획일화된 지침을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최우성 기자는 『동화경제사』에서 맨발의 어린 소녀가 헐벗은 옷차림으로 거리에서 성냥을 팔아야 했던 것처럼 산업화이후 가난은 오롯이 제 잘못이자 책임일 뿐이고, 가난을 벗어나는 일 역시 개인 몫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치명적인 작업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19세기 영국의 성냥공장 10대 여공들의 파업 사건도 소개하는데, 어쩌면 성냥팔이 소녀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성냥불 너머 환상을 꿈꾸던 수많은 하층민들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녀가 쓰러진 그곳, 행복지수 1위 나라로
성냥팔이 소녀가 추운 거리를 누비던 덴마크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체계’를 갖춘 나라로 탈바꿈했고, 교육·아동복지도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덴마크는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 중 1위나라, 이민 1번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덴마크는 2013년부터 4년간 행복지수 1위자리를 지켰다. 순위는 GDP 수준, 기대수명,관용도, 복지 수준, 자유도, 부패 등의 요소를1~10위까지 지수화해 종합지수가 가장 높은순서로 매겨진다. 덴마크를 비롯해 매년 10위권에 드는 나라는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스위스,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스웨덴, 호주 등으로 복지 수준이 높은 국가들이다.
대체로 북유럽 국가들이 행복도 조사에서 선전하는 까닭은 구성원들이 공동체에 소속됐다는 안정감을 느끼며, 고용 형태, 직업 유형, 일터 특성 등 전반적인 노동의 질도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사회복지는 불평등을 완화하고, 개인이 국가와 사회에 느끼는소속감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사회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체제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삼는 국가를 ‘복지국가’라고 할 때, 보편적 복지든 선별적 복지든 방법론은 다를지언정 대다수 국가는복지국가를 지향한다. 더욱이 OECD 가입국들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은 복지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며 다양한 사회복지 제도와 복지재정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행복지수 57위를 기록한 한국의 경우, 저성장·저출산·고령화의 파고에 따라 그 중요성은 더욱 커졌고, 복지재정 확충 및 재정건전성은 끊이지 않는 화두이기도 하다. 요컨대, 복지국가의 주요 요소인 사회부조와 사회보험은 불행한 사람의 상태를 더 이상개인의 책임만으로 보지 않겠다는 국가의 인식 전환을 반영하고 있다. 복지국가를 향한 사회의 폭넓은 공감대와 복지국가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를 강조하기도 한다.
안데르센은 자신의 동화를 “어린이들을 위한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작품 속에는 자신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150여 편이 넘는 작품의 결말은 아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성냥팔이 소녀의 비극성을 극대화한 요소
안데르센의 동화는 꿈 많은 아이가 보는 세상처럼 환상적이지 않다. 성냥팔이 소녀 역시 아이가 겪는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성냥팔이 소녀를 더욱 참혹하고 비극으로 만드는 데에는 몇 가지 장치가 쓰였으리라. 먼저 시대적 배경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산업화된 유럽의 어느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19세기의 가장 번화한 거리와 가정에서는 따뜻한 난로,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식탁,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나타난다.
또한 시간적 배경을 둔 크리스마스 역시 동화를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어준다.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 음식을 나눠 먹으며 가정의 행복과 예수의 탄생을 마음속으로 축하하며 화목한 저녁을 보내야할 하루였던 것이다. 성냥 역시 가정의 난로에 불을 지펴야 하고, 시가를 피우는 신사들에게는 필수품이었으리라. 이와 같이 성냥팔이 소녀의 현실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소녀의 비극성을 더욱 극대화해서 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시대적 상황을 묘사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