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말, 낯설지 않은 속뜻 ‘팬츠드렁크

당신의 진정한 ‘쉼터’는 어디입니까?


분위기 좋은 와인바, 먹음직스러운 갈릭버터쉬림프와 허니치즈홀릭이 놓인 식탁을 배경으로 매혹적인 빛깔을 뽐내는 레드와인을 홀짝이는 모습을 셀카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투자한 만큼 SNS 피드백은 경이롭다. “멋지다”, “부럽다”, “맛있겠다”, “고급지다”, “♡♡”, “와우내(감탄사)!” 등. SNS도 중독이라고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인정투쟁도 지쳐가기 시작한다. SNS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시간과 돈은 둘째 치고 때때로 나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 “내가 이러려고SNS를 했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럴 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사우나에서 긴장한 근육뿐만 아니라 지친 영혼의 피로감도 풀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글 > 편집실


팬츠드렁크―하다 [Pantsdrunk-]

① 어디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가장 편안한 옷차림으로 혼자 술을 마시다.

②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즐기며 몸과 마음을 쉬게 하다.

③ 지금, 가장 트렌디한 북유럽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다.

- 미스카 란타넨, 『팬츠드렁크』에서


휘게, 라곰 그리고 ‘칼사리캔니’

핀란드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인 ‘미스카 란타넨(Miska Rantanen)’은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궁극의사우나실은 바로 “네 집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집에서 편안한 옷차림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평온의 휴식이 바로 ‘팬츠드렁크(Pantsdrunk)’라고 설명한다. 핀란드어로는 kalsarikanni(칼사리캔니),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외출할 마음이 전혀 없이 ‘(집에서) 팬티만 입고 술을 마시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덴마크의 ‘휘게(Hygge)’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해석한다. ‘휘게’란 가족이나 친구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한다. 아울러 ‘덜 해도, 더 해서도 안 된다는’ 스웨덴의 ‘라곰(Lagom)’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불교의 중도 철학과도묘한 접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행복지수 1위 나라의 휴식 노하우?

지난해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전 세계 156개국을 상대로 국민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를 담은 ‘2018 세계행복보고서’를 바티칸에서 발표했는데, 1위를 핀란드가 차지했다.팬츠드렁크가 언제나 행복지수 상위권을 달리는 핀란드에서 하는 휴식방법이라고 하니, 이보다 행복지수 56계단 아래에 있는 대한민국에선 누구든지 관심을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술과 과자를 들고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편안함을 만끽하면 핀란드식휴식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루가 멀다하고매일매일 혼술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동안 내가 북유럽식 휴식 트렌드를 즐기고있었단 말인가?”




바보야 문제는 ‘마음’이야

팬츠드렁크의 액센트는 드렁크(술)가 아니라 마음과몸을 평온하게 하란 의미의 ‘팬츠’에 있다. 팬츠드렁크의 전도사 미스카 란타넨도 ‘술’이 아니라 ‘휴식’에서그 의미를 찾고 있다. 사서오경 중 하나인 중용(中庸)은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있을 때도 스스로삼간다는 의미이자 개인 수양(修身)의 최고 단계로서군자의 ‘신독(愼獨)’을 강조한다. 혼자 있을 때도 언행을 조심하라는 가르침이야 훌륭해 보이지만, 집에 있을 때조차도 의복을 정제하고 마음가짐을 단정히 하는 건 정말 피곤할 일 아닌가?어쩌면 신독은 ‘도리’를 지켜야 하는 양반님네들의 표리부동(表裏不同)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로 이해하는게 옳아 보인다. 최소한 집에 있을 때만은 세상의 온갖 압박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휴식의 도리 ‘해독(解獨:나를 해방)’이 필요하다.


정말 ‘나’다운 휴식을 취하자

에로 수오미넨(Eero Suominen) 주한 핀란드 대사는 “팬츠드렁크는 주변의 기대나 머리 아픈 고민, 정신없이 바쁜 일은 모두 잊고 자기다운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는시간”이라고 설명한다. 그야말로 ‘빡센’ 하루를 마치고집에 돌아갔는데도 “카톡!”하며 회사에서 날라오는 문자는 나도 모르게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치명적이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정말 반(反)팬츠드렁크적이다.

최소한 집에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만의 시간을보내야 한다. 물론, 팬츠드렁크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때로는 술을 멀리하고 더욱 진지한 내면의 대화,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있다.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좋다. 지금 이 순간, 간단한 음료와 더불어 그대를 감싸 안을 수 있는 최적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자.


핀란드의 트로트? 팬츠드렁크 뮤직 ‘헤비메탈’

핀란드 정부가 자랑스럽게 만든 이모티콘 중에는 1996년결성된 핀란드의 심포닉 메탈 밴드 ‘나이트위시’의 여성리드보컬 ‘타르야 투루넨(Tarja Turunen)’ 얼굴이 있는가하면, 헤비메탈을 가리키는 헤드뱅어(headbanger)도 있다. 수줍음을 잘 타는 핀란드인이지만, 이곳만큼 헤비메탈밴드가 많은 나라도 없다. 헤비메탈이 주류 음악이자 우리의 트로트 뺨치는 국민가요다.


로커(Rocker)들에게 핀란드는 약속의 땅과 다름없다. 심지어 어린이용 만화에서도 헤비메탈이 울려 퍼질 정도.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에 헤비메탈이 인기 있는 이유로여러 학설(?)이 있다. 복지가 너무 잘 돼 있어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북유럽의 춥고 긴 겨울이 헤비메탈 정서와 잘 맞아서, 바이킹의 폭력 DNA가 숨어 있어서…. 어느 연구가는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되고 내성이강하며, 지식 기반인 지역에서 헤비메탈이 인기를 끌고있다고도 분석한다.


참고문헌
- 미스카 란타넨 지음/김경영 역, 『팬츠드렁크: 행복 지수 1위
핀란드 사람들이 행복한 진짜 이유 양장본』, 다산북스, 2018.
- 주한핀란드대사관(http://www.finlan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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