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한 발걸음
잘 몰라서 생기는 선입견
다문화 가정, 이제는 껴안을 때

글 이현수 일상심리 전문작가, 자유기고가
잘 몰라서 생기는 선입견
다문화 가정, 이제는 껴안을 때
캄보디아인 반말리 씨는 한국인 남편과 일주일 째 냉전 중이다.
명절날 시댁에서 벌어진 일이 문제였다. 반말리 씨가 시부모님의 밥을 가장 나중에 퍼내자, 시어머니가 버럭 화를 냈다.
“이렇게 대접하는 경우가 어디 있니?” 남편마저 시어머니와 동조하며 나무라자, 반말리 씨는 억울하다는 반응이었다.
“저는 시부모님을 공경하기에 그렇게 한 것이에요.”
반말리 씨의 고향 캄보디아에서는 밥솥 아래쪽의 밥이 가장 맛있다고 하여 웃어른의 밥을 나중에 푸는 예절이 있다. 즉, 위의 사례는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해프닝인 것이다.
여전히 차가운 시선을 받는 다문화 가정
대한민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에 진입 중이다. 유엔미래보고서는 2050년에 우리나라 전체 가정 중 다문화 가정의 비중이 21.3%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31일 발표한 2016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현재 다문화 가구원은 96만 3천 명으로 100만 명에 이미 육박했고, 다문화 학생도 지난 4월 기준 11만 명에 달했다. 100명 중 2명은 다문화학생인 셈이다.
그러나 사회 인식과 제도는 아직 이러한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무려 69.1%가 신체적·정서적·경제적 폭력과 학대 등을 경험했으며 이로 인해 해체된 가정도 상당수다. 다문화 가정폭력 검거 건수 역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 역시 차별당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사회적 냉대로 학업을 중단하는 다문화 학생 비율이 일반 학생보다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의 문화와 언어는 다종다양하다.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루어진 만남은 불협화음이 날 수밖에 없다. 다문화 가정의 경우 맞선에서 계약서 작성까지 빠르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부작용이 예상되는 수순이다. 또 한편으로 다문화 가정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는 타문화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없어 근거 없는 편견이 생기거나 불합리한 오해를 하기 쉽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한 이주여성은 크게는 제사상 준비부터 작게는 과일 깎는 방법까지 본인의 나라와 판이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집안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릴 때 절을 하는데, 베트남에서는 죽은 사람에게만 절을 할 수 있다고 여겨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절을 하지 않는다. 또 한국에서는 국그릇을 오른쪽, 밥그릇을 왼쪽에 놓지만 캄보디아에서는 그 반대로 한다. 이처럼 이주여성이 아무리 정성을 다해 시부모를 봉양하려 해도 태생적으로 문화가 다르니 오해가 생기기 쉽다. 그렇다면 이러한 편견과 오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 가정에서
다문화 가정 내에서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면 관련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고 가족구성원 간에 터놓고 대화하며 갈등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고부갈등·부부갈등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이로써 이전보다 돈독한 사이로 발전할 수 있다. 다문화 가정 상담과 한국어 통역을 지원하는 다문화가족센터는 전국 217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 다문화가족지원포털 ‘다누리’에서는 주요 문화 차이에 대한 온라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니 적극 활용하자.
2. 국가에서
이제까지는 관련 정책이 이주여성의 초기 정착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이제부터는 중·장기적 방향에서 ‘통합’을 염두에 두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내 정착 관련 제도 이외에 자녀 양육, 남편과 시댁에 의한 가정폭력, 남편의 사별로 인한 한부모 가족화, 취학자녀의 차별 해결 등의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다문화 주민과 일반 주민 간의 대화 프로그램 운영의 확대로 편견과 고정관념을 줄여야 한다.
3. 학교에서
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학생 비율이 높은 학교는 일반 학교보다 전출률이 2배 이상 높다. 실제로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다문화 학생이 많다는 이유로 대거 전출시키는 경우까지 있었다. 다문화 학생과 일반 학생 간 돈독한 관계 형성을 위한 노력으로 다문화어린이도서관 ‘모두’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곳에서는 다문화 도서는 물론 대학생과 1:1 언어 멘토 연결해주기·세계 각국 전통 의상 입어보기·새해 풍습 및 다국적 음식 만들어보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를 열어 학생들이 다문화 가정과 학생에 대한 선입견을 자연스레 지우도록 하고 있다.
4. 사회에서
일본의 주류회사인 산토리의 중국 진출 실패 경험을 보자. 산토리는 현지 문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맥주를 판매했다가 기대 실적의 20%에 불과한 판매량을 보이며 쓴맛을 보았다. 이후 청량감이 높고 알코올 도수가 낮은 제품을 선호하는 중국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해 제품을 다시 판매하자, 다음해에는 맥주 판매량 최다 기업으로 부상했다. 기업이 수출 제품 현지화에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두 가지 문화에 노출되어 성장한 다문화 학생은 이러한 점에서 유리하며, 장차 무역 관련 사업에서 큰 잠재력을 가진다.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로 불리는 장영실의 뛰어난 업적은 유명하지만, 그가 지금으로 치면 다문화 가정 자녀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장영실의 아버지는 원나라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부산 동래현 출신이다. 고대사 연구로 저명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세계를 제패한 원동력으로 타민족을 끌어안은 포용성을 꼽았다. 다문화 가정이 전체의 38%를 차지하는 미국 역시 다양한 민족의 조화를 이루어 초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다문화는 ‘흠’이 아닌 ‘힘’이다. 우리 사회가 풍성해지고, 국가가 성장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이제 그만 색안경을 벗고 바라보아야 한다.
이현수
일상심리 전문작가 겸 자유기고가. 매일경제·고용노동부·한국무역보험공사·서울신용보증재단·삼성생명·현대모비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문가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