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계형(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언뜻 보기에는 매우 긍정적이지만, 이면에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덮자는 의도가 있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시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지금껏 어떠한 사과나 반성조차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7년 전 일본이 하시마 탄광(일명 군함도)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것이 바로 그 일례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옥섬
2015년 7월 5일 일본 내 ‘근대산업시설’과 ‘메이지산업혁명: 철강·조선·석탄 산업’ 관련 23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서구권에서 시작된 산업화가 비서구권 국가로 성공적으로 이전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이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일제시기 대표적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이 운영하던 나가사키조선소·다카시마 탄광·하시마 탄광· 미이케 탄광·미이케항구·야하타제철소 등이 포함된 것이 문제였다. 이 중 일부는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역사 왜곡의 장소이자, 한인들의 강제노동 피해 현장이었다.
유독 시선을 끄는 곳은 하시마(端島) 탄광이었다. 하시마는 나가사키 반도에서 서쪽으로 약 4.5㎞ 떨어져 있으며, 큰 야구장 두 개를 합친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다. 회색빛 섬의 모습이 1944년 완성된 해군 전함 ‘도사(土佐)’와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軍艦島)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1810년 석탄이 발견되고 미쓰비시 회사가 1890년에 매입하여 석탄을 채굴하면서 하시마 탄광이 비롯되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이곳에 끌려간 많은 한인과 전쟁 포로들은 지하 1,000m 아래 경사진 좁은 곳에서, 서로의 몸을 고무줄로 묶은 채, 제대로 된 화장실도 없이 온도 40도가 넘는 곳에서, 하루 12~18시간의 강제노역을 해야만 했다. 당시 하시마를 일컬어 ‘지옥섬’, ‘감옥섬’이라 불렀다.
우리 정부의 늑장 대처가 가져온 결과
일본 정부가 하시마 탄광 건축물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 한다는 소식이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진 것은 2008년 8월경이었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나가사키시가 하시마 건축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자 하며 근대화유산연구회를 발족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정부는 물론 언론도 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일본 정부가 2009년 5월 1일 하시마를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올린 뒤 2010년 3월에서야 우리 언론은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때 1980년대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하시마 탄광에서 한인 120여 명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과 소설가 한수산이 이를 취재하여 일본어로 『군함도』라는 소설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소설 『군함도』는 2016년에서야 한국어로 번역·출판되었고 2017년 7월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우리 언론이 주목했을 때는 이미 나가사키시가 하시마를 관광상품으로 판매 중이었다. 그런데 상품안내서 어디에도 ‘태평양전쟁 당시 한인 등이 처참히 희생되었다’는 내용은 없었다. 당시 국내 언론은 ‘하시마 탄광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자체를 반대하기보다는 하시마의 역사와 그곳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좀 더 고민하며 성찰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정도였다. KBS-1TV는 〈역사스페셜〉 프로그램에 ‘지옥의 땅, 군함도’라는 방송을 내보냈고, 간혹 일간지에 하시마 탄광에 끌려갔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렸지만 사실을 전달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후 2012년 7월 일본 정부가 하시마 탄광 등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자, 그제야 우리 언론은 비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도 ‘사망 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 탄광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실태 기초조사’를 실시하여 2012년 12월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런 가운데 아베 내각은 2013년 9월 하시마 탄광을 비롯한 조선소와 부두 등 일본근대화의 산업 유산을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공식 결정하고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물론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자나 이들에 대한 가혹행위·노동착취·임금체불 등과 관련한 내용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이에 발발하며 ‘이웃 국가의 아픔과 관련 있는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것이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기리는 세계문화유산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철회를 요구했지만, 뒷북을 친 거나 마찬가지였다.
등재를 놓고 펼친 치열한 외교전
이후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를 무대로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우리의 준비와 대응은 미흡했고 안일했다. 더욱이 일본이 10년 동안 준비하였고 유네스코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외교를 통한 대응은 역부족이었다. 이에 우리는 철회 요구 전략을 바꿔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반영하여 등재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등재기간을 1850년부터 1910년까지로 한정하지 말고 전체 역사에 담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 결과 2015년 7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등재가 최종 결정되었지만, 등재 결정문에 각주 형식으로 ‘강제징용’ 사실이 명시되었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는 전방위 외교 노력이 이뤄낸 값진 성과이고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을 인정한 것이라며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 노동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면서 합의는 무색해지고 말았다. 또한 하시마에 마련된 전시관에는 강제동원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증언들로 채워졌다.
일본 정부가 201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한 ‘보전상황보고서’에는 ‘강제징용’이란 내용은 없었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그 후에 일본 산업을 지원한 한국인이 많았다‘라는 상당히 왜곡된 내용이 기술되었을 뿐이었다. 이는 일본 정부가 한국인의 강제 동원을 부정하며 배상을 거부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2018년 6월 개막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측에 강제노역 등의 역사를 분명하게 알릴 것을 촉구했으나, 일본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이에 2021년 7월에 열린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강한 유감을 표하며 이례적으로 경고하였다.
일본, 사도광산 ‘꼼수’ 등재 추진
2022년 1월 일본 정부는 니가타현 사도(佐渡) 광산을 세계유산 단독후보로 전격 추천했다. 일본 문화청 문화심의위원회가 사도 광산을 일본의 세계유산 후보로 선정한 지 꼭 한 달 만이었다. 수법도 하시마 탄광 때와 비슷하게 논란을 피하고자 1860년대 이전인 에도시대 무렵으로 시기를 한정했다. 2019년 7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따른 보복 조치로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단행하여 한일 간에 갈등이 가시지 않았는데도 굳이 이를 추진했다는 것에 일본의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일본이 사도 광산을 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올려놓은 것은 2010년 11월로 10년이나 더 된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와의 갈등을 우려했는지 2017년·2018년·2019년 세 번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단일후보에서 탈락시켰다. 2019년에 한국에서 흥행한 ‘군함도’ 영화가 한몫했던 듯싶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등록 추진이 보류되었다.그런데 2021년 12월 일본 문화심의회는 사도 광산 유적을 단일 후보로 선정하였다. 이때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도 일제강점기 당시 최소 1,141명의 한국인이 사도 광산에서 노역했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문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각계각층에서 즉각 철회를 촉구했으나,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일본 극우의 입장을 받아들인 일본 정부는 2022년 1월 28일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단수 추천하였다.
과거를 교훈삼아 등재 막아야
다시금 한일 간에 ‘역사전쟁’이 시작되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일본 측의 사도 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왔고, 일본지역 탄광·광산의 한국인 강제동원 실태를 조사했으며 관련 연구도 축적하였기에 예전처럼 당하지 않으리란 자신감이 있는 모양새다. 더욱이 당사국 간 합의, 즉 한국이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찬성하지 않으면 유네스코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인 일본의 외교력은 만만치 않다. 우리 국민이 모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정부는 외교적인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는 ‘군함도’의 전철을 밟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