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숨은 역사

천변만화(千變萬化)의 멋
- 부산광역시 -

천변만화(千變萬化)의 멋<BR />- 부산광역시 -

글·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천변만화(千變萬化)의 멋

 - 부산광역시 -

 


도시 부산으로부터 겨울의 자취가 슬그머니 물러나고 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채로운 볼거리를 지닌 도시, 부산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여행은 멸치와 미역의 주산지이자 부산의 동쪽 끝인 기장에서 시작한다.


절경의 해안 길에서 만난 유적

기장의 끝머리에 위치한 임랑해변은 고요하다. 임랑(林浪)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송림(松林)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波浪)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었다고 한다. 바다를 따라 1㎞가량 넓게 깔린 고운 모래사장은 푸른 노송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정경을 보여준다. 옛사람들은 해변 좌측에 위치한 임랑천에서 노닐다가 밤이 되면 조각배를 타고 송림 위에 뜬 달을 구경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고 한다.인근에는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 장안사가 있다. 보물 제1771호로 지정된 장안사의 대웅전은 부산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다포식 건축물이다. 사찰 뒤편으로는 그윽한 대나무숲 길과 계곡 길이 펼쳐져 있어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밖에도 임랑해변 한쪽에는 오영수의 작품 <갯마을>의 실제 무대로 강송정과 느티나무·당집 등이 남아있는 학리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소설을 접해본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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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랑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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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 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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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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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 뒤편 대나무숲 길

  

바다와 어우러져 만들어낸 풍경

해안 길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멸치와 기장미역의 주산지인 대변항을 만나볼 수 있다.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대변항에서는 바다가 준 싱싱한 해산물을 사계절 언제 찾아도 맛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멸치다. 어선들은 보통 새벽 5시경에 출어하여 오전 9시가 되면 배 안 가득 멸치를 싣고 돌아오는데, 이때부터 이른바 ‘멸치 털기’가 시작된다. 멸치 잡는 그물인 ‘후리’를 일사불란하게 털어내는 장면을 지켜보노라면 숨어 있던 에너지가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을 받는다. 멸치 이외에도 이곳의 주산물인 기장미역은 국을 여러 번 끓여도 흐물흐물해지지 않고 쫄깃한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잎이 두껍고 넓으며 파릇한 빛깔에 윤기가 자르르 흘러 어디에 내놔도 높은 값에 팔린다. 기장을 방문했다면 놓치지 말고 챙겨볼 만한 특산품이다.대변항에서 해운대 쪽으로 가다 보면 이름도 모양도 특이한 등대가 줄줄이 나타난다. 월드컵기념등대·장승등대·닭볏등대·젖병등대 등은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정경을 연출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월드컵기념등대다. 2002년 월드컵 공인구를 품고 우뚝 서 있는 월드컵기념등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월드컵 전반의 역사 이외에도 당시 참가국에 대한 정보와 우리나라 대표팀의 명단·성적 등을 전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젖병등대는 큰 젖병과 작은 젖병이 나란히 서 있는데, 큰 젖병은 등대고 작은 젖병은 우체통이다. 이 등대는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낮은 우리나라의 출산을 장려하고자 세웠다.해안을 따라 펼쳐진 각양각색의 등대 퍼레이드가 끝날 즈음이면 하얀 속살을 드러낸 바위 위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사찰 하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해동용궁사다. 이 고찰은 고려 우왕 2년(1376년)에 나옹화상이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930년대 들어 복원되었다. 108장수계단과 사찰로 들어가는 절벽 위 돌다리에는 오랜 세월이 쌓여 만들어낸 경건함이 흐른다. 발아래로는 파도가 용틀임하고 경내에 서면 동해가 시원스레 바라보인다. 풍광이 워낙 뛰어나서 금방 발길을 돌리기가 아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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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용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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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대에서 바라본 바다

 

