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숨은 역사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
경상북도 김천시

글·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
경상북도 김천시
진갈색 숲과 한낮의 건조한 공기,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맵찬 기운. 어느덧 김천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김천은 경북 내륙의 중심이다. 경부고속도로나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면 수도권에서 2시간, 대구에서는 40분이면 닿는다. 여기에 경부고속철도까지 통과하니 과연 사통팔달의 도시다.

경북과 충북을 이어주는 추풍령
구름도 쉬어 넘고 바람도 자고 간다는 추풍령이 도시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으니 천혜의 삶터임이 틀림없다. 예부터 삼남지방(호남, 영남, 충청)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물산이 이곳으로 모여 들었으니, 이는 거미줄처럼 뚫린 도로망 덕택이다. 추풍령은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영동군 사이, 우리나라 중부와 남부지방을 가르는 한 경계이며 백두대간에서 가장 낮은 고개다. 금강과 낙동강 물줄기를 나누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추풍령에서 가까운 직지사는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다. 들머리의 숲길은 청신하기 그지없어 먼지에 찌든 도시민들의 가슴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절을 감싸 두른 황악산(黃岳山)은 황학산(黃鶴山)으로도 불린다.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나는 학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직지사는 신라 불교의 발상지로 418년(신라 눌지왕 2년)에 승려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고려 때 능여대사가 직접 자기 손으로 절터를 쟀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전설일 뿐 직지(直指)는 본래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즉 ‘사람이 갖고 있는 참된 마음을 직관하면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직지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황악산은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어 산다운 기개를 제법 풍긴다. 산행에 자신 있다면 절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올라가보는 것도 좋다. 가파른 산길이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군데군데 쉴만한 돌너덜과 폭포, 소가 나타나 지루함을 덜 수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한 발 두 발 내디뎌볼 일이다. 정상에 오르면 지그재그로 이어진 백두대간이 시원스럽다.
직지사 들머리에는 조각 작품과 시비·장승·야외공연장·음악분수·어린이 놀이터·정자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직지문화공원이 있어, 산행이 아니어도 충분히 자연을 누릴 수 있다.
직지사: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
직지문화공원: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31-1

추풍령을 알리는 입석

직지사

독립운동가 여환옥의 고향 광명리 마을
직지사에서 김천 시내를 거쳐 거창 방면 3번 국도를 한참 따라가면 경북유형문화재 제 46호에 제정된 정자 ‘방초정(芳草亭)’이 나온다. 연못가에 다소곳이 서 있는 2층 누각은 첫눈에 보기에도 외형이 아름답다. 1788년 『가례증해』를 저술한 이의조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방초정은 구조가 특이하다. 2층 누각 중앙에 온돌방이 있는데, 1층에 아궁이가 있어 겨울철에 불을 땔 수 있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2층은 문을 올리면 마루가 되고 내리면 방으로 쓸 수 있게 했다. 이는 방이 양 끝에 있는 여느 누각과 다르다. 연못 중앙에 있는 두 개의 섬은 누각과 어우러져 특별한 정원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방초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원터마을에 가면 가례증해판목(家禮增解板木)을 보관한 숭례각(장서고)이 나온다. 이 판목은 1758년(영조 34년) 이의조가 관혼상제의 예법을 전국적으로 통일시키기 위해 주자(朱子) 4대예서(四大禮書) 가운데 <가례(家禮)>를 예를 들어 해설하고 서술을 첨가하여 1772년 총 10권의 초본(初本)으로 완성하였다. 총 475매(954면)의 목판으로 목각기법이 우수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구성면 끝머리인 광명리에는 독립운동가 여환옥의 생가인 성산여씨 하회댁이 있다. 고택의 품격이 느껴지는 이 집은 원래 18세기 초 성산여씨(星山呂氏)인 여명주가 60여 칸 건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여환옥은 어릴 때부터 6개 국어를 구사하는 등 똑똑하고 총명했으며, 집안 환경도 좋아 당시 김천에서 손꼽히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이후 장성하여 1920년대부터 농수산물 위탁 판매업체에 감사직을 맡고 교육사업에도 손을 댔다. 특히 사비를 털어 생가에 광명강습소를 개설해 지역 청소년들에게 신교육을 가르쳤으니, 이는 독립을 앞당길 인재로 키우고자 함이었다. 여환옥은 1927년 집과 토지를 담보로 동양척식주식회사로부터 거액을 융자받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했다. 여환옥은 이 밖에도 자신이 가진 재물을 조국 독립을 위해 아낌없이 썼다.
방초정: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방초정

