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의 추억
못생긴 생선의 반란

글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못생긴 생선의 반란
못생겨도 맛은 좋아. 아귀를 보면 옛날 광고 문구가 생각난다. 아귀는 과연 보기에 예쁘지는 않지만, 깊은 바다에 사는 심해성의 흰 살 생선으로서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적어 저칼로리 고급 어종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아귀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구박때기 신세를 면치 못했던 생선이었다.
배고픈 귀신을 닮은 생선
아귀(餓鬼)의 이름은 ‘배고픈 귀신’이란 뜻이다. 몸통에 큰 입이 바로 붙어있는데, 마치 귀신이 배고파 울부짖는 것 같다고 하여 그렇게 불렸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지옥에 떨어진 귀신은 산더미처럼 불룩한 배와 바늘구멍만큼 작은 목구멍을 벌로 받았다. 음식을 삼킬 수 없으니 언제나 배가 고프다.
옛날 사람들은 아귀의 흉물스러운 외형 때문에 잡아도 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바닷가에서는 ‘물텀벙’이라고 불렀다. 잡으면 재수가 없다고 해서 바로 바다에 던져 버렸는데 이때 ‘텀벙’ 소리가 나며 떨어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처럼 어부들이 아예 생선 축에도 끼워주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아귀는 못생겼다는 말보다 더 서러운 구박을 받고 살아온 셈이다.
아귀 구박의 역사는 생각보다 뿌리 깊고 광범위하다. 200여 년 전 기록에서도 아귀에 대한 평가는 박하기만 하다. 정조대의 문인 이학규는 영남지방을 여행하면서 현지음식을 소개했는데, 영남 바닷가 마을에서는 괴상한 생선을 먹는다며 몇몇 생선의 이름을 기록했다. 여기에 아귀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아귀를 ‘커다란 입이 몸뚱이에 바로 붙어 있으며 이름은 아귀어(餓鬼魚)이고 현지에서는 물꿩(水雉)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먹는 음식치고는 참 구차하다.”
그 옛날 아귀가 얼마나 바람직하지 못한 생선 취급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서양 대부분의 나라에서 아귀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유는 오로지 못생겼기 때문에. 아귀를 부르는 세계 각국의 ‘이름’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웅크린 모습이 후드를 뒤집어쓴 중세 수도승을 닮았다고 하여 ‘몽크피쉬(Monkfish)’라 불렸다. 프랑스에서는 입 큰 생선이라는 의미의 중세어로 ‘롯데(Lotte)’란 이름이 붙었다. 중국은 두꺼비를 닮은 물고기라는 뜻의 ‘하마어’ 이름들이 이러하니, 다른 나라에서도 아귀는 선뜻 입에 댈 수 없는 생선이었다.
굶주림은 귀신도 잡아먹게 만든다
요리의 재료로 아귀가 유명세를 탄 것은 ‘아귀찜’이 알려지기 시작한 1970년대 무렵이었다. 아귀찜의 원조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마산에서 아귀를 이용해 북어찜처럼 콩나물과 미나리·마늘·고춧가루 등의 양념과 함께 찜으로 요리한 것을 시초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아귀를 먹기 시작한 건 그 이전, 한국전쟁 때였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최대의 피난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전쟁 직전인 1949년 약 47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전쟁 이듬해(1951년) 84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공식 통계를 기반으로 한 수치일 뿐, 실제 거주 인구는 훨씬 많았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갑자기 불어난 인구에 사람들은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기 때문에 전시에 대비한 비축물량도 충분하지 않았다. 원조물자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곯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먹었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들까지. 그중 하나가 아귀였다. 아귀는 잡히면 재수가 없다고 다시 물속에 던져 버릴 정도로 천대받던 생선이었지만 전쟁 통에는 그마저도 없어서 먹지를 못 했다. 이때 아귀의 담백한 맛이 각광을 받으면서 사람들이 아귀를 맛있는 식용 생선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과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잡아먹었던 ‘귀신’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이제 아귀는 별미로 사랑받고 있다. 영양소도 풍부한데다가 살부터 아가미·내장·껍질까지 모두 먹을 수 있어 보양식 노릇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옛날 아귀를 다시 바닷속에 던져버렸던 어부들이 아귀의 맛을 단 한 번이라도 봤다면 마음을 바꾸지 않았을까?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1984년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해 2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특파원 활동·출장·연수 등으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 머물렀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를 수집해온 결과, 음식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주요 저서로는 『음식잡학사전』·『신의 선물 밥』·『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