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밥상 위 바다

농어가 멍게를 만났을 때… 더위야 저리 가라!


올봄 벚꽃만큼 억울한 게 있을까. 봄바람 타고 만개해도 찾는 이가 없다. 코로나19 때문에 전국 벚꽃축제 대부분이 취소됐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내년 봄을 기다릴 수밖에! 계절은 속절없이 흐른다. 벚꽃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뜨거운 여름이 우리 앞에 얼굴을 내민다. 올해는 ‘집콕족’이 늘었다. 요리사처럼 근사한 밥상을 차리는 이들도 많다. 이 여름엔 땀을 단박에 날릴 식재료만 구하면 더 멋진 식탁이 완성된다. 무엇을 고를 것인가? 농어와 멍게다!

Editor 박미향 한겨레신문 ESC팀장 겸 음식문화 기자


차가운 농어 한 점, 더위를 날리네

요즘 리듀스테리언(Reducetarian)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육류 섭취를 줄여 건강을 유지하려는 이들을 이르는 신조어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대체육 등을 즐기면서 식탁에서 도축한 소나 돼지를 퇴출하려는 사람들이다. 식물성 줄기세포를 이용한 인공고기 생산 등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 불기 시작한 먹거리 신기술도 이들의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밥상 철학이 엄격한 이들이라도 더위를 날려 줄 만한 먹거리를 배척하기란 쉽지 않다. 덥다고 아이스크림이나 빙과류를 끼니로 먹을 순 없다. 냉장실에 잘 보관해서 해산물 특유의 숙성 맛이 그윽한 생선류는 어떨까. 몇 점 집어 먹다 보면 알싸한 냉기가 온몸에 스며든다. 더위가 저만치 달아난다.


대표적인 여름 생선은 민어다. 하지만 ‘찐’ 미식가는 여름 농어를 손에 꼽는다. 여름에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는 민어보다는 맛과 가격 모두 ‘훌륭하다’. 농어는 알뜰한 미식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과거엔 ‘바라보기만 해도 약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급 생선이었지만, 현대엔 반대다. 각종 이야깃거리가 가득한 민어 같은생선이 더 인기다.


광어, 우럭 등과 함께 ‘횟집 3대’ 메뉴인 농어는 여름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10월부터 산란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선 주로 남쪽 바다에서 잡히는 농어는민어나 삼치처럼 몸집이 클수록 맛이 좋다.


남쪽 바다, 거문도 앞바다에도 농어는 넘쳐나는데, 『홍합』 등의 소설을 펴낸 한창훈 작가는 그곳에서 주로 낚시로 농어를 잡는다. 거문도는 그의 고향이다. 젊은 시절 공장이나 공사장 등에서 일하면서 손에 굳은살이 박인 그는 이른바 먹물들과는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렸다. 그런 그가 거문도 바다에서 낚싯대로 잡아채는 농어의 맛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달콤한 사탕처럼 반짝이는 거문도 밤하늘 별이 농어회에 내려앉아 달다. 한창훈 작가는 농어 낚시에 매달렸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고향 거문도에 돌아온 첫날, 새벽 산책에 나섰다고 한다. 낚싯대를 들고서 말이다. 산책과 낚시 모두가 가능한 게 섬의 장점이다. 낚시를 시작한 지 10분 만에 그는 생선 한 놈을 잡아챘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놈과 밀고 당기며 힘을 겨뤘는데, 결국 그가 졌다. 낚싯대 줄이 뚝 끊어지면서 그놈을 놓친 것이다. 고수 낚시꾼 한창훈 작가를 유유히 따돌리며 바다로 돌아간 그놈이 농어였다. 그날 이후로 눈만 감으면 농어가 떠올랐던 한창훈 작가는 농어가 튀어나올 만한 섬의 구석구석을 다녔다고 한다. 주름진 얼굴에 생기가 반짝이고, 너른 바다를 두리번거리면 농어 밭을 찾아다녔을 한창훈 작가가 그려진다. 거친 바다 같은 사내 한창훈 작가와그의 눈을 피해 요리조리 바다를 헤엄쳐 다녔던 농어의 조합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떠오르게 한다. 한창훈 작가는 잡히지 않은 농어에 대해 “야속하다”는 소리를 연신 내뱉었지만, 종국엔 농어를 잡고야 말았고, 그 농어로 회를 떠 친구들과 한 잔의 술도 했다. 머리와 뼈, 알은 다음날 해장용 매운탕 재료로 썼다고 한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엔 그의 바다 생물 이야기가 촘촘하다.


