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숨결

마지막 빛을 발한
스타를 찾아 : 영월

마지막 빛을 발한<BR />스타를 찾아 : 영월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마지막 빛을 발한 스타를 찾아 : 영월 




영월은 긴 세월 동안 변방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던 만큼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 영월을 찾았다. 실존 인물인 조선 6대 임금 단종과 영화 <라디오 스타>의 주인공 ‘최곤’이 그들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은 사라지고 없지만, 흔적들은 여전히 남아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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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청령포를 둘러싼 서강이 꽁꽁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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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없는 밀랍인형에 불과하지만,

단종의 비통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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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구불구불 자란 아름다운 천년의 소나무숲 뒤로 어소가 있다

 



비운의 스타, 조선 6대 임금 단종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 것이 아니라, 자고 일어나 보니 왕이 된 열한 살의 아이가 있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다. 어린 임금의 등장으로 조선왕조는 사실상 권력의 공백기를 맞았다. 야심 찬 숙부 수양대군은 이때를놓치지 않고 왕위 찬탈에 나선다. 조카 단종을 상왕 자리에 앉힌 뒤 권력을 독차지한 것이다. 이후엔 왕좌를공고히 하기 위해 인륜을 저버린다.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하고 청령포로 유배 보낸 것이다. 그때 단종의 나이는 고작 열여섯이었다.

영월을 휘감아 도는 서강의 물길이 청령포에서 마침내 얼어붙었다. 꽁꽁 얼어붙은 강에선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나룻배도 깊은 동면을 취할 수밖에. 그래서 청령포엔 깊은 고요함만이 감돈다. 청령포는 동·남·북 삼면이 서강의 물길에 에워싸인 형국이다. 나머지 한 면인 서쪽은 깎아지른 절벽 지형이다. 그러니 배가 아니고서야 청령포에 발을 디디기는 아예 포기해야 한다. 철옹성처럼 쉬이 접근할 수 없는 이곳, 창살 없는 감옥임에 틀림없다. 그런 청령포지만 겨울에 찾으니 흰 눈이 내린풍경이 마치 하얀 솜이불처럼 따뜻하게 보여 단종의 비애가 마음에서 조금 가신다.

나루터를 출발한 배가 아주 천천히 회전한다. 회전할 때 약간의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곧 잠잠해진다. 잠시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배는 청령포에 도착한다. 배에서 내려 울창한 솔숲 속으로 들어서자 별천지에 온 듯 기분이 상쾌하다. 여행자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이겠지만 유배된 단종에게는 한낱 추운 겨울날의 적막함이었으리라. 청령포에 터를 잡은 소나무들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에 이르는 거목들이다. 주변 소나무 중 유독 한 그루에 눈이 간다. 허리를 90도로 꺾은 채 어소를 향해 절하는 듯한 모습 때문이다. 나무가 휘어져 향한 곳은 단종이 유배 중에 기거한 어소다. 어소에는 단종의 유배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앉아서 글을 읽는 단종과 건넌방에서 머리를 조아린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내시처럼 보이는 밀랍인형이다. 감정이 없는 인형에 불과하건만 그걸 보노라면 비통함이 느껴진다. 단종의 심중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듯하다.

