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이 아닌 공존을 지향하는 ‘밀레니얼 가족
新가족풍속도, ‘내’가 있고 ‘가족’이 있다?
웹툰 <며느라기>부터 다큐멘터리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가족관계를 제안하는 움직임이 사회 곳곳에서 포착된다. X세대를 지나 1980~200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 이들로 구성된 ‘밀레니얼 가족’에게 이제 가정은 절대적인희생을 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만족할 수 있는 ‘적정행복’의 장소로서 개인 시간과 자기계발에 투자하며 행복을 일궈가야 하는 곳이다. 밀레니얼 가족의 행복찾기는 어떤 것일까?
글 > 편집실
스웨그 넘치는 ‘욜로’와 ‘가성비’
한 달 월급을 취미 생활에 모조리 쏟아 붓는 것도 모자라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둔 채 알토란 같은 퇴직금으로 세계여행을 떠나는 용감무쌍함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은 일상다반사. 연봉 수준과는 상관없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기며 일하는 ‘워케이션(work+vacation)’도 몹시 선호한다. 다소 도전적이고충동적인 부분이 있지만, 스웨그(swag) 넘치는 욜로족(YOLO, You Only Live Once)이 있는가 하면, 가성비를생명처럼 여기는 코스파(COSPA)족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바겐세일의 축복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기도한다. 고가의 명품이든 저가 제품이든, 명품이기에 뽐내고 싼값에 좋은 제품을 구매했기에 자랑한다.
모바일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에 능숙하고 자아를 표현하는 욕구가 강한 밀레니얼 세대들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다양한 포즈의 셀카를올리며 ‘온라인-나르시시즘’에 빠지기도 한다. 현재50~60대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 밑에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받고 자랐으나, 냉엄한 현실을 겪으며 부모 세대와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서 정형화된 틀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절약보다는 현재를 만끽하는 욜로족이든, 가성비를 꼼꼼히 따져보는 실속파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그런 사나이
……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Baby baby,
나는 뭘 좀 아는 놈
- 싸이, ‘강남스타일’ 중에서
가족을 위한 숭고한 희생? 글쎄!
한편으론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생활을시작했고 이전 세대들보다 물질적으로 곤궁한데도 더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장밋빛 청사진보단 현실의 ‘소확행(小確幸)’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일까? 결혼과 내 집 마련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건 이젠 특별한 게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대신, 조금만 관심을 갖고눈을 돌리면 신나고 유익한 것들이 많이 있음을 ‘아는세대’다.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에서 “Baby baby, 나는뭘 좀 아는 놈”에서 ‘놈’은 당연히 밀레니얼 세대다. 가족이라도 가치관이 맞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함께 하는일은 드물고, 취향이 비슷한 타인과 어울리고 여기에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트렌드 코리아 2019』를 통해 올해 대한민국 소비문화의 흐름을 제시했던 김난도 교수는 간편식으로 표상되는, 낯선 사고방식을 가진 새로운 가족 집단 ‘밀레니얼 가족’의 등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교수는 신(新)가족풍속도인 ‘밀레니얼 가족’ 구성원들에게 ‘가정’이란 예전처럼 희생과 복종의 장소가 아니라 개인의 유연성과 균형감각을 발휘하며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적정 행복’의 공간이라 분석한다. 남편은 밖에서 일해서 돈 벌어야 하고 아내는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애들은 장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구태의연한 도식은 이미 옛 것이 되었다.