한창훈 작가처럼 농어를 잡아먹을 때는 처리를 재빨리 해야 한다. 회로 뜨자마자 찬물에 농어회를 바로 씻어내야 비린내와 불쾌한 지방을 제거할 수 있다. 생선 요리는 종류가 참으로 많지만, 농어는 주로 회로 먹는다. 탱탱한 식감만으로도 미식가를 사로잡는다. 희한한 것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럽다는 것이다. 노인이 먹기에도 좋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이런 농어의 특성에서 나왔다. 농어 튀김은 맛이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크기가 작은 농어는 주로 튀겨 먹는다. 비늘에 칼집을 내 튀기면 더욱 바삭하다.


감칠맛을 최고로 올리는 조리법도 있다. 비늘과 내장을 제거한 농어에 소금을 뿌린 다음 한지에 싸서 굽는 것이다. 한지엔 미리 물을 뿌려둔다. 굽는 동안 수분이 스며든다. 물론 탕으로도 조리해 먹어도 좋다. 이때 채소는 듬뿍 넣어야 한다. 다른 생선류에 견줘 비타민C가 부족해서다. 레몬을 즙을 내 뿌려 먹어도 좋다. 맛과 영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방법이다.


 

멍게, 울퉁불퉁해 더 맛이 좋아

극단의 부드러움. 멍게 맛을 표현할 만한 단어는 무엇일까? 멍게 맛을 그려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이 있다. 극단의 부드러움. 그만큼 멍게는 식감이 보드랍다.입안 점막과 거의 유사하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멍게의 진짜 이름은 우렁쉥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멍게가 친숙하다. 멍게는 1년 내내 먹을 순 있지만, 여름철에 더 맛있는 해산물이다.


땅거미 지고 도시의 별이 휘황찬란하게 빛날 때 일과를 마치고 포장마차를 찾은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다. 한 잔 술에 하루 피곤이 풀린다. 꼬치 등 다양한 안주가 즐비한 포장마차에서 인기 메뉴는 멍게다. 보들보들한 살점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두꺼운 껍질이 술꾼을 부른다. 멍게 살을 발라낸 다음 텅 빈 껍질에 소주를 부으면 별미가 탄생한다. 유리잔 소주와는 다른 맛이다. 멍게 껍질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다. 멍게도 고난의 시절이 있었다. 바다가 깨끗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생물이 멍게다. 1970년대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바다가 점차 오염되자 멍게도 사라져 갔다. 1980년대 양식에 성공하면서 우리는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을 수 있게 된것이다.


‘집콕’ 먹거리 재료로 으뜸이다. 주연과 조연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맛의 마술을 펼친다. 껍질의 빨간색이 짙으면 신선한 멍게니 그대로 먹으면 된다. 너무 물컹한 식감이 싫으면 데치면 된다. 김치의 속 재료로 으뜸이다. 주연이 아니어도 되는 것이다. 석쇠에 구워 먹는 이도 있다. 겨자를 바르면 맛이 더 도드라진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멍게 요리는 멍게비빔밥이다. 보슬보슬 지은 밥과 멍게를 휙 섞어 먹는밥은 푸근하다. 어머니의 맛이다. 해녀의 손길이다. 여기에 미나리 무침마저 섞으면 색다르다. 멍게전, 멍게조림 등 여러 가지 버전으로 변주가 가능한 점도 멍게만의 장점이다.


녹음이 짙어질수록 시원한 소나기가 그립다. 여름의 책장이 한 장 두 장 넘어갈 때마다 청량한 바람을 만나고 싶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친구처럼 말이다. 그럴 때마다 송어와 멍게 한 점은 좋은 친구가 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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