어소를 등지고 발길을 옮기면 솔숲 사이에 유난히 키가 큰 600여 년 된 거목을 마주한다. 단종의 곁에서고생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觀·볼 관) 그의 오열하는 소리(音·소리 음)를 직접 들었던 나무라 하여 ‘관음송(觀音松 천연기념물 제349호)’이라 부른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자주 찾은 곳이 있다. 청령포에서 가장 높은 육육봉이다. 노산대(魯山臺)라 불리며 망향탑이 있는 그곳이다. 80m 높이의 깎아지른 벼랑 꼭대기에서 그는 한양 쪽을 바라보며 자주 눈물지었을 것이다. 아래로는 서강이 멀리로는 눈 덮인 영월이 그림처럼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행자의 눈에는 빼어난 절경이다. 하지만 유배생활을 하던 어린 임금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이 오히려 안타까운 그리움만 쌓이게 하는 절망의 단애이자 통곡의 절벽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시간에서 빠져나오듯 청령포를 뒤로 하고 나루터 앞에 선다. 멀지 않은 곳에 왕방연의 시조비가 있다. 청령포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단종 애사는 장릉에서 끝을 맺는다. 이곳은 청령포에서 자동차로 5분여 거리에 위치한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더욱 뜻깊은 곳이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좌를 빼앗기고 청령포에서 비통한 시간을 보내다 꽃다운 나이 17세가 되던 해에 죽임을 당한 단종. 그 주검조차 어느 한곳에 정착할 수 없었다. 급기야 차디찬 서강에 버린 듯 띄워졌지만, 그 누구도 앞장서서 시신을 수습하지 않았다. 서슬 퍼런 당시 조정의 후환이 두려워서 아무도 시신을 거들떠보지 않은 것이다. 이때 호장 엄흥도가 목숨을 내놓는 심정으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이곳에 암매장했다. 이후 단종이 노산대군을 거쳐 다시 단종으로 추복되고 능의 이름인 능호를 장릉으로 정한 것은 사후 240여 년이 지난 뒤 숙종 24(1698)에 이르러서다.

장릉은 임금의 능임에도 다른 조선왕릉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다. 능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 뒤에 병풍처럼 둘러 세우는 병풍석과 난간석도 세우지 않았다. 석물 또한 단출하다. 특이한 점은 문인석과 석마가 각 한 쌍씩 있으나 무인석과 석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다른 능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배식단사가 있다. 이것은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한 것으로 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다. 정려비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 충신 엄흥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조 때 세운 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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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디오 스타>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청록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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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박물관의 앤티크 라디오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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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관측실에서 관측하고 있는 모습

 



아날로그의 감성이 노래를 타고 흐른다

이준익 감독이 연출하고 안성기, 박중훈이 호흡을 맞춘 영화 <라디오 스타>는 개봉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작품성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인 데다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는 팬들 덕분이다.

영화는 관객들의 환호성과 화려한 조명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지난날의 영광일 뿐이다. 한때 가수왕을 지냈던 최곤(박중훈 분)은 대마초, 폭행 사건 등에 연루되어 미사리 카페촌을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그런 그에게 부모처럼 따라다니며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챙겨주는 매니저 박민수(안성기 분)가 있다. 박민수는 최곤을 설득해 영월의 작은 방송국에 라디오 DJ 자리를 소개한다. 하지만 최곤은 제 마음대로 방송을 진행하는 것도 모자라 방송 중에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시키기도 한다. 결국 전 스태프들이 혀를 내두른다. 이 같은 최곤의 좌충우돌 막무가내 라디오 방송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진다. 그런데 그 속에서 잔잔한 감동이 묻어나온다. 이준익 감독이 “영화를 편집하면서 13번을 울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감동적인 영화다.

영화는 영월읍내와 외곽지에서 주로 촬영했다. 읍내에서 촬영한 곳 가운데 청록다방이 있다. 이곳에 가면 촬영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과 이준익 감독·안성기·박중훈 등의 친필 사인이 남아 있다. 달걀노른자를 띄워주는 쌍화차가 인기 메뉴다. 영화에 등장했던 인쇄소·세탁소·철물점·중국집·미용실 등도 가깝게 모여 있다. 외각 촬영지로는 봉래산 정상에 있는 별마루천문대가 있다. 천문대에서 우주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를 보면서 박민수가 최곤에게 명대사를 남긴다.


곤아 너 아냐.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서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별은 모두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야간에 천문대에서 내려다보면 영월을 밝힌 조명들이 하늘의 별처럼 아름답다. 천문대에선 천문 관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별자리를 관측한다. 영화에 등장했던 방송국은 원래 KBS 영월방송국이었는데 지금은 라디오 스타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앤티크 라디오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느껴볼 수 있다. DJ·프로듀서·작가·엔지니어 등 라디오 방송 관련 직업도 체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