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일제에 맞선
부자(富者) 나무 석송령

INPUT SUBJECT

글 신현배 역사칼럼리스트

 

일제에 맞선

부자(富者) 나무 석송령

 


나이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마을마다 지혜로운 어르신을 모시듯 극진히 대접하는 고목들이 있다. 오래된 나무는 사람보다 더 길고 두터운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은 때때로 마을의 전설이 되기도 한다.


 

소나무에게 재산을 물려준 농부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에 이수목이란 농부가 있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농사를 지어왔으므로 손이 매우 귀했다. 그러나 이수목은 환갑을 넘긴 나이까지 자식이 없어 고민했다. 대를 이어 논밭을 물려받을 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1927년의 어느 무더운 날, 이수목은 집에서 연신 부채질을 하다 마을 어귀에 있는 소나무로 향했다. 소나무의 그늘 밑에서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5백여 년 전, 마을에 큰 홍수가 났을 때 개천을 따라 떠내려왔다던 어린 소나무는 어느새 우람하게 자라 높이 10m, 둘레 4.2m, 그늘 면적 324평에 이르는 고목이 되었다.
이수목이 이 오래된 소나무 밑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하지 말아라!”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나무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누가 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나무 위를 올려다보아도 사람은커녕 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걱정하지 말아라!”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소나무였다. 소나무가 말을 한 것이다. 소나무의 외침을 듣고 이수목이 까무러치듯 놀랐을 때,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상한 꿈이었다. 하지만 소나무는 분명 그의 걱정을 알고 있었다. 이수목은 생각했다.

 

‘소나무는 내 재산을 자신에게 물려달라고 한 거야. 나는 자식이 없으니까, 소나무에게 재산을 물려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

 

그는 당장 군청으로 달려가 자신의 논밭을 소나무 앞으로 돌리는 등기 이전 절차를 밟았다. ‘석송령(石松靈)’ 이수목 노인 소유의 토지 1,191평을 물려받아 토지 대장에 오른 새 주인의 이름이었다. 주민등록번호 3750-00248의 늙은 소나무였다. 이리하여 석송령은 해마다 재산세를 내게 되었다.
사실 이수목 노인은 단지 자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소나무에게 재산을 물려준 것이 아니다. 마을 소나무에게 재산을 주면, 그것이 마을의 공동재산이 되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소나무에게 재산을 상속한 뒤 세상을 떠났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석송계’를 만들어서 이를 관리하며, 해마다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자시(하오 11시부터 상오 1시까지)에 소나무를 위한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이수목의 바람처럼 석송령 소유 논밭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은 마을 학생들을 돕는 장학금으로 사용되었다.

 

역사를 지킨 터줏대감들

석송령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맞선 용감한 소나무로도 유명하다. 어느 날 일제는 마을에 있는 석송령을 베어 없애기로 했다. 소나무를 베어내어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벤 나무는 일본 군함을 만드는 재료로 쓰기 위함이었다. 일본 순사들은 나무를 벨 톱을 자전거에 싣고 인부들을 거느리며 마을로 향했다. 마을 인근 개울을 건너려는 찰나 갑자기 자전거가 쓰러지더니 핸들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전거와 함께 넘어진 일본 순사는 그 자리에서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남은 인부들은 그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며 달아났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일제는 소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는 비행기 폭격을 피해 소나무 밑으로 피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고 무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덕분에 석송령은 논밭을 가진 부자 소나무이자, 마을 사람들을 지킨 신령한 소나무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처럼 석송령을 비롯해 우리나라에 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마을을 지켰다는 전설은 심심치 않게 내려온다. 특히 나라에 큰일이 생겼을 때 이를 미리 알려주었다는 나무들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30호인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는 소리를 내어 나라의 큰 일을 미리 알렸다. 광복 직전에는 두 달을 울었고, 한국전쟁 전에는 50일 동안 울었다고 하는데 울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10리 밖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4·19 혁명, 5·16 군사 정변이 있기 전에도 나무는 서럽게 울어댔다. 고종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는 커다란 가지가 느닷없이 부러졌다고 하니 과연 신성한 나무가 아닐 수 없다.
소리로 나랏일을 미리 알려준 나무는 이밖에도 많이 있다. 천연기념물 365호인 충청남도 금산의 보석사 은행나무는 광복과 한국전쟁을 앞두고 소리 내어 울었으며, 1992년 극심한 가뭄 또한 소리로 예고했다. 천연기념물 175호 경상북도 안동의 용계리 은행나무도 1910년 한일 강제 병합과 1950년 한국전쟁, 1979년 10·26 사건에 소리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마을에 병마가 퍼지거나 날이 가물어도 울었다고 한다. 강화도 전등사 은행나무는 나라에 변고가 생기던 해에는 열매를 맺지 않고 밤새워 울었다. 병인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로 쳐들어오기 전날 밤이나 일본의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때 나무의 울음소리는 마을을 메웠다. 천연기념물 76호 강원도 영월의 하송리 은행나무는 소리가 아닌 제 가지를 부러뜨림으로써 ‘일’을 알려왔다. 또한, 천연기념물 349호로 지정된 강원도 영월의 광천리 관음송은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껍질이 검게 변했다고 한다.

 

마을에 있는 오래된 나무는 ‘오래’의 시간만큼 마을을 지키며 우리의 다난한 역사를 함께 해왔다. 이들 나무가 일제로부터 저 스스로를 지키고, 나라의 변고를 미리 알렸던 것은 역사 속에서 기뻐하고 슬퍼하는, 혹은 저항하고 스러졌던 이들을 모두 지켜 본 터줏대감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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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송령(출처:국가문화유산포털)

 

 


신현배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 역사칼럼리스트. 저서로는 역사 이야기 『엉뚱 별난 한국사』, 『엉뚱 별난 세계사』, 『2000년 서울 이야기』,

『세계사로 배우는 법 이야기』,  전통문화 이야기 『소중한 우리 문화 지식 여행』 시리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