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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따라잡기, 과연 병일까?

연예인 따라잡기, 과연 병일까?

글 장근영 심리학자


연예인 따라잡기, 과연 병일까?


연예인은 유행의 아이콘이다. 그들이 입은 옷·화장·헤어스타일 등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연예인의 말투, 행동습관 등 일상생활 모습까지도 닮아간다. 최근 청소년, 청년층 사이에서 연예인을 따라하는 현상을 두고 해당 연예인의 이름을 붙여 ‘~병’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이유병, 강다니엘병, 설리병…. 그런데 이러한 ‘병명’이 과연 정말 병인 걸까?






인간은 가장 뛰어난 따라쟁이
우리는 진공상태에서 성장하지 않는다. 내 모든 말과 행동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31년 미국 인디아나 대학교의 비교심리학자 켈로그(W. Kellogg)는 생후 6개월짜리 침팬지 ‘구아’를 입양해 실험을 했다. 당시 켈로그에게는 생후 10개월 된 아들 도널드가 있었는데, 구아를 아들과 똑같이 먹이고 입혀가며 키웠다. 침팬지가 인간과 동일한 환경에서 성장하면 어디까지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의도였다. 실험은 실패했다. 특히 아들 도널드가 말을 하기 시작할 때쯤 문제가 심각해졌다. 도널드가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침팬지 구아의 꽥꽥거리는 울음소리를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위의 실험은 침팬지보다 인간이 남을 더 잘 따라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렇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따라쟁이다. 따라하는 본능 덕에 인간은 무엇이든 그 어떤 동물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배울 수 있고, 다양한 환경에서 더 잘 적응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인간의 따라하는 본능이 대단한 이유 중의 하나는 따라할 대상을 선정하는 능력 때문이다. 즉 아무나 따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생활에서 자주 보면서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대상 가운데 자신이 가진 자원과 비슷한 것을 가진 자를 고르고, 그중에서도 주어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 자를 귀신같이 찾아내어 따라한다.
치알디니(R. Cialdini)의 『설득의 심리학』에서는 NBA의 전설인 마이클 조던이 경기 전에 특정브랜드의 초코바를 3개씩 먹자 팀 내 모든 선수들이 전부 그 초코바를 먹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 이전부터 그 팀의 몇몇 후보 선수들이 같은 초코바를 먹고 있었지만, 조던이 먹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초코바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하는 건 병이 아닌 인류 번성의 바탕
인간의 따라쟁이 성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때는 사춘기 이후 2차 성징을 거치며 신체적·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는 청소년기다. 이 시기에 따라함의 대상이 될 존재들을 ‘롤모델(Role model)’이라고 부른다. 우리 대부분이(아마도 전부가) 롤모델을 바라보며 성장했다. 주변에서 참고할 가치가 있는 누군가의 언행을 보고 따라하면서 그 속에서 더 나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발달과정이다.
최근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 출연한 가수 아이유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입을 오물거리며 먹는 것이나, 쪼그려 앉기, 단 초콜릿을 좋아하는 모습 등 TV에 비춰진 아이유의 행동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일명 ‘아이유병’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제 ‘연예인 이름+병’은 인기의 척도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이전에도 있었다. 4차원적인 엉뚱한 행동을 하는 ‘최강희병’과 웃을 때 한쪽 눈을 감는 ‘남상미병’ 등 시기만 다를 뿐 당대 인기 있는 연예인은 롤모델의 대상이 되곤 했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시대의 유명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을 따라하는 것은 최근 들어 새로 생긴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한 이래 지금까지 계속 유지된 본능이다. 그 덕분에 인류는 지금처럼 번성할 수 있었고, 자본주의사회의 소비와 성장 사이클을 만들어 냈으며, 시대의 변화에 맞춰 시대정신을 유효적절하게 교체하며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니까 문제는 유명인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마치 잘못된 질병인 것처럼 낙인찍는 요즘 세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90년대 한국 남자들은 ‘최민수병’ 혹은 ‘주윤발병’ 환자들이었다. 당시 젊은 남자들의 표정이나 말투는 최민수의 것이었으며, 그들이 입은 얇은 바바리코트는 주윤발의 것이었다. 물론 모두가 최민수나 주윤발처럼 멋진 것도 아니었고, 스타가 되지도 않았다. 그건 현실에서 벗어난 잠깐의 소망충족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시절엔 아무도 그걸 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저 누구나 거쳐 가는 한때의 몽상이자 열정이라고 이해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소망충족을 병이라며 비아냥댈 바에야 바람직한 롤모델을 찾아 그를 닮으려 노력하는 것이 자기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대상이 연예인이면 어떤가. 닮을 점이 있는 사람을 정하는 것은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른 일이다. 다만 기왕 따라할 거라면 매력적인 겉모습뿐 아니라 바람직한 내면의 모습까지 자기 것으로 삼기를 바란다.






장근영

심리학자 겸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책연구소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활동하며 대학에선 매체심리학?발달심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 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