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쉼표가 되는 슬로시티, 청산도

유채꽃 향기 따라 이야기 따라 낯선 길 위에 서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희노애락(喜怒哀樂)과 함께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네 삶은 각자 선택한 길을 따라 걷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그렇게 지속될 것이다. 길 위에서 잠시 쉬며 상념을 털어보는 것은 어떨까. 낯선 길 위에서 바람을 맞고, 가슴을 어루만져 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마음 속 이야기를 슬며시 꺼내보자.

글 > 정현주 사진 제공 > 강원도청


느림의 풍경 속 지친 ‘나’를 위로하는 섬

산, 바다, 하늘이 모두 푸르러 청산(靑山)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섬, 노란 유채꽃과 청록의 청보리가 넘실대는 작은 섬, 청산도. 청산도는 완도군에 속해 있으며 청산면은 5개의 섬(청산도, 여서도, 대모도, 소모도, 장도)으로 이뤄져 있다. 청산도는 ‘치따슬로(Cittaslow)’라는 슬로시티를 지향한다. 슬로(Slow)는 단순히 빠름의 반대가 아니라 환경, 자연, 시간, 계절을 존중하고 나 자신을 존중하며 느긋하게 산다는 뜻으로, 앞을 향해 치닫고 살아온 지난 세월을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슬로시티는 과거와 현대의 조화를 통한 ‘느리지만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자연환경과 고유음식, 전통문화 등을 지키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지역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현재 전 세계 123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고, 지난 2007년 12월 1일 아시아 최초로 완도군 청산도가 지정되었다.


그 청산도의 길 마디마디에는 지독한 가난이 대물림 되었던 그 시절 평생을 바다와 산어부와 삶의 애환 속에서 물질하는 해녀, 다랭이 밭을 일궈 끼니를 떼우며 살아야 했던삶의 생생한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천년의 가치를 지니며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신비의 섬이다.


푸른 바다, 푸른 산, 구들장논, 돌담장, 해녀등 느림의 풍경과 섬 고유의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청산도를 찾아 자연과 함께 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는 나지막한 지붕과 돌담길 사이를 걷다 보면 바쁜 삶에 지친 심신을 치유해준다. 봄이 되면 노란 유채꽃들이 여행객들을 반겨주는 청산도의 슬로길을 천천히 걸어본다.


           


쉼표 찍고 아득한 시간과 삶의 향기에 취하다

청산도 슬로길은 총 42.195㎞(100리), 11개코스(17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주하는 데에는 총 3박 4일이 소요된다. 바다 해안선과절벽을 끼고 도는 코스와 각 마을의 돌담장을 굽이굽이 돌아 걷는 코스 등이 있다. 이 길은 옛날부터 섬 주민에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이동로였다. 그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다 보면 발걸음이 절로 느려진다 하여 슬로길이라고 하던가. 슬로길은 코스별로 가장긴 거리가 5~6㎞ 정도로 2시간 30분 이내가 가장 길고, 짧게는 1~2㎞ 정도의 거리여서 부담 없이 길을 나설 수 있다.


매년 ‘청산도슬로걷기축제’와 슬로길 100배 즐기기 프로그램 등 다양한 재미를 곁들일 수 있다. 청산도의 관문인 도청항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당리언덕길을 오르면 영화 <서편제> 촬영지와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을 볼 수있다. 봄이 되면 세트장을 배경으로 노란색을 머금은 유채와 파릇한 보리밭이 한 폭의 그림으로 눈에 들어온다. 청명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풍광을 보노라면 잊고 지냈던 자연을 다시 만나게 된다.


범바위는 청산도 주민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다. 배를 타고 멀리 고기잡이를떠난 어부를 기다릴 때, 마을에 큰 일이 있을때 주민들은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거대한바위와 함께 탁 트인 바다를 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또한 인상적인 해돋이와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진산리 갯돌해변, 지리청송해변 등 다양한 자연이 담고 있는 풍경의 이야기에 흠뻑 취해보자.


풍경과 사람,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청산도 슬로길에서는 섬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돌담장과 구들장논, 범바위에 얽힌 사연, 그리고 흔히 접할 수 없는 독특한 장례문화인 초분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발걸음을 멈추다 보면, 느린 시간 속에서 슬로길의 진정한 의미를 체감할 수 있다. 섬 절벽 해안가에서 ‘호~이’하고 퍼지는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듣다 보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섬사람의 강인한 생명력과 삶과 대한 애착이 느껴진다. 길이 주는 풍경,길에 사는 사람, 길에 얽힌 이야기와 길 위에서 느끼는 삶에 대한 경외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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