가정 간편식(HMR) 세대
밀레니얼 세대 엄마는 더 이상 밥을 짓지 않는다. 로봇청소기와 식기세척기, 빨래건조기는 물론이고 AI(인공지능)에게 부탁하면 웬만한 집안일은 뭐든지 해결할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했다. 집안일은 이들에게 맡기고 젊은 엄마는 자신을 가꾸는 데 투자하면 그만이다. 또, 햇반(즉석밥)으로 대표되는 가정간편식(HMR)의 주 구매층이 1인 가구에서 다인 가구로 급속도로 전환되고 있다. 이젠 가정간편식은 ‘혼밥’이 아니라 밀레니얼 가족들을 위한 ‘홈밥’의 대명사가 돼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글로벌가정간편식의 시장규모는 2016년 1,573억 달러(한화약 177조 8,276억 원)에서 2021년 1,891억 달러(한화약 213조 7,775억 원)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정의 역할 변화 ‘화이부동’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건 자기계발은 물론이고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여유를 갖게 한다.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가족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부장제의 희생과복종이 강요되는 공간은 더 이상 21세기 가족이 아니다. 각 구성원의 개성이 존중되는 가운데 전체의 조화를 추구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원칙이 밀레니엄가족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가정은 휴식과 배려의 공간이지 노동이나 헌신의 공간이 아니다. 남녀의 이분법적 역할 분담은 사라지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수평관계로 변했다. 부부가 동반자라면, 자녀는 친구인것. 엄마는 플라멩코를 배우러 학원에 갈 수 있고, 아빠는 새로운 장난감 드론의 재미에 흠뻑 빠질 수도 있다. 심지어 휴가마저 따로 간다.
인생의 무덤? 자아실현의 공간
문화분석가 린 C. 랭카스터(Lynne C. Lancaster)는“밀레니얼 세대는 자신만의 독특한 재능을 표출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하고, 직장에서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않으면 실망하고 만다”고 평가한다. 이는 밀레니얼세대가 아무리 안정을 추구한다고 해도 자신의 정체성을 내던지면서까지 어딘가에 묻어가는 건 거부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요컨대,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의 방식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선택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아실현을 위해 끊임없는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성향을 갖고 있으며 결혼 후 가정에서까지 그 열정은 이어진다. 기성세대와 달리 밀레니얼 부모는 직장이나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을 피트니스 센터, 각종 ‘원데이 클래스’ 등의 자기계발 활동에 주저 없이 사용한다.
‘행복’으로 가는 노선이 다를 뿐
어떤 세대 누구든 행복을 추구하는 건 똑같다. 물론 원하는 행복을 어떠한 방식으로 추구하는가에 따라 라이프 스타일도 천차만별. 같은 세대라 해서 라이프 스타일마저 똑같은 건 아닐 터. 욜로의 반대편에서 미래의 안정된 삶을 위해 이 순간도 공무원시험에 매진하고 있는 청춘들이 수두룩하다. 밀레니얼 세대 중 자기계발에 중독된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일이든 취미든 자기계발이든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건 무엇일까? 또한, 그것은 진짜 행복일까?
‘4차 산업혁명’에 올라탄 밀레니얼 가족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모바일 기술 등의 4차 산업혁명 기술은 가성비,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가족들에게여유로운 시간을 제공하는 천군만마다. 김난도 교수는 밀레니얼 가족의 효율적인 가사 노동에 꼭필요한 ‘3신 가전(새롭게(新) 등장하는 필수 가전이라는의미도 되고, 집안일을 줄여주는 신(神)의 물건이라는 뜻)으로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빨래건조기를 꼽았다. 가성비 끝판왕이라는 중국의 샤오미를 비롯해 LG, 삼성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각국의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제품을 제 때에 선보여야만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가성비와 자기계발의 여유시간까지 선사하는 가전제품들과 더불어 밀레니얼 세대에게 가장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기술은 다름 아닌 5세대 이동통신(5G=fifth-generation)이다. 전자제품과 마찬가지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도 초고속 데이터 사용에 적극적이고 익숙한 세대를 공략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의 미래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넷플릭스’나 ‘유튜브’처럼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해야만 5G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김난도 외 지음, 『트렌드 코리아 2019』, 미래의 창, 2018.
제니퍼 딜·알렉 레빈슨 지음/박정민 역, 『밀레니얼 세대가 일터에서원하는 것』, 박영스토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