방초정 앞의 연못
육영사업의 어머니 최송설당
3·1운동 이후 김천 사람들의 숙원사업은 김천고보 설립이었다. 10년간의 노력에도 결실을 맺지 못하다가, 최송설당이 평생을 모은 전재산 32만 원(현재 200억 원)을 쾌척하여 김천고보를 설립하였다. 거금을 어떻게 모았는지는 수수께끼 같은 전설만이 구전되고 있을 뿐이다. ‘나눔’을 통한 아름다운 행위는 암울한 식민시대를 밝히는 커다란 등대임에 분명하다. 여걸로서 살다간 족적은 오늘날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숭례각

여환옥 생가(성산여씨 하회댁)

최송설당 동상(김천고등학교 송설역사관)

무흘구곡에 안긴 두 절집
이번에는 3번 국도를 따라 증산면 소재지로 간다. 불령산에 둘러싸인 청암사는 신라 헌안왕 3년(85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곳이다. 지금은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을 쌓고 있다. 어떤 이는 이 절을 보고 ‘수줍음이 많은 절’이라 했다. 그만큼 고즈넉하고 고요하다는 의미일 게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아름드리 상록수가 숲을 이루고 있어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청암사는 참 정갈하다. 스님들이 손수 가꾼 텃밭이며 뜰이며 돌담 등이 정돈되어 편안한 인상을 준다.
청암사에서 나와 수도암 쪽으로 올라간다. 높푸른 하늘과 청신한 숲을 바라보며 쉬엄쉬엄 계곡을 따라 얼마나 올랐을까, 불쑥 절경이 펼쳐진다. 달빛이 연못에 꽉 찬다는 만월담이다. 조선 중기 학자 정구는 성주군 수륜면에서 이곳 김천 증산면 수도리에 걸쳐 있는 계곡의 절승에 반해 ‘무흘구곡(武屹九曲)’이란 이름을 붙여두었으니 1곡부터 5곡은 성주에, 6곡부터 9곡은 이곳 수도계곡 일대에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다. 수도계곡은 ‘김천의 강원도’라 불릴 정도로 맑은 물과 기암괴석, 울창한 숲이 압권이다. 소(沼)에 용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지는 용소폭포는 수도계곡의 최대 비경이다.
용소폭포에서 자동차로 10여 분쯤 올라가면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수도리마을이 나온다. 마을에서 수도암을 거쳐 김천의 남쪽 끝인 황점리로 가는 길이 나 있다. 해발 1천m의 임도 숲길을 걷는 맛이 각별하다. 수도암은 통일신라시대인 서기 859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집으로, 옛날 도선이 절터가 마음에 들어 7일간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법당인 대적광전 앞마당에 서면 연꽃을 닮은 가야산 상왕봉이 우뚝하다. 경내에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보물 307호)·쌍탑·나한전 등이 있다.
청암사: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 / www.chungamsa.org
수도암: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청암사

용소폭포


항일 독립운동가를 모신 남산공원과 자산공원
김천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심공원 두 곳에는 독립운동가 편강열과 이명균의 기념비가 있다.
“내가 죽거든 만주 땅에 묻고 왜놈이 판을 치는 조국에 이장하지 말라.”
1928년 12월 6일 항일의병으로 활약한 편강열이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병을 얻어 37세의 어린 나이에 순국하면서 남긴 유언이다. 그는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16세의 어린 나이로 의병장 이강년의 휘하에 들어가 의병운동에 적극 나섰다. 남산공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가 신사를 세우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곳으로, 나란히 선 군수 현감들의 공적비 옆에 편강열 기념비가 우뚝하다. 순국기념비 옆에는 여중룡의 순충비(殉忠碑)가 있다. 여중룡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김천에서 일어난 의병 활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남산공원과 마주하고 있는 자산공원 입구에는 이명균의 추모비가 있다.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에서 태어난 그는 우리나라가 국가 주권을 빼앗기자 전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내고 일생을 항일운동에 바쳤다. 1919년 영남유림 대표로 파리장서에 서명했다가 검거돼 옥고를 치렀으며, 1920년에는 대한독립후원의용단을 조직해 군자금을 조달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남산공원: 경상북도 김천시 학새대길 5
자산공원: 경상북도 김천시 성모길 179

편강열 열사 기념비

여중룡 의사 순충비

이명균 추모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