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한 발걸음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
자율성 존중이 필요하다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 <BR />자율성 존중이 필요하다

글 이현수 일상심리 전문작가, 자유기고가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 자율성 존중이 필요하다


“집안에서 대화를 하지 않아요. 아예 서로 투명인간 취급을 합니다." 가족과 대화를 단절했다는 한 30대 청년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진로에 간섭하는 아버지와 심하게 다툰 후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 전부와 2년째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 따르면, 가족 내 갈등 고민으로 가정상담센터를 찾는 인구가 2009년 9만4021명에서 2014년 16만7888명으로 급증했다. 갈수록 골이 깊어져만 가는 부모와 자식 사이, 어떻게 하면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까.

           



자율성의 중요성 인식하기

자율성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이를 침해 당한 사람은 심각한 부작용(위협감이나 긴장, 불쾌감, 좌절과 짜증, 타인을 향한 무관심, 공격적인 반응, 무기력)을 보인다. 부모가 자녀에게 멘토를 자처하다가 오히려 상처를 주는 이유는 자녀에게도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지나치게 간섭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 최근 맨부커상을 받고 뉴욕타임스에 ‘올해 최고의 책 10권’에 선정되기도 했던 작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참고할 수 있다. 주인공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자, 그녀의 가족은 ‘저대로 두면 몸 상할 텐데’ 하고 ‘걱정’하면서 자꾸만 고기를 권한다. 급기야 아버지는 참다못해 영혜의 입에 억지로 고기를 쑤셔 넣는다.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식의 인생에 개입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의 폭력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자율성 침해에 대한 무감각성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동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킨다. 자녀의 인생은 부모가 아닌 자녀의 것이다. 부모 자식 간 갈등 해소의 출발점은 자율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다.

           

제대로 된 대화법으로 대화하기

Step1. 경청이 이해를 부른다

당신의 자녀는
1.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나요?
2. 친구 관계는 어떤가요?
3. 즐겨 하는 취미가 있나요?
4. 목표는 무엇이죠?
5. 부모님이 어떤 불만과 기대를 갖는지 아나요?

위와 같이 부모는 자녀와 관련하여 많은 질문을 받는다. 만약 이러한 질문에 확실하고 자세하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동안 자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최근 일주일간의 대화를 되짚어 봤을 때 ‘내 입장에서의 일방적인 지시가 대화의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라면, 지금부터라도 자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이 필요하다.
진정한 경청은 자녀의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내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 아니다. 자녀의 이야기에 참견하거나 말을 끊지 않고 제대로 귀 기울여주는 것이다. 북아메리카 해안지대의 인디언 부족들은 회의를 할 때 ‘인디언 토킹스틱’이라고 부르는 나무 막대를 사용하는데, 이 막대기를 쥔 사람이 발언하고 있을 때는 누구도 말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처럼 자녀와 대화할 때는 인디언 토킹스틱을 건넸다고 생각하는 게 어떨까. 자녀의 말이 다 끝날 때까지 인내심 있게 경청하면 상호 간의 신뢰와 친밀감을 증진하는 것은 물론, 자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격려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Step2. 갈등 상황에서는 I message로 표현하자

I message는 상황에 대한 서술을 자신의 방향으로 치환해서 표현하는 방법이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이 표현법은 ‘네가 ~를 해서 내 마음은 ~하다’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기준으로 어떻게 상황을 판단했는지 상대에게 알린다. 반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너는 ~안 하니’, ‘너는 ~해라’ 등의 You message 표현법은 자녀의 감정을 부정적으로 자극하고 부모가 자율성에 간섭한다는 인상을 주기 좋은 대화 방식이다. You message가 아닌 I message 표현법으로 대화하는 것은 갈등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부모를 향한 ‘부정성 효과’ 고려하기
부모 자식 간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자녀들에게도 주어진 과제가 있다. 부정성 효과(Negativity effect)를 인정하고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부정성 효과란 부정적 특징이 긍정적 특징보다 강렬하게 인식하는 것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속상한 일은 반복해서 곱씹지만 즐거운 경험은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부정성 효과는 인간의 생존본능과도 관련이 있는데, 이는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포식자와 마주친 일, 떫은 과일을 잘못 채집한 기억과 같은 부정적인 경험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이 생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자녀가 부모를 평가하는 과정도 이 부정성 효과라는 인간의 본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녀들은 부모가 잘 해줬던 것보다는 못해줬던 것을 더 확실하게, 오랫동안 기억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자신이 부모로부터 갖는 이 부정성 효과의 존재를 충분히 인정하고, 이를 없애려는 노력을 통해 부모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가치관과 목표를 수호하고 싶은 ‘독립정신’, 즉 자율성이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지켜줘야 할 상대만의 영역이 있다. 서로가 독립적인 부분을 존중하여 ‘따로 또 같이’ 행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녀는 관계를 한층 더 회복하고 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현수

일상심리 전문작가 겸 자유기고가. 매일경제·고용노동부·한국무역보험공사·서울신용보증재단·삼성생명·현대모비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문가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