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해  2019년 핵심 트렌드 ‘나나랜드’

주변 눈치 보지 마, 세상의 주인공은 나!


나만의 인생을 꿈꾸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이중성의 늪은 숙명인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낸 자만이 '나나랜드'에 입성할 수 있다. 자기애로 무장한 사람들의 땅이라는 '나나랜드'는 어떤 세상일까?

글 > 고영민(문화칼럼니스트)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재즈 뮤지션을 꿈꾸는 ‘세바스찬’(배우: 라이언 고슬링)과 배우를 꿈꾸는 ‘미아’(엠마 스톤)가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는 뮤지컬 영화‘라라랜드(La La Land)’에서 여주인공 미아가 대본을다 쓴 후 세바스찬에게 물어본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까?”

“그깟 사람들…”

“넌 매번 그렇게 말하더라.”

“왜냐하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거든.”  


‘라라랜드’는 영화 배경 LA를 뜻하기도 하지만 ‘몽상의 세계’, ‘꿈의 나라’라는 의미를 띠고 있다. 영화제를 휩쓸며 관객들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킨 건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위해 멈추는 법이 없는 주인공들의 열정에서 대리만족을 느꼈기 때문일수도 있다. 재능이 없든, 운이 없든, 여러 환경적 제약으로 꿈을 포기한 이들에게 어른들은 “이제야 철이 들었네!”라며 자못 흐뭇해한다. “철들어 간다는 것이 내 한 몸의 편안과 안락을 위해 세상에 적당히 길들여지는 것이라면 나는 결코 철들지 않겠다”는 민중가요만큼 비장하진 않지만, 영화 제목에서 따온 트렌드 용어 ‘나나랜드’ 역시 길들여진 삶을 거부하는 자들의 땅이다. 길들여짐이 타인의 기준에 맞춘다는 걸 뜻한다면, 나나랜드에선 오직 나의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타인의 평가가 아닌 나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게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로 등장했다.


비교는 불행의 씨앗?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도 친환경적인 삶, 미니멀 라이프를 영위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주부 작가 ‘아즈마 가나코’는 “제발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라고 당부한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24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행복질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주변의 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감각을 중시하는 거예요.주변의 평가보단 자신이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라고 말한다. 아즈마 가나코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꾸만 타인의 생활과 비교한다면 항상 불만족 상태에 빠질 뿐더러 행복감을 얻지 못한 채 일생을 마쳐야 하는 슬픈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카르페디엠’의 실천이 광범위하게

일어나진 않으리라는 걸 잘 안다.

모두 동시에 다 그렇게 한다면 해볼 수도있겠지만,

자신만 그렇게 했다간 큰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카르페디엠’을 긍정하는척하면서도

사실상 외면하는 이중적감정을 갖고 살아간다. 욜로도 마찬가지다.

“욜로? 좋지! 팔자 좋은 너나 해라”는식으로 말이다.

- 강준만, 『평온의 기술』에서



욜로와 소확행 그리고 ‘나나랜드’

자신의 가치관을 소중히 여기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것이 풍요로운 인생을 보내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아즈마 가나코의 미니멀 라이프 철학은 현재를 즐기며 사는 태도를 일컫는 ‘욜로(YOLO)’와도 상당한 접점이 있어 보인다. 사회문화 비평가들은 글로벌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기보단 오늘에 집중하려는 태도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욜로 스타일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小確幸)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욜로를 실천하더라도 그건 미래를 기약할 수 없어서 사실상 강요당한 것이라는 항변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강준만 교수는 “욜로, 소확행 등 원조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외치는 사람들은 나름 성공한 유명 인사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며, “그건 드레이크가성공한 래퍼로서 그간 번 돈을 자기 마음대로 써보겠다는 뜻으로 욜로를 외친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욜로, 소확행 등 그걸 지칭하는 단어가 무엇이든 남들 따라서, 유행에 처지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진정(!) 원해서 하는 것이라면? 내가 소망하는 걸 위해, 주위 시선이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중한 나에게 힘껏 투자해보자는 라이프 스타일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19』는 이런 경향을 ‘나나랜드’로 압축한다.



