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투자 활성화와 성장동력 회복하는 정책 필요

끝나지 않은 미·중 무역분쟁, 세계 경제에 부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3월에 이어 이번에도 기준금리를 현행대로 유지했다.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금리 1%p 인하가 필요하다”며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그러나, 미·중 무역분쟁의 충격파를 완화하고자 기준금리를 내릴 수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연준 위원들은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성장·저물가가 고착화하는 상황에서1년 넘게 지속되는 미·중 무역전쟁,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 브렉시트 등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글 > 양재찬(더스쿠프 대기자/경제저널리즘 박사)


세계 경제 침체 경고음 잇달아

경기 악화 조짐은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집중적 견제를 받는 중국은 물론 유로존과 일본도 글로벌 통상분쟁으로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흥국들도 글로벌 수요 감소와 원자재 가격하락 여파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경고음은 이미 여기저기서 나왔다. 지난 2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세계 경제의 ‘4대 먹구름’을 예고했다. 4대 먹구름이란 보호무역주의(무역분쟁), 중국의 경기 둔화, 영국의 브렉시트, 글로벌 금융긴축이다. 먹구름이 많기에 번개 한 방이면 세계 경제에 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글로벌 경기가 ‘불균등한 회복’ 국면에서 벗어나 ‘동조화한 집단적 둔화’ 추세로 진입했다고 전망(4월 7일)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이번 경기둔화가 수년에 걸친 불길한 전조로 해석 된다며 침체의 장기화를 염려했다.


이런 비관적 시각은 갑자기 조성된 게 아니다. IMF는1년 전, 지난해 4월까지만 해도 긍정적으로 보고 세계경제 성장세가 올해까지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전망에선 세계 경제가 이미 2017년 고점을 찍고 지난해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올 4월 전망에선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을 3.3%로 낮췄다. IMF는 지난해 7월 3.9%로 예상했던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을 지난해 10월3.7%, 올해 1월 3.5%, 이번에 3.3%로 9개월 새 3번이나 하향 수정했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 경제가 좋아지면 주변 국가들과세계 경제도 괜찮아 진다는 논리에 익숙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나타난 ‘미국의 홀로 성장 속 세계 경제 부진’은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음을 보여준다. 2000년 이후 산업 측면에서 1990년대 정보기술(IT) 혁명에 버금가는 성장동력이 나타나지 않자 선진국들이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를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면서 무역전쟁을 야기했다. 


전문가들이 예고한 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고율관세 부과로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은 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중국 경제가 타격을 받아 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동시에 미국도 피해를 보며 사상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독일 등 유로존과 일본 경제도 성장세가 둔화했다. 두 경제 대국(G2)이 화를 자초하며 글로벌 경제위기를 재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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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 전선을 넓혀가는 미국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EU), 일본 등으로 무역전쟁의 전선을 넓히고 있다. 트럼프는 “세계무역기구(WTO)가EU의 에어버스에 대한 보조금이 미국에 불리한 영향을 줬다고 판단했다”며 110억 달러 규모의 EU 제품에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전포고했다. 이에 대해 EU는 “미국도 보잉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며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받아쳤다. 


이밖에도 미국은 일본과 물품무역협정(TAG) 협상에 돌입했다. 한국, 일본, EU, 멕시코 등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자동차 고율관세 부과도 검토하고 있다.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돼 미·중 무역분쟁이 마무리되더라도 세계 도처에서 통상전쟁이 불거질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 무역이 둔화되고, 이는 각국의 경기침체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경제분석 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올해 세계 무역 증가율이 지난해(4.8%)의절반인 2.5%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Fed가 2015년 말부터 3년 동안 인상해오던 정책금리를 동결한 것은 미국 경제 침체의 또 다른 신호탄이다. 경제에 낀 거품을 걷어내고자 금리를 올렸는데 경기가 주춤하자 동결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경기가 계속 가라앉으면 금리를 다시 내릴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잘못된 투자를 청산하는 구조조정 대신 저금리 정책과 정부지출의 증가로 불황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독이 됐다. 새로운 성장동력이나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못한 시중 자금은 부도 위기에 몰린 기업으로 쏠렸다. 정상금리 수준에선 도산하거나 회생 절차를 밟아야 할기업들이 저금리를 산소호흡기 삼아 연명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 주요 기업의 13%가량인 536개 기업이 차입금 이자만큼도 벌지 못하는 좀비 상태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2009년 당시에는 626개에 육박했다. 더구나 이들 기업들은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해 마련한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주주에게 배당하는 등 생산 및 투자와 관련이 적은 데 돈을 썼다. 신사업에 도전하기보다 기업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렸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의도하지 않은 저금리 정책의 부작용이다.기업 부채와 거품이 급격하게 꺼지는 충격을 피하기위해 Fed는 금리를 동결하며 금융완화로 돌아섰다. 이런 미국의 결정에 세계 각국이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채나 거품은 결국 꺼지기 마련이다. 이번 금융완화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그동안 풀린 유동성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예측하기 어렵다. 


한편,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자 각국의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누적된 재정적자로 재정정책에서 한계를 느낀 각국의 정부는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 해결사로 나선 중앙은행의 힘을 다시 빌리기를 기대하며 압박을 가하는 모습이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위협하지는 말아야 한다.


한국경제 위기 현실화… 맞춤형 정책 필요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 걸린다”는 말이 있듯한국경제는 대외변수에 취약하다. 국책 연구기관인한국개발연구원(KDI)은 4월 경제 동향에서 국내 경기가 이미 ‘둔화’ 단계를 지나 ‘부진’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는 투자가 위축되고 수출이 지난해 12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선 데다 민간소비마저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행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 성장 정책, 친노조·반기업적정책의 여파로 투자가 부진하고, 실업이 증가하며, 기업과 가계가 한계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경제를 떠받쳐온 수출과 재정의 건전성마저 올해 들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한계기업과 가계의 도산, 이에 따른 경제위기가 닥칠 수 있다.


한국은 기축통화를 보유한 미국이나 일본, 유로존처럼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쓰기 어렵다. 경기침체기에 나타나는 안전자산을 선호해 국내에 들어와 있던 외국자본이 빠져나가거나 잠복 상태인 부동산 투기가 되살아날수 있기 때문이다. 시한폭탄인 가계부채가 불어날 위험성도 있다. 미국이 정책금리를 인하한다고 선뜻 따라 하기 어려운 처지다.


글로벌 통상분쟁과 중국 경제 침체 등의 대외요인은우리가 해결하기 힘들다. 예고된 대외변수가 국내 요인과 겹쳐 경제위기가 현실화하기 이전에 우리 힘으로할 수 있는 정책을 선제적으로 펼쳐야 한다. 그러려면 연준을 공격하는 트럼프처럼 정치(이념)가 경제를 오염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념 편향적인 정책은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어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규제를혁파해야 한다. 또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수정·보완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 적자를 감수하며 재정을 투입하는 분배 위주의 정책에서 투자 활성화와 성장동력을 회복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해야한다. 왜냐하면,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 경제는 지속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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