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유지·발전시키는 힘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아부는 무엇일까?
EBS에서 방송된 ‘직장학개론’이라는 프로그램을 반영한 적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명강의를 통해 직장생활의 성공 비결을 소개했었는데,그중 ‘아부의 기술’ 편에서는 일반인들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는 ‘아부’가 부정적인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아부의 장점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아부는 거짓이 아닌 진심어린 칭찬이며 심지어 필수적인 것이라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그럴까?
글 > 이윤형(영남대 심리학과 교수)
호감을 결정하는 요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해서 집에 돌아오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여럿이 함께 일하는 직장인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고 1인 사업장에서도 끊임없이 고객들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즉 우리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목표를 갖고 다양한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이러한 활동과 역할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만들어 나간다. 이렇듯 사회생활 속에서의 다양한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인 셈이다. 따라서 사회적 관계는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것이며호감은 긍정적인 사회적 관계를 맺고 유지, 발전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아부’의 목적이 특정한 이득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남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 호감을 갖게 하려는 것이라면 일견일리가 있다고도 생각된다. 그럼 호감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회심리학자들은 근접성, 유사성, 친숙성, 상호성과 같은 요인들이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을 비호감으로 판단하는지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라 제안하고 있다.
호감을 느끼는 데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근접성이다. 실제로 물리적으로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중요하고 얼마나 자주 상호관계를 맺고 있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장거리 연애가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과 심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이러한 근접성은 호감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중요한 요인인 유사성과 친숙성과도 관련이 깊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성격, 흥미, 생활환경,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는데이는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의 선택이 옳다는 지지를 받는 느낌을 느끼기때문이다. 우리는 호감이 가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선호하고 꺼려지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한다. 그리고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나와 너무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불편하게 여긴다. 유유상종의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또 익숙하고 친숙한 대상에 대해 호감을 갖는다.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는 우리 자신의얼굴을 직접 볼 수 없고 오직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좌-우가 뒤바뀐 자신의 얼굴을 보는 데 익숙하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더 친숙하게 여긴다. 또한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볼 때는 거울상이 아니라 실제 모습을 더 선호하지만 자신의 얼굴은 거울에 비춰진 모습을 더 선호한다(Mita, Dermer & Knight, 1997). 친숙성이 호감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단순히 자주 접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정치인들한테는 자신의 부고 빼고는 자신에 관한 모든 뉴스가 좋은 뉴스라는 말이 있다. 정치인들에게는 언론에 자꾸 노출되어 대중에게 친숙하게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단순 노출이 호감으로 연결되려면 최소한 그 대상에 대하여 중립적인 감정을 갖고 있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호감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상호성이다. 사람들은 관계가 공평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불만을 갖게 된다.따라서 당연하게도 우리는 나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꺼리며 나에게 호감을 느끼는사람에게 역시 호감을 느낀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내가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방법은 바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아부로 여겨질 지라도. 필자는 아부가 진심어린 칭찬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고 적절한 수준의 아부가호감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여긴다. 앞서 말한 대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사람을 선호하며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갖게 될 확률이 크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적절한’ 아부가 호감 형성에 도움이 되지 ‘부적절한’,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는’, ‘지나친’ 아부는 역효과를 내기 쉽다는 것이다.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아부
그렇다면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아부는 무엇일까? 필자는 ‘나’에 대한 ‘아부’라 생각한다.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얻는 매우 유용한 방법 중 하나는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것이라 했다. 또 그렇다면 내가 먼저 호감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할까? 가장 먼저 자기 자신에게 호감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내가 남에게 호감을 갖고 결국 남이 나에게 호감을 갖는다.
심리학에서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는 개념이 있다.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기본적’이라는 말이 붙었다. 기본적 귀인 오류란 우리가 타인의 행동을 판단할 때상황적인 측면을 과소평가하는 반면 개개인 특성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현상은 주로 타인에게서 실패의 원인을 찾을 때 발생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은 남의 성공이나 나의 실패를 바라볼 때는 거꾸로 작용한다. 즉, 남이 성공했을 때나 내가 실패했을 때는 개인적 특성보다는 상황적 측면을 더욱 크게 바라본다.내가 성공했을 때는 당연히 나의 노력이 주 원인이다. 쉽게 말하면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탓인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어느 정도 이러한 마음을 갖는 것은내 자존감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심리학자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생각이 너무 지나치면 항상 핑계를 찾는 사람이 되고 실패를 거울삼지 않으면 발전이 없게 된다.나에게 하는 아부가 필요한 이유는 나에 대해 높은 자존감을 갖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면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은연중에 이러한 태도가 나타나 상대방도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즉 내가 내 스스로를 비호감으로 지각하여 그 결과 실제로 비호감이 되는 것이다.
내가 갖는 ‘나’에 대한 개념들이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 행동들을 조직화하며 이것이 바로 내가 남을 바라보는 틀이 된다. 따라서 내가 나에 대해 부정적인 정서를 갖고 있으면 그러한 틀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부정적인 정서를 갖게 될 수있다. 거꾸로 내가 나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면 내가 그 틀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아 호감을 표현하게 되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호감을 갖게 될 수 있다. 즉, 내가 나를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남이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첫걸음인 것이다.타임지의 편집장을 지낸 리처드 스텐걸은 《아부의 기술(You’re Too Kind: A Brief History ofFlattery)》이라는 책을 통해 효과적인 아부의 방법에 대해 소개하였으니 ‘적절한 아부’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아부의 기술을 쓰기 전에 자신에게 그것을 먼저 사용하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