그곳만이 내 세상, 나나랜드

‘라라랜드’가 할리우드 배우 지망생들의 꿈의 무대였듯 ‘나나랜드’는 세상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철학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나나랜드에서 살아가는 ‘나나랜더’는 남의 시선이나 판단에 결코 휘둘리지 않는다. 나나랜드에는 강요당한 욜로란 존재할 수 없고, 형편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는 미니멀 라이프도 없다. 『트렌드 코리아 2019』는 “나나랜드는 궁극의 자기애로 무장한 사람들의 땅이다. 나나랜더에게 타인의 시선은 중요치 않다. 오로지 나의 기준이 모든 것의 중심이다. 탈 규범화에 익숙한 이들은 기존 세대가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관에 반기를 든다. 넉넉한 체형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최고의 모델로 등극하고 40대 여성이 아이돌 팬으로 입덕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곳, 바로 나나랜드다”라고 설명한다.


나나랜더는 지금 이대로의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을 가장 사랑한다. 이전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이 존재했지만, 그건 타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아름답게가꾸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스펙을 얻기 위해 노력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나나랜더는 “내가 왜 굳이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데?”란 물음에서 탄생한다. 경제영역에서 보자면, 나나랜드에선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셀슈머’가 등장한다. 이들은 소비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SNS나 유튜브에서 직접 상품을 판매한다.


「트렌드 코리아 2019」는 유행하던 제품이나 디자인을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뉴트로’, 한 장소 안에 하나의 정체성을 가졌던 공간이 다양한 역할을 갖게 되는 ‘카멜레존’, 기상이변이 일상화되면서 환경을 필수로 생각하는 ‘필환경’ 등 트렌드 신조어들도 나나랜드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영화 ‘라라랜드’에서 뮤지션 ‘존 레전드’와 첫 연습을 한 후 퓨전재즈에 충격 받은 세바스찬에게 존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열정에 끌리게 돼있지.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 주니!” 그 철학적 의미가 아직 명확해 보이진 않지만, 나나랜드 현상이 이기적인 삶, 무책임한 생활과 다른 건 ‘라라랜드’의 주인공처럼 자기애에 기반한 열정적인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 아닐까.


2019년 10대 키워드 ‘PI GGY DRE AM’

매년 출간되는 트렌드 분석 도서 『트렌드 코리아』는 2019년 돼지해를 맞아 ‘PIGGY DREAM’의 알파벳 머리글자를따 10가지 키워드를 공개했다. 김난도 교수는 2019년 소비 흐름을 원자화·세분화하는 소비자들이 환경변화에 적응해 정체성과 자기 콘셉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분석했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콘셉트가 우선인 ‘기승전콘셉트’의 시대, 개인과 기업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 2019년에주목해야 할 키워드로 ‘콘셉트의 연출’을 꼽았다.


1. Play the Concept. 콘셉트를 연출하라

2. Invite to the ‘Cell Market’. 세포마켓

3. Going New-tro. 요즘옛날, 뉴트로

4.  Green Survival. 필환경 시대

5.  You Are My Proxy Emotion.감정대리인, 내 마음을 부탁해

6. Data Intelligence. 데이터 인텔리전스

7. Rebirth of Space. 공간의 재탄생, 카멜레존

8. Emerging ‘Millennial Family’. 밀레니얼 가족

9. As Being Myself. 그곳만이 내 세상, 나나랜드

10. Manners Maketh the Consumer.


매너 소비자또 다른 키워드는 밀레니얼 세대가 만들어가는 신 가족풍속도 ‘밀레니얼 가족’의 등장이다. 간편식으로 표상되는,낯선 사고방식을 가진 새로운 가족 집단의 등장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아울러 새로운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라는 새로움에 눈뜬 이들이 찾는 과거의새로운 해석 ‘뉴트로’, 일과 삶의 균형점을 찾는 워라밸에 이어 근로자와 소비자 매너와의 균형점을 도모하는 ‘워커밸(worker-customer balance)’ 등이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참고문헌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19』, 미래의창, 2018.

강준만, 『평온의 기술』, 인물과사상사, 2018.

아즈마 가나코/박승희 역, 『궁극의 미니멀라이프』, 즐거운상상.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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