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숨은 역사
아름다운 자연 속 삶의 흔적을 보다
충청남도 홍성

글·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아름다운 자연 속
삶의 흔적을 보다
충청남도 홍성겨울 정경에 하루쯤 푹 파묻히고 싶은 이들에게 충남 홍성은 더없이 좋은 장소다. 전망 좋은 산과 탁 트인 바다, 싱싱한 해산물이 있는 포구,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의 혼, 이 모든 것들을 함께 즐기고 볼 수 있는 은혜로운 땅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홍성은 예산·당진·서산과 함께 내포(內浦)의 중심 고을을 자처해왔다. 내포는 가야산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일컫는데, 작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 홍주성
먼저 읍내부터 가보기로 한다. 읍내의 볼거리는 단연 홍주성이다. 축성 연도를 알 수 없어 아쉽지만 한때의 규모를 말해주듯 위풍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다. 유적이 으레 그렇듯 세월의 부침은 어쩔 수 없는지 1,772m에 달하던 성 길이는 810m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성내 관아 건물이 35동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조양문·홍주아문·안회당(동헌)·여하정 등만 남아 있다. 군청 건물 뒤에 있는 안회당(安懷堂, 사적 제231호)은 흥선대원군 시절에 개축한 건물로 그나마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홍주목의 동헌으로, 동헌이라는 이름 대신 쓰고 있는 안회당은 논어에서 유래된 말로 ‘노인을 편히 모시고 벗을 믿음으로 사귀며 연소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 있다. 1870년(고종 7년) 4월에 상량해 정교한 기술로 지은 22칸의 이 목조건물은 투박하면서도 기품이 서려 있다.안회당 뒤뜰에 자리 잡고 연못을 둔 여하정도 눈길을 끈다. 1896년(고종 33년) 홍주목사 이승우가 건립한 육각형의 아담한 정자로, 안회당에서 집무를 본 뒤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철따라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름엔 연못에 핀 연꽃이 환상적이다. 군청 정면에 우람하게 서있는 홍주아문은 1870년 당시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면서 이 성의 동문인 조양문을 지으며 세운 것이다. 원래 10칸 반 규모의 내삼문과 남과 북으로 담장을 대신했던 큰 건물이 있었는데, 3·1운동 당시 홍성의 만세사건을 진압시키기 위해 들어온 일본군에 의해 허물어져버렸다.
홍주성: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200-2 / 041-630-1226

(위) 안회당
(아래 왼쪽부터) 여하정 / 홍주아문
홍성을 빛낸 두 명의 애국자
읍내를 벗어나 결성면 성곡리 쪽으로 가면 만해 한용운의 생가지를 만날 수 있다. 1879년에 태어난 한용운은 6세부터 한학을 배워 익힐 정도로 신동소리를 들었으며, 26세에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가 불교와 인연을 맺는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으며, 신간회(新幹會)를 결성해 학생 의거와 전국적인 민족운동의 바탕을 마련하기도 했다. 생가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초가인데 양 옆으로 1칸씩 더 달아 광과 헛간으로 사용했고, 울타리는 싸리나무로 둘렀다. 생가 앞에는 한용운 동상이 서있었다. 한 손을 내밀고 선 모습이 마치 우리 후손들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현재 이곳에는 한용운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 만해사가 있고, 만해문학체험관에서 만해의 일생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유물 60여 점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체험관 뒤편에는 민족시비공원이 조성돼 있어, 숲길을 산책하며 큰 돌에 새겨진 시를 감상할 수 있다. 한용운은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내면서 저항 문학에도 앞장섰다. 매년 10월에는 이곳에서 한용운을 추모하는 만해제가 열린다. 차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가 있다. 평생을 항일전투에 몸 바쳤던 김좌진. 그를 말하자면 1920년 10월 일본군을 무찌른 청산리대첩을 빼놓을 수 없다. 청산리대첩은 봉오동전투와 함께 독립전쟁 사상 최대의 승리로 꼽힌다.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광·마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에는 부엌과 아랫방, 윗방이 있고 통 칸으로 된 대청이 딸려 있다. 마당 한쪽에는 우물이 있고, 생가 뒤편에는 사당 백야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매년 음력 12월 25일에 제향을 올린단다. 동시대에 태어나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두 사람. 오늘날 홍성의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용운선생생가지: 충남 홍성군 결성면 318번길 83
김좌진장군생가지: 충남 홍성군 갈산면 백야로 546번길 12 / 041-634-6952

