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발자취

왜곡된 기록, 감춰진 진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름을 추적하다

독립의 발자취

글 편집실



올해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이 제정된 지 10회차가 되었다. 뜻깊은 시기에 이를 기릴만한 영화 한 편이 최근 개봉하였다. ‘위안부’ 역사를 지우려는 세력에 맞서 진실의 조각을 맞춰가는 르포무비 〈코코순이〉다. 연출을 맡은 이석재 감독은 말한다. ‘위안부’ 역사 왜곡이 어떻게 발생했고, 일본 극우세력 등이 이를 어떻게 악용했는지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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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코코순이〉포스터

Q. 영화 〈코코순이〉를 소개해주세요. 

1942년 5월, 조선군사령부의 제안으로 일명 파파상·마마상 부부가 취업을 빌미로 조선인 여성 20명을 부산·대만·싱가포르를 거쳐 미얀마 미치나에 자리한 ‘위안부’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1944년 8월, 연합군에 붙잡힌 20명의 조선인 ‘위안부’는 통역도 없이 일어와 영어로 심문받은 후 인도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미얀마 미치나 지역에서 포로가 된 조선인 ‘위안부’의 심문 내용을 정리한 미 전시정보국 49번 심문보고서(Office of War Information, 이하 OWI) 부록에는 ‘조선인 ‘위안부’는 돈벌이에 나선 매춘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에 관하여 당시 연합군 포로심문관이었던 아쿠네 겐지로와 인터뷰를 진행하여 OWI 49번 심문보고서가 얼마나 노골적인 편견과 거짓으로 가득한지 밝혀냈습니다. 더불어 20명의 조선인 ‘위안부’ 중 유일하게 기록되어있는 단 하나의 이름, ‘코코순이’의 자취를 더듬어나갔습니다. 이처럼 영화는 OWI 49번 심문보고서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왜곡된 역사를 전파하는 데 어떻게 사용되어왔는지, 그리고 왜 ‘코코순이’를 기억해야 하는지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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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재 감독

Q. OWI 49번 심문보고서에 대해 자세히 설명 바랍니다. 

OWI 49번 심문보고서는 연합군 번역통역부(ATIS)의 제120호 조사보고서와 함께 연합군 기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입니다. OWI 심리전팀이 생산한 이 비밀문서는 미얀마 미치나 지역에서 포로가 된 조선인 ‘위안부’의 심문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20명이나 되는 ‘위안부’가 한 번에 포로가 되어 심문보고서까지 남긴 경우로는 유일한 사례입니다. 이 보고서에는 조선인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등의 거짓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현재 일본 정부가 책임을 거부하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매도하는 일본 극우단체와 관련인들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의 작성자를 살펴보면 문서의 신빙성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미국 정부기관의 책임하에 작성되었지만, 이 보고서를 만든 알렉스 요리치는 일본계 미국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요리치는 20명의 조선인 여성이 매춘부가 아닌 ‘위안부’였다는 증거를 보고서 곳곳에 흘렸습니다. 그는 조선인 여성들이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미얀마로 오게 됐노라고 서술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위안부’ 문제의 쟁점 중 하나인 ‘자발적 참여 여부’에 관해 요리치가 적절한 증언을 해준 것입니다. 


Q. 이 밖에도 보고서의 신빙성을 흔드는 근거가 있나요? 

요리치는 ‘위안부’가 일본군의 통제를 받은 사실도 노출했는데요. 일본군이 가는 곳마다 ‘위안부’가 있었으며 일본군의 규정이 이들에게도 적용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극구 부인했던 ‘일본군의 관여’ 사실을 은연중에 실토한 셈이죠. 이에 따라 이 보고서는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쪽이 아니라 긍정하는 쪽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자료이며,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을 배척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보고서 내용 중 사기·기망에 의한 강제연행과 일본군 개입의 실상은 일본의 국가범죄를 입증하는 데도 유용합니다. 


Q. ‘코코순이’의 행적을 따라가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을 텐데요.

1942년 5월, 일본군의 강제동원으로 미얀마 미치나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20명은 1944년 8월, 연합군에 체포되어 조사받았지만 이후 행적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 행적을 찾기 위해 우선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미치나 위안소 현장을 확인하였습니다. 이후 20명의 귀국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미치나와 인도 등을 여러 차례 방문해 현장 답사하였고, 여러 증언을 확보하여 귀국 행적 파악에 들어갔습니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와 스위스 국제적십자위원회 등을 찾아 미공개 자료를 발굴하여 이름과 출신 지역을 바탕으로 실제 강제동원되었을 한 명의 존재, ‘코코순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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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장면들

Q. ‘위안부’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나요? 

역사와 기억에서 지워진 수많은 ‘코코순이’들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먼 이국땅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들의 운명을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한데,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외면할 수 없었지요. 일본군에 의해 강제동원된 조선인 ’위안부’는 약 20만 명으로 추산하지만, 우리나라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는 240명뿐이고 현재 생존자는 11명에 불과합니다. 지금이라도 기억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제가 다시 한번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꺼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특별상영회를 가졌는데…. 

지난 8월 4일, 독일 베를린 특별상영회가 소니센터 아세날 극장에서 열렸습니다. 유럽에서 최초로 소녀상을 세운 나라이자 최근 평화의 소녀상 이슈로 국제적인 관심을 집중시킨 독일에서 열렸기에 그 의미가 남달랐는데요. 이날 상영회에는 베를린에 사는 한국인과 유학생을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및 한일문제에 관심있는 관객과 취재진 등 약 6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상영 후에 간담회를 가졌는데, 1992년부터 독일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활동을 해온 여성은 “이전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감정적인 접근이 아닌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문제 제기가 젊은 세대와 독일 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데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며 호응했습니다. 또 역사학자라고 밝힌 독일인 남성은 “OWI 49번 심문보고서가 제대로 된 통역도 없이 허술하게 작성된 것임을 드러내는 이름인 ‘코코순이’를 영화의 제목으로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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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특별상영회

Q. 가수 이효리의 참여도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영화 엔딩에 가수 이효리가 작사·작곡·노래한 〈날 잊지 말아요〉가 삽입되었는데요. 이 노래는 2013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위한 프로젝트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이효리의 따뜻한 목소리와 시적인 가사가 긴 여운을 선사합니다. 또한 영화 〈겨울왕국〉의 ‘안나’와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의 ‘감성세포’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에 참여한 박지윤 성우가 내레이션으로 합류해 신뢰를 더했습니다. 이 밖에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 〈스카이캐슬〉 등의 OST에 참여한 박정은 음악감독 등이 참여하여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Q.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거짓에 속아 ‘위안부’로 강제동원되어 이역만리 먼 타국 땅에서 고통을 겪고 끝내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코코순이’들의 눈물과 회환은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만의 아픔이 아니라 현재의 아픔인 것이지요. 어떤 기록이라도 남겨놓아야 이분들의 아픔이 우리에게서 잊히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올해는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 통과 15주년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공식 제정 10회차가 되는 해입니다. 뜻깊은 시기에 개봉하는 만큼 많은 분이 영화 〈코코순이〉 의미를 되새겨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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