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학생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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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회 회원 사진

1929년 11월 이 땅에 뜨거운 함성이 또다시 울려 퍼졌다. 3·1만세운동 이후 약 10년 만의 일이었다. 다시 한반도를 독립 열망으로 채운 이들은 다름 아닌 10대 학생들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1929년 10월 말 나주역에서 시작되었다. 통학 중이었던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이 ‘충돌’하였고, 이에 일본 경찰이 개입하여 일본인 학생의 편을 들며 한국인 학생을 엄하게 다스렸다. 광주지역 학생들은 이전부터 성진회·독서회·소녀회 등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식민지 교육 반대와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광주에서 시작된 항일운동은 목포·나주를 거쳐 서울까지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3백여 개 이상의 학교가 참가하였고, 참가한 학생 수는 무려 5만 4천여 명이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커다란 태풍을 만들어내듯이, 학생들의 작은 외침이 꺼져가는 민족의식과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렸다. 나라 없는 시대에 태어난 그들이 끝까지 외친 것은 ‘조선독립만세’였다. 가져보지 못해 더욱 사무쳤던, 그래서 더욱 간절히 되찾아야만 했던 조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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