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편집실
만주지역 독립단체 통합에 나선 박건병
박건병(朴健秉, 1892~1932)은 1919년 8월 철원군 동송면 관우리 도피안사에서 김상덕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대한독립애국단의 강원도 도단인 철원애국단을 조직하고, 학무과장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0월 철원면 사요리 우시장에서 군중에게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도록 권유하는 등 주도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1920년 1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강원도 대표의원에 선출되었다. 1921년 4월 각 독립단체의 통합을 위해 베이징에서 개최된 군사통일주비회(軍事統一籌備會)에서 국민대표회의 주비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23년 1월 상하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 창조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10월 한국독립유일당 북경촉성회에서 장건상 등과 함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27년 11월 상하이·난징·광둥·우한 지역 대표들이 모여 결성한 한국독립당관내촉성연합회에 참가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5월 전민족유일당조직회에 참석하여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해 활동하였다.

박건병 생가 터(생가 터 뒤에 보이는 건물은 화지5리 마을회관이다.)
철원애국단·대한민국 임시의정원·한국독립유일당 북경촉성회 등에 참여하여 활동한 박건병의 생가가 있었던 곳으로 집터는 남아있지 않다.
주소
강원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 458-1
독립단체 통합을 위해 개최된 군사통일주비회
1921년 4월 24일 베이징에서 활동하던 이회영·신채호·박용만·신숙 등의 주도하에 군사통일주비회가 개최되었다. 군사통일주비회에는 국내의 국민공회·조선청년단·광복단·노동당·통일당, 노령의 대한국민의회, 하와이의 국민군과 국민단, 북간도의 군정서 등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이 회의에서 청산리대첩 이후 독립군부대의 정비 및 대오의 통일문제, 그리고 독립군부대의 지휘권 문제가 논의되었다. 독립군의 통할문제를 논의한 외에, 이 회의에서는 임시정부의 불신임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1년 5월 국민대표회 개최문제가 대두되면서, 군사통일주비회 활동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였다.

군사통일주비회가 개최되었던 삼패자화원의 옛터
1921년 4월 24일 해외 독립운동 세력을 통할하려는 통일기관의 설치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군사통일주비회를 개최한 곳으로 이곳은 현재 재개발로 베이징동물원이 들어서 옛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베이징동물원 정문 서쪽이 그 지점으로 추정된다.
주소
중국 베이징 서직문외대가(西直門外大街) 1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