(왼쪽부터) 김좌진 생가에 걸려 있는 김좌진 초상 / 한용운 생가
선조들이 먼저 알아본 홍성의 명산
홍성에 오면 기개 넘치는 산을 구경하는 것을 잊지 말자. 억새밭으로 유명한 오서산과 전망이 빼어난 용봉산이 바로 그것이다. ‘서해의 등대산’으로 불리는 오서산은 고기잡이에 나선 어부들에게 등대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오랜 옛날부터 천수만을 지나던 고깃배들은 오서산을 바라보며 방향을 잡았다.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도 일품이다. 맑은 날이면 안면도와 천수만 일대의 여러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덕산온천 방면에 솟은 용봉산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해발 381m로 그리 높지 않아 가족 산행지로 아주 좋다.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산세가 수려해 ‘작은 금강산’으로 불린다. 다산 정약용은 일찍이 용봉산의 절경에 감탄해 ‘용봉사에 들러(過龍鳳寺)’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서해의 지역이라 명산은 적고 / 기름진 넓은 들만 깔리었는데 / 뜻밖에도 본질을 탈바꿈하여 / 머리 빗고 몸 씻어 평지에 나와 / 뭇 봉우리 드높이 솟았으니 / 가팔라 투박한 살 털어버렸네 / 가녀린 꼴 금세 곧 소멸할 것 같은데 / 험난하여 또다시 삼엄한 느낌 / 놀란 기럭 고개를 높이 쳐들고 / 별난 귀신 엿보다 도로 엎드려 / 아첨하는 간신은 참소 올리고 / 경망한 아녀자가 독기 품은 듯 / 생김새 그야말로 특이하구나’
용봉산을 오르다 보면 중턱에 있는 용봉사에서 잠시 쉴 수 있는데, 호젓함이 물씬 풍긴다. 용봉사 위로 시선을 쳐들자 홍성 신경리 마애석불(보물 제355호)이 온화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서산: 충남 홍성군 장곡면 장곡길 438번길 540 / 041-630-1425
용봉산: 충남 홍성군 용봉산 3길 / 041-630-1784

용봉산 병풍바위

홍성 신경리 마애석불
생생한 삶의 향기가 나는 곳
홍성은 천수만과 맞닿아 있다. 드넓게 펼쳐진 천수만을 따라가면 서해안의 대표적인 수산물 집산지인 남당항이 나온다. 비릿한 내음을 콧속 깊숙이 들이마시며 남당항에 들어섰다. 바다의 냄새는 여행의 설렘을 느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특히 항구는 한겨울일지라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의 현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소규모어항이지만 남당항에는 새조개·키조개·대하·꽃게·광어·우럭 등등 충남 서해의 대표적인 수산물 먹거리가 가득하다. 이곳에서 나는 생물은 하나같이 싱싱하다. 포구 바로 앞이 물고기의 산란터인 천수만인 까닭이다. 특히 매년 한겨울인 12월부터 2월까지는 이곳 남당항에서 새조개 축제가 열린다. 제철을 맞아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새조개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기회다. 천수만으로 길게 뻗은 방파제에 물이 빠지자 끝없는 갯벌이 드러났다. 남당항에서 해안을 따라 서산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어사포구-속동전망대-궁리항이 차례로 나타난다. 어사포구와 궁리항 중간에 있는 속동전망대는 바다를 한눈에 담기에 제격이다. 마을 정보화센터 앞에 2층으로 된 전망대와 목재 데크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일몰이다. 해안선 너머로 지는 석양을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에서 바라보자면 이때만큼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홍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 중 하나다.
남당항: 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로 213번길 25-62
속동전망대: 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로 689

(왼쪽부터) 남당항 / 서해의 대표적인 수산물이 가득한 남당항

속동전망대에서 바라본 갯벌
멀리서 보는 홍성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둘러쌓여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오랜 세월 우리 선조들이 남기고 간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지금도 새로운 삶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홍성, 그 흔적에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겸 수필가. 현재 『월간 비타민』, 『건설경제신문』, 『서울우유』, 『냉동공조신문』에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여행 저서로는 『여름 이야기』, 『7가지 테마가 있는 여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