낙조가 아름다운 다대포해수욕장과 몰운대

부산하면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해수욕장이다. 추운 겨울철에도 해수욕장을 찾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들어 각광 받고 있는 장소는 바로 다대포이다. 부산의 서쪽 끝머리에 펼쳐진 다대포는 아름다운 낙조와 더불어 최근 부산지하철 1호선이 해수욕장 바로 앞까지 연장되면서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핫 플레이스로 등극했다. 다대포를 방문했다면 빼놓지 말고 가봐야 할 곳이 바로 몰운대이다. 16세기까지만 해도 몰운도라는 섬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퇴적돼 육지와 연결되면서 육계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후 구름이나 안개가 낀 날에는 그 모습을 잘 볼 수 없다고 해서 몰운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삼락강변길에서 시작해 몰운대로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지역 명소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을 바친 영령들

구덕산과 엄광산으로 둘러싸인 중앙공원은 부산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대표적인 사적 테마공원이다. 부산·경남 출신 전몰장병과 일제에 맞서 항일운동을 한 독립운동가들을 모시고 있는 이곳에는 후손들에게 나라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자 충혼탑·4·19위령탑·광복기념관·해군전승비·시민헌장비·중앙공원비 등을 배치해 놓았다. 6·25전쟁 때 판자촌을 이루었던 대청산을 공원으로 꾸며놓은 곳으로 부산의 아름다운 야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더욱 유명해졌다.먼저 광복기념관에 들러본다. 1876년 부산항 개항 이후부터 1945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일본의 침략에 항거한 부산 지역의 독립운동가와 역사적 유물·부산항일 학생운동과 일신여학교의 3·1운동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 2층에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 나라사랑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위패봉안소를 마련해두었다. 광복기념관 옆에는 웅장한 규모의 충혼탑이 자리 잡고 있다. 충혼탑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이후 나라를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한 부산 출신 국군장병과 경찰관을 비롯한 애국 용사들의 영령들을 모시고 있다.이밖에도 중앙공원엔 부산지역 항일 독립투쟁사에 큰 족적을 남긴 최천택의 기념비가 있다. 1886년 6월 부산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난 최천택은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로, 일제에 항거하고 청년운동과 신간회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54차례나 구속됐다. 광복을 옥중에서 맞이할 정도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부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쉬움이 컸는데 2003년 건국훈장애족장 서훈을 받으면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최천택은 1919년 들불처럼 떨치고 일어난 3·1운동을 돕기 위해 독립신문 등사에 참여했는가 하면, 1920년에는 독립운동가 박재혁과 함께 영화 ‘암살’의 모티브가 된 부산경찰서 폭파를 주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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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혼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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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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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천택 기념비

 

도시에 어린 독립운동가의 흔적

부산 독립운동사에서 박차정과 안희제를 빼놓을 수 없다. 1910년 부산 동래구 복천동에서 태어난 박차정은 1924년 5월 조선소년동맹 동래지부에 가입하면서 독립운동에 처음 참여하였다. ‘대륙의 들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녀의 독립운동 의지는 대단했다.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일신여학교 시절부터 학생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여러 차례 체포됐고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1939년 2월 중국 장시성 곤륜산에서 벌어진 전투에 여성대원으로 참가했다가 총상을 입어 그 후유증으로 광복을 눈앞에 둔 1944년 세상을 떠났다. 박차정의 생가는 현재 동래구 명륜동 98번지에 복원되었다.경남 의령 출신 안희제는 1907년에 구포에 구명학교를 세우고 의령에 의신학교와 창남학교를 설립하여 청소년들을 가르쳤다. 1909년 10월에는 서상일 등 80여 명의 동지와 함께 비밀 청년결사인 대동청년당을 창설했으며, 1914년에는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였다. 백산상회가 있던 중구 동광동에 가면 그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관을 만들어 유품과 관련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용두산공원에 흉상을 세워 그의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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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차정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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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