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답을 찾다

인내천(人乃天),
나 자신을 하늘로 삼는 믿음

인내천(人乃天), <BR />나 자신을 하늘로 삼는 믿음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인내천(人乃天), 나 자신을 하늘로 삼는 믿음


“사람이 곧 하늘이다.”

손병희는 우리가 익히 그 이름을 들어봤을 독립운동가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지도자로 3·1독립선언을 이끌었던 독립운동의 거목이다.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3·1운동은 손병희를 주축으로 한 천도교 15인, 이승훈을 대표로 한 기독교인 16인, 한용운을 포함한 2인의 불교인들이 모여 이룬 성과였다. 기독교와 불교에 대해서는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의 배경지식이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천도교(天道敎)는 낯선 대목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손병희가 동학을 계승해 발전시킨 한국의 종교’라고 말이다.


망나니에서 민족지도자로 다시 태어나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남접의 전봉준군과 호응해 북접의 총지휘자로 활약 ▲1902년 24명의 동학 청년들을 일본에 유학 보내 선진문물 수용 적극 장려 ▲국민계몽운동 분위기에 발맞춰 1907년 보성학교와 동덕학교를 비롯해 수십 개의 남녀학교를 인수, 신설해 교육 사업을 주도 ▲ 신도들이 한 줌의 쌀을 내는 성미법(誠米法)을 통해 재정난 타개, 그 자금으로 3·1운동 주도 ▲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을 이끌고 독립선언 주도

여기까지만 보면 손병희는 부족함 없는 완벽한 민족지도자다. 그러나 유년시절을 살펴보면, 성년이 되어 민족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어불성설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좋게 표현한다면 질풍노도, 성장통의 시간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보단 망나니에 가까운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충북 청주에서 아전생활을 하던 아버지 손두흥과 첩인 최씨 사이에서 태어난 손병희는 적서차별이 당연했던 시기에서 서얼(庶孼)로 태어난 것에 분노해 아버지에게 따질 정도였다. 아무리 공부해도 과거조차 보지 못하는데 공부를 하면 무엇하냐며 기초적인 한문만 떼고 나선 글공부를 접었다. 이후엔 술 푸념과 싸움질, 도박으로 세월을 보냈고, 급기야는 할 일 없는 건달들을 모아 우두머리 짓까지 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 없는 파락호는 아니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관가의 공금을 전달하던 길에 굶어 죽어가는 이를 보자 그 돈으로 밥을 사 먹이고, 수신사(修信使)가 역졸의 머리털을 말꼬리에 묶고 오는 것을 보고는 사람을 이처럼 천대하느냐 항의하며 낫으로 말꼬리를 자를 정도로 의협심이 남달랐다.
그러던 1882년 손병희에게 개과천선의 기회가 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의미 없는 인생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해야 할까? 바로 동학(東學)을 접하게 된 것이다.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내세운 시천주(侍天主, 하느님을 내 마음에 모신다), 이를 심화시켜 2대 교주인 최시형이 내세운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을 하늘같이 섬겨라) 사상은 차별과 억압의 굴레에 신음하던 손병희에게는 다름 아닌 ‘복음’이었다.


나 스스로를 존중한다는 것
2대 교주 최시형이 처형당한 후 동학의 도통을 이어받은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한 후 ‘인내천(人乃天)’을 전면에 내세웠다. 종교적인 해석을 배제하더라도 그 의미는 일반인들에게 쉽게 전달된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천도교의 중심 교리가 된 인내천은 인간은 누구나 신이 될 수 있고, 누구나 평등하다는 의미의 다른 말이다. 신분제 사회의 끄트머리, 그리고 형식적으로 신분제 사회를 갓 벗어난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이러한 사상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다. 조선의 조정과 기득권 세력들이 외세를 끌어들여 동학교도들을 탄압하던 때를 지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천도교는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차별과 억압으로 점철된 암흑 속에서 천도교의 등장은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손병희는 확장된 교세를 가지고 독립운동에 나설 수 있었다.


광복 이후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 우리는 그때보다 지금이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돈·외모·학벌 등 우리는 어느 때보다 높은 차별의 벽을 세우며 살고 있다. 계급을 나누고, 타인의 시선으로 나의 가치가 증명되며 남을 쉽게 정의내리는 것에 익숙해지게 됐다. 그 결과 우리는 사회가 말하는 어떤 ‘기준’에 따라 사람의 등급을 나누고 그 기준에 맞춘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인간의 존엄성은 찾아볼 수 없다. 겉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말하지만, 이미 우리는 스스로 계층과 계급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곧 하늘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종교적인 의미의 하늘을 말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해 보았느냐는 것이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평등하고, 그 안에 나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다. 나는 하늘이고,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믿음’을 품어보자. 손병희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존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천도교를 이끌었으며 3·1운동의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차별의 시선으로 정의한 내 존재에 나약해지고 있는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고 있는가? 내가 곧 하늘이다. 나의 존재가치는 나 스스로 정의할 수 있다. 그저 자신을 존중하고 ‘나’라는 존재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면 될 뿐이다. 우리가 곧 하늘이다.

           


           

이성주

시나리오 작가 겸 역사칼럼니스트.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조선의 민낯』, 『왕들의 부부싸움』과 같은 역사서를 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제정치와 관련된 연구 및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1, 2, 3권을 출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