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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애잔한 자기위로, 가난한 취향

글 장근영 심리학자
청년들의 애잔한 자기위로, 가난한 취향
얼마 전, SNS에서는 ‘가난한 취향’이 화제였다.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이는 소소한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소소잼’, 불필요한 것에 자신의 일주일치 용돈을 다 써버리는 정도의 소소한 ‘탕진잼’ 같은 단어들이 그런 가난한 취향의 스펙트럼 안에 들어간다.
‘가난한 취향’은 ‘소박한 만족’과는 좀 다른 의미다. 소박한 만족은 일상의 작은 것들에 만족하는 자세로, 지난번 주제로 다루었던 ‘휘게’가 대표적이다. 일본에는 비슷한 소박함을 뜻하는 단어로 ‘와비’가 있다. 우리나라의 선비 정신도 결국 물질적 만족보다는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이런 소박한 만족과 일맥상통한다. 평소에 일상적으로 누리는 따듯한 차·소박한 음식·평범한 친구들과의 잔잔한 모임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삶의 태도를 담고 있다.
반면에 가난한 취향은 평소에 참았던 충동을 사소한 곳에 배출하는 일종의 ‘소박한 카타르시스’에 가깝다. 흔히 가난한 취향의 예로 인용되곤 하는 ‘인형뽑기’를 생각해보라. 인형을 뽑는 동안 느끼는 감정은 뿌듯함이나 행복보다는 짜릿한 흥분이나 순간의 후련함에 가깝다. 그것은 마치 일본의 샐러리맨들이 퇴근 후에 즐기곤 했던 ‘빠칭코’와도 비슷하다. 아니 빠칭코는 환전을 통해 재순환이라도 가능한데, 인형은 그저 집에 쌓아놓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보다 더 충동적이고 소비적일지도 모른다.
요컨대 가난한 취향의 본질은 ‘가난한 낭비’이고 이런 낭비는 ‘감정소비’의 일종이다. 감정소비의 대표적인 예는 충동구매다. 충동구매는 필요해서 물건을 구입하는 합리적 구매의 반대말로, 감정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하거나 소비하는 행동을 말한다. 얼마 전 한 시장조사 기관의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53.4%가 충동구매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소비자 10명 중 3명은 ‘다운된 기분을 풀기 위해 평소라면 구매하지 않았을 제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이런 충동구매 경험은 50대에서는 5명 중 1명에 불과했지만, 30대에서는 42%, 20대에서는 49.2%로 매우 높았다.
낭비를 통해 좌절감을 견디다
이제 질문을 다시 해보자. 왜 젊은 세대는 지금 ‘가난한 낭비’를 비롯한 온갖 형태의 감정소비를 하고 있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좌절이다. 이들은 괜찮은 직업을 얻고자 하는 노력이 좌절되기 쉬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최근까지 청년 고용상황은 계속 악화일로였다. 2015년부터 2016년 사이 월별 청년실업률은 연일 전년 동월대비 최고치를 갱신했다. 전반적인 고용상황이 열악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그나마 질적으로 나은 몇몇 직장을 향한 경쟁률은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치솟았다. 공무원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고용정보원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25세 이상 29세 이하 청년의 절반 이상(53.9%)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세에서 24세 사이는 47.9%로 나타났다. 또한 안전행정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9급 공무원 응시자의 비율은 2009년 13만7천여 명에서 2012년에는 15만7천명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2013년에는 20만4천여 명으로 처음 20만 명을 돌파했다. 그에 따라 9급 공무원 경쟁률은 2013년에 17.6대 1에서 2016년에는 자그마치 54대 1로 크게 뛰었다. 54명 중 53명은 취업의 문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좌절 앞에서 우리는 둘 중 하나의 반응을 택하게 된다. 분노하고 공격하거나, 혹은 그 분노를 꾹꾹 참거나. ‘착하게’ 사회화된 사람들은 대개 두 번째 선택인 참기를 택한다. 문제는 인간의 인내력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인내력을 ‘자기통제력’이라 부르는데, 퀸즈랜드 대학 사회심리학과의 로이 바움마이스터(Roy Baumeister) 교수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이 자기통제력의 총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예를 들어, 눈앞에 맛있는 음식을 보여만 주고 먹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기통제력을 소모하게 만든 집단 vs 쉬운 수학문제 같은 것을 풀면서 자기통제력을 온전히 보전한 집단에게 똑같이 어려운 과제를 시키면 첫 번째 집단의 수행이 현저히 낮게 나타난다.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통제력을 미리 소모하면 그 직후에는 자기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할 수 있는 일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소비는 자기통제력을 충전하는 역할을 한다.
요컨대 가난한 취향, 혹은 가난한 낭비는 나를 끊임없이 좌절시키는 세상에서 버티기 위해 자기통제력을 충전하려는 노력인 셈이다. 물론 개개인 스스로가 그런 소소한 낭비를 합리적 소비로 바꿀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청년 세대가 이런 식으로 자기감정과 노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진짜 우리 사회에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장근영
심리학자 겸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책연구소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활동하며 대학에선 매체심리학·발달심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 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