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두 대통령’ 베네수엘라 사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미 vs 러 대결,제2의 쿠바 위기?


1962년, 소련(소비에트연방)의 흐루쇼프가 쿠바에 장거리 미사일 기지 설치를 비밀리에 추진했다. 이에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소련이 미사일 기지 건설을 강행한다면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것이며,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고 맞대응한다. 우여곡절 끝에 양국의 타협으로 아마겟돈, 즉 최후의 핵전쟁 공포는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서 제2의 쿠바 위기가 재현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남미 최대의 산유국인 ‘베네수엘라’가 바로 그 주인공. 초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 불쏘시개로 쓰이는 베네수엘라에서는 그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미국과 러시아는 왜 심상치않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글 > 고영민(경제칼럼니스트)


베네수엘라의 몰락, 도대체 왜?

단위면적당 석유매장량 세계 1위인 금수저 국가 ‘베네수엘라’, 시리아처럼 내전을 겪거나 이라크처럼 외침을 겪은 것도 아닌데 왜 졸지에 아비규환의 빈곤국이 됐을까? 국제 정치경제학자들은 우고 차베스 정권(1999~2013)부터 시작된 무분별한 포퓰리즘적 복지정책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평가한다.


이에 더해 국제유가 하락과 석유에만 집중된 국가산업의 붕괴, 차베스 정권의 반미정책과 미국의 대응(경제제재), 석유·철강 산업 등의 국유화 정책과 방만 경영, 국내 정치의 불안정과 부패 등을 주원인으로 뽑기도 한다. 물론 각각의 분석에 대해 전문가마다 이견이있지만, 국제유가 폭락이라는 위기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부실한 위기관리 능력이 결정타였던 건확실해 보인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버텨왔던 차베스가 2013년 3월 암으로 사망하자 베네수엘라는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러시아-베네수엘라 “난 널 원해”

차베스에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은 이전 정권에서 만든 포퓰리즘 복지정책을 바꾸지 않았을뿐더러 재정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화폐량마저 크게 늘렸다. 국가 기반인 석유산업은 마비되고, 물가상승이 통제를 벗어나 수백 퍼센트의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국가 경제는 완전히 붕괴됐다.


마두로 정권은 경제위기의 근원을 미국의 경제제재에 돌렸고, 해결책으로 사회주의 우방 러시아에 눈을돌렸다. 중국만큼 베네수엘라의 큰손(채권국)인 러시아는 채무상환 재조정에 합의하고 석유를 사들이는등 경제협력을 통해 영향력을 키웠다. 사실, 서방언론들은 2017년 러시아가 베네수엘라의 채무 만기를 10년으로 연장하고 향후 6년간은 최소 규모로 상환하는데 합의했을 때부터 신냉전의 불길한 조짐을 예상했다.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베네수엘라, 지정학적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러시아의 의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언제 터질지 모를 남미의 화약고?

지난 연말, 러시아가 전략폭격기 TU-160 2대, 100여 명의 러시아 공군 조종사와 요원 등을 베네수엘라에 급파함에 따라 반미 동맹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미-러신냉전이 도래했다는 얘기까지 떠돌고 있는 상황. 아예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 군사기지를 건설할 계획이라며 불을 지폈다. 마치 동유럽에서 미·러 양국이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보였듯, 남미에선 베네수엘라를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반미 입장을 명확히하고 있다. 마두로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나를 암살하고 독재정치를 강요하는 백악관의 음모를 규탄한다”고 밝힌 반면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두 부패정부(베네수엘라-러시아)가 국가자산을 낭비하면서자유와 독립을 억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제유가 태풍의 눈, 미국

국제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는 한 몸처럼 움직인다.과거 쿠바처럼 베네수엘라를 대미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러시아와 경제 지원이 절실한 베네수엘라의이해타산이 아무리 맞았다고 해도 세계 최강국인미국이 눈엣가시였던 베네수엘라에서 러시아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걸 용인할 리 만무하다. 트럼프 정부는 베네수엘라 사태에 무력으로 개입할 가능성마 분열돼 사태는 격화되고 있다.저 시사했다. 무엇보다 석유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역시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반미 정권을 불편하게느끼는 요인이다.


베네수엘라 석유의 40%를 수입하던 미국은 2014년 셰일가스 개발에 성공하며 수입량을 80%가량줄였다. 국제유가는 당연히 하락했고, 공교롭게도차베스가 사망하고 니콜라스 마두로가 정권을 잡는시점과 겹친다. 마두로 정권에서 베네수엘라의 경제규모는 절반 이상으로 쪼그라들었다. 미국은 기축통화(달러)를 통해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하듯, 에너지시장도 좌우하고 있다. 셰일가스 개발이 확대되면서미국은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 대열에 합류해세계 유가를 결정짓는 키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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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는 내부에서부터

어느 나라든 내부 분열은 망국의 지름길. 지난해 5월 주요 야당 지도자들의 출마를 원천봉쇄시킨 상태에서 대선을 치른 마두로는 재선에 성공했다. 마두로 현 대통령과 맞서 싸우는 젊은 야당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지난 1월부터 임시 대통령을자임하고 있다. 마두로 퇴진운동의 선봉에 서 왔던과이도는 미국과 유럽(EU)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고, 마두로 대통령은 오랜 우방이자 채권국인 러시아와 중국의 강력한 후원을 받고 있다. 이러한 국제구도는 지난 1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미국, EU 국가들은 베네수엘라가 대선 계획을 다시발표하지 않으면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러시아와 중국은 쿠데타를 기획하는 게 미국의 목적이라며 베네수엘라를 극심한 분쟁의 수렁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마두로와 과이도가 대치한 상황속에서 자국민들은 물론 국제사회도 양 진영으로부는 베네수엘라 사태에 무력으로 개입할 가능성마 분열돼 사태는 격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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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교훈…혁신하지 않으면 망한다

하지만 2013년까지만 해도 행복지수가 대한민국보다높은 20위를 기록했다. 몰락의 직접적인 배경은석유사업의 붕괴다. 또, 석유산업에 기생해 온 기득권층의 부정부패는 국민들을 빈곤의 나락으로 빠트렸고,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난민으로 전락시켰다. 미국의셰일에너지 생산 기반이 탄탄해지면서 사우디와러시아에 대한 석유 의존도는 줄고, 국제정치 지형도급변하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도 석유 의존도를줄이고자 일찌감치 신재생에너지에 고개를 돌렸을 뿐아니라 에너지산업 중심에서 탈피해 바이오, 금융,비철금속, 식품 등으로 다각화하고 있다. 수차례 유가폭락의 위기를 교훈 삼아 새로운 성장 산업을 모색하지않았던 것이 베네수엘라의 몰락 원인이다. 요컨대 베네수엘라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하지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주고있다. 우리 산업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와석유화학은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미국의 금리인상, 미-중 무역 분쟁과 같은 대외적 우려 요인들이상존한 상황에서 산업 다각화의 중요성은 아무리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울러 산업 다각화를 통한위험분산도 필요하겠지만, 4차 산업혁명 기술처럼미래사회를 주도할 신사업을 발굴함으로써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당면과제가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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