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계형(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2022년 10월, 국내 언론 매체를 통해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필수교재에 ‘한국사’에 대한 왜곡된 내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수정에 대해 긍정적인 검토를 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지난 9월경 이와 관련한 내용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보다 국내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오히려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조차 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해외의 한국사 왜곡 문제가 지금껏 반복되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재에 담긴한국사 왜곡 내용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2022년 9월 12일 국내 한 방송매체가 “하버드 경영대학원 필수교재에 한국사 왜곡 내용이 담겨 있다”고 처음 알렸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 근대사와 관련한 부분만을 살펴보면, “일본의 지배 덕분에 한국이 발전했다.”, “일제 35년 동안 (…) 한국은 크게 산업화했으며 교통과 전력이 발전했다. 교육, 행정, 경제 체계도 근대화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하면서 당시 우리나라 예산의 1.5배에 달하는 금액을 한국에 지급했고 문제를 다 해결했다.” 등의 내용으로 일제의 한국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한 것이며, 더욱이 일제의 강제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이에 국내 여러 언론사가 앞다투어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전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국적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1학년 학생들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필수과목의 교재일 뿐만 아니라 영어 교재인 만큼 전 세계적으로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뉴스는 온라인상에 확산하였고, 특히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포함한 6곳(교과서 집필진·교과서 출판사·학교 온라인 지원센터·교육센터 등)에 시정을 요구하는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 또한 하버드대 한인학생회도 움직였다. 한인학생회는 항의 서한을 학교 측에 보내는가 하면 온라인 국제청원사이트에 항의서를 올렸고 교내 신문사와 교수들의 지지 서명을 받았다. 골자는 내년 1월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수정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이자 교재 <코리아>의 공동 집필자인 포레스트 라인하트 교수가 문제를 제기한 반크 측에 “우리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에 피드백을 받는 것에 관심이 있고, 당신이 제시한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일단락된 듯하지만, 되짚어 보면 문제가 된 교재는 이미 2015년 출간되었고 그 직후부터 한인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7년이 지나서야 내용 수정에 들어간 것이다. 그 이유는 하버드대 내 일본 측 후원을 받는 재팬재단연구소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한국인 학자가 집필진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 한국사 왜곡 문제
그런데 해외 교과서의 한국사 관련 왜곡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어 온 일이다. 1975년에 정부가 외국에서의 잘못된 한국관 교육이 국력 신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여 이를 시정하려는 시도가 처음으로 이뤄졌다. 이를 전담할 ‘한국관시정사업추진위원회’가 설치되어 세계 여러 나라의 교과서를 수집·분석하였으며, 왜곡된 부분에 대해서는 시정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한 예로 1970년대 미국의 고교 교과서에서는 한국사를 거의 다루지 않거나, 일부에서는 한국인을 ‘자치 능력이 없어 외국 통치에 익숙한 국민’이라고 하는 등 왜곡 문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특히 일본 교과서에 문제점이 가장 많았는데, 일본의 한반도 진출을 미화하거나 한국 고유의 역사문화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방 전에 일본이 한국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라는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이후 해외 교과서 관련 업무는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담당하다가, 1981년 한국교육개발원에 담당하여 해외 교과서 수집 및 분석 작업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해외 교과서 등의 한국사 왜곡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하여 여론이 들끓을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이는 것을 되풀이했다. 1982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파동 이후 관심 대상 범위를 미주·유럽·아시아 등으로 확대하여 교과서를 분석하였는데 한국사 왜곡 문제는 여전했다. 대부분 교과서에 한국 역사가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기술되어 있거나, 한국이 일본의 문화권 내에 있다고 하거나 남한이 북한보다 공업발전이 뒤떨어져 있다거나, 남북한의 명칭을 혼동해서 사용하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신문 기사를 보면, 해방된 지 45년이 지났고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을 치른 뒤였지만 여전히 ‘외국 교과서 한국 오기 투성이, 미·일·스페인 등 잡지도 마찬가지’, ‘외국 교과서 한국 왜곡 많다, 정보 부족, 일본 자료 인용 탓’, ‘외국 교과서 한국 왜곡 극심, 일본 것 베껴 역사문화 열등국으로’, ‘외국 교과서 한국 기술 왜곡 오류 많다’, ‘동남아·중동 교과서 한국 관련 왜곡 심각’, ‘외국 교과서 한국사 왜곡 여전’, ‘한국사 왜곡 방치할 텐가’ 등의 제목이 반복되었다.
해외의 한국사 왜곡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영리 민간단체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1999.1. 설립)나 정부도 여러 관련 산하기관이 조직되어 다각적으로 대응하면서 그러한 문제점들은 크게 줄어들었다. 반크는 전 세계 교과서·지도·웹사이트·박물관·미술관 등에 한국사·영토·문화 등과 관련된 오류를 제보 받아 이를 시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991년 12월에 출범한 한국국제교류재단(KF)은 꾸준히 해외 인사 초청, 해외 한국학 관련 도서관 지원, 국외 한국 연구 지원, 외국의 주요 국제교류기관과의 교류·협력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8년 2월 출범한 해외문화홍보원(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은 한국과 관련한 잘못된 정보를 효율적으로 바로잡는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해외 한국학 연구 및 교육 거점 지원과 세계적 수준의 우수 연구 및 번역 지원 그리고 한국학 교육 인프라가 취약한 해외 대학의 한국학 교육 환경 구축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해외의 한국학 교육기관은 2022년 11월 현재 107개국 1,408곳에 달한다.
그런데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재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은 아직도 미흡한 구석이 남아 있다는 점을 방증해준다. 전 세계에서 발행되는 교과서나 잡지 등에서 왜곡된 한국사를 완벽하게 찾아내 시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이에 대응하는데 구조적인 문제점이 없는지를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문제점을 개선해야만 할 것이다. 교재는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에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재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사를 전공하는 외국인 학자가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므로, 전 세계 외국인 학자를 모니터링하여 부족한 분야의 한국학 연구자를 적극적으로 발굴 및 양성해야 한다. 또한 그들에게 연구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지속해서 해당국에 논문과 저서를 발표토록 해야 한다. 물론 국내 한국사 관련 학자의 해외 학술지 논문 발표나 저술 지원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해외 파견도 활성화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역사 관련 학술지를 해외 주요 도서관에 배포하는 것도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논문의 영문 초록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지만, 제각각인 한국사 관련 영어 용어를 통일하기 위한 사전 편찬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