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한인합성협회, 하와이 한인단체를 최초로 통합하다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을 전후하여 국내·외 각지에서는 국권회복운동이 전개되었다. 1907년 하와이 한인들은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각 지방에서 조직된 20여 개 단체를 통합하여 호놀롤루에서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를 결성하였다. 하와이 한인단체를 최초로 통합한 한인합성협회는 지회를 설립하고 기관지 『한인합성신보(韓人合成新報)』를 발간하는 등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장인환·전명운 의거 후 미주 한인사회 통합운동이 전개된 결과 한인합성협회는 1909년 미국 본토의 공립협회(公立協會)와 국민회를 설립하였다. 1910년에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의 참여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로 확대되어 미주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와이 호놀롤루에 위치한 한인합성협회 회관(좌) / 하와이 한인합성협회 장정_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안원규, 미주 한인사회 지도부로 독립운동을 이끌다
안원규는 1878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1903년 하와이로 이주한 후 잡화점·양복점 등을 운영하며 생활하였다. 1907년 하와이 한인단체 통합을 위하여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여 부회장을 지냈고 1909년 국민회 조직에도 앞장섰다. 1910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총회장에 임명되었고 1921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가 대한인교민단으로 개편되자 부단장이 되었다. 1928년 대한민족통일촉성회에 참여하며 하와이 한인사회 통합운동을 주도하였다. 1941년 해외한족대회 개최 결과 결성된 미주지역 독립운동 연합단체인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는 의사부 위원이 되어 외교 및 선전 활동에도 주력하였다. 한국독립당 하와이 총지부에 참여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정부는 안원규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금공고서』 (1941)(좌) / 안원규 가족사진(우)
정원명, 미주 한인사회의 단결을 위하여 헌신하다
정원명은 1881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04년 하와이에 이주한 그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1905년 에와친목회를 조직,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하와이 한인단체 통합을 위하여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고 1909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1910년 대동공진단 단장,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대표원·참의장 등을 지냈다. 그는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후원회를 조직하고 기관지 『단산시보(檀山時報)』를 발행하여 한인 동포들의 독립의지를 고취하였다. 1928년 대한민족통일촉성회 집행위원에 선출된 그는 하와이 한인사회 단결을 위해 헌신하였다. 1936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참의원 등을 지냈고 임시정부의 군사활동을 후원하는 찬무회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정부는 정원명의 공훈을 기려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안창호와 정원명 (1906)(좌) / 대한인국민회 부과금 및 독립금 장부 (1921)(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