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혹은 거짓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영화 <라듸오 데이즈>

글 편집실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영화 <라듸오 데이즈>
감독: 하기호
주연: 류승범, 이종혁, 김사랑, 김뢰하, 오정세, 황보라, 고아성
개봉일: 2008년 1월 31일
뻔한 이야기는 가라! 흥겨운 재즈와 가슴 울리는 신파가 울려 퍼지는 혼돈의 시기. 경성에서 벌어진 유쾌, 통쾌한 라디오 ‘날’ 방송 이야기로 안내한다.
Q. 우리나라 라디오의 역사는 언제부터일까?
<라듸오 데이즈>는 당시 라디오 드라마 방송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1930년대 경성(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실제로 조선총독부가 만든 경성방송국에서 국내 최초로 정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것은 1927년 12월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라디오를 청취하던 사람들에게 라디오는 음악, 드라마 등 이전에는 없던 형태의 대중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근대문화의 창구였다. 그러나 일제가 경성방송국을 설립한 이유는 라디오를 식민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라디오 방송의 모든 프로그램 편성 및 성격과 내용 등은 모두 일제의 규정 아래 정해졌다.


일제강점기 경성방송국
Q. 신문물에 빠진 경성 사람들?
경성방송국 PD 로이드(류승범)는 시대와 역사에 관심이 없는 한량이다. 우연히 읽게 된 노봉알 작가(김뢰하)의 시나리오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그는 조선에서 전에 없던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바로 남녀의 삼각관계 멜로를 담은 <사랑의 불꽃>이었다.
당대 최고의 재즈 가수 마리(김사랑)와 푼수 기생 명월(황보라), 아나운서 만철(오정세), 음향 효과 담당 K까지 영화 속에는 이들의 좌충우돌 사건사고와 함께 연신 흥겨운 스윙재즈가 흘러나온다. 흔히 상상하는 그 시절의 척박한 환경과는 거리가 다소 멀다. 1930년대 우리나라는 재즈·커피·구두 등 서구적 스타일의 유행과 함께 거리에는 소위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넘쳐 났다. 신문물의 급물살로 겉으로 보이는 조선의 모습은 많은 발전을 이룬 듯 보였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나라 잃은 민족으로 일본인들의 천대를 받아야 했고 가난한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에 맞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시대의 암울함과 신문물의 화려함이라는 모순된 요소가 뒤섞인 시기였다.

1930년대 명동 거리
Q. 일제강점기 라디오 방송은 자유로웠다?
방송이 인기를 얻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자, 일원들은 조선총독부의 개입을 받기 시작했다. 감시원이 방송 내용을 감시하는가 하면 작품 속 주인공이 돌연 일본 학도병이 되어 만주로 출정을 가는 것으로 전개를 바꾸기까지 한다. 이를 참지 못한 로이드는 수정되기 전 대본을 공수해오고, 배우들은 판자로 못을 박아 문을 막은 채로 방송을 시작한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는 강력한 식민지 탄압정책의 문제를 인식하고 한국인의 문화생활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도록 정책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신문 발행이 가능해지고 라디오 방송도 개설되었다. 그러나 일제에 반하는 기사를 냈다가는 신문 발행이 중단되기 일쑤고, 라디오 방송은 철저히 일제의 검열을 거쳐 전파를 탔다. 일제의 유화정책은 식민통치 수단의 하나일 뿐, 우리 민족을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겠다는 목적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Q. 거창한 시대정신이 있어야만 독립운동이다?
K는 사실 독립단원이다. 10년간 성공한 거사가 하나도 없었던 그는 거리에 붙은 오디션 공고를 보고 음향효과에 지원하게 된다. “나 취직했다.” K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게 된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렸지만, 동료들은 그를 신념을 저버린 변절자로 취급한다.
대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은 시대적 메시지를 담기 위해 무겁고, 진지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는 투철한 시대의식이 없다. 폭탄을 던지거나 총을 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기획한 대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를 방송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가졌을 뿐이다. 거창한 저항정신이나 국민의식은 아닐지라도, 외부의 압박에 지지 않고 ‘자신의 것’을 지켜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등장인물들의 마음은 독립운동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것, 우리의 것을 지키겠다는 마음, 자유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겠다는 마음, 그것만은 그들도 독립투사와 같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