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세계사
INPUT SUBJECT

글 고종환 아주대학교 외래교수
1808년 5월 3일의 학살로 보는
에스파냐 민중들의 저항

1808년 5월 3일의 학살
(1814,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에스파냐 대표 화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유명한 그림들 중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1808년 5월 3일의 학살>을 말할 것이다.
한눈에 봐도 비극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바닥에는 이미 피를 흥건히 흘리는 시체가 있고,
그 뒤로 보이는사람들도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림 한가운데 흰옷을 입은 남자만이 죽음에 맞서, 영웅처럼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것 같은 총을 들고 있는 군인들은 누구이고,
용기에 차서 당당히 군인들에게 맞서고 있는 흰옷의 주인공은 또 누구인가.
그리고 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총살을 당하는 것인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는 누구인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에스파냐 미술계를 대표했던 고야는 그의 다양한 그림들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던 화가였다. 에스파냐 남부의 소도시인 사라고사에서 그림공부를 시작한 고야는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로마에서의 유학을 마친 후, 29세인 1775년부터 에스파냐 궁정에서 화가로 명성을 날린다. 기세를 탄 고야는 40세가 되던 해에 꿈에도 그리던 자리인 국왕 카를로스 3세 전속 화가라는 명예를 얻게 된다. 카를로스 3세의 사망으로 잠시 흔들렸지만, 이어진 카를로스 4세 치하에서도 전속 화가의 자리를 유지하던 고야는 1799년, 드디어 모든 에스파냐 화가들의 로망인 수석 궁정화가의 자리까지 올랐다.<1808년 5월 3일의 학살>은 사건이 발생한 지 6년이 지난 1814년, 고야가 청력을 잃은 지 20여 년이 지난 그의 나이 68세에 그린 그림이다. 왕실전속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왕실의 무능과 부패에 진저리치던 고야는 에스파냐를 침공한 프랑스군에 호의적이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훗날 프랑스군이 물러간 후 더 이상 조국에서 살 수 없게 된 고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프랑스의 서부 도시 보르도로 망명하여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에스파냐에서 화가로서 모든 영화를 누렸지만, 청력을 상실하고 일종의 우울증을 겪었으며 망명 생활에 지쳐 조국을 그리워했을 만큼 고야의 말년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808년 5월 3일의 학살>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림의 배경은 마드리드지만 총을 든 사람들은 프랑스 군인들이며 총살을 당하는 사람들은 마드리드 민중들이었다. 왜 프랑스 군인들이 남의 나라에 와서 민중들을 총살하는 것일까? 이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에스파냐 왕실과 프랑스 공화정의 관계를 먼저 알아야 한다.당시 국왕 카를로스 4세와 그의 아들 페르난도 왕자 그리고 왕비를 등에 업은 실세 총리였던 마누엘 고도이가 권력다툼을 벌이면서 왕실은 물론 에스파냐 전체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런 권력다툼에 신물이 난 민중들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들어오자 마치 해방군이라도 온것처럼 환영했다. 프랑스 군대가 왕비를 애인으로 두고 국정을 농단하던 총리를 내치고 왕자를 후원하여 에스파냐를 정상화한 뒤 돌아가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생각은 애당초 달랐다.나폴레옹은 마드리드를 접수한 후, 자신의 친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새로운 국왕으로 선임한다. 그가 바로 호세 1세였다. 1808년 5월 3일의 학살이 벌어지기 하루 전인 5월 2일, 마드리드 궁 앞에는 수많은 민중들이 몰려들었다. 프랑스에 의해 강제 망명길에 오르는 왕실 가족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들을 태운 마차가 하나둘 떠나면서 민중들이 동요와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고, 끝내 반프랑스 시위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민중들의 시위를 용인하지 않았고, 자신의 부대 중 가장 용맹한 기마부대를 투입하여 이를 진압하게 했다. 이들의 출현은 마드리드 민중들을 더욱 자극하고야 말았다. 결국 이날 살해되고 체포된 인원만 약 400여 명이 넘었고, 그중 가장 극렬하게 저항한 주동자들을 체포해서 그다음 날인 5월 3일에 모두 총살했다. 그래서 고야는 이 그림의 제목을 <1808년 5월 3일의 학살>이라 붙이게 되었다.
한국 프랑스문화학회의 재무이사이자, 아주대학교와 경상대학교 외래교수. 프랑스 문화와 예술, 서양연극사, 광고이미지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한권으로 읽는 연극의역사>와 <오페라로 배우는 역사와 문화>, <글로벌 다문화교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