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숨은 역사
과학·문화·생태·역사가 한 곳에
대전광역시

글·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과학·문화·생태·역사가 한 곳에
대전광역시
첨단 과학의 도시 대전은 너른 들판이 많아 예부터 ‘한밭’으로 불렸다. 산과 들, 호수가 길게 뻗어 감싸고 그 사이로 갑천·유등천·대전천이 차례로 만나 금강으로 흐르니 천혜의 삶터로 모자람 없는 도시다. 도심 곳곳에 들어선 문화시설과 피로를 씻어줄 온천, 그리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움직이는 집, 살아 숨 쉬는 집
경부고속도로 대전 나들목으로 나오면 2km 거리에 단아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동춘당(同春堂)이 있다. 조선 효종 때 대사헌·이조판서·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이 자신의 호를 따서 이름 붙인 건물로, 보물 제209호다. 늘 봄과 같다는 뜻의 동춘당은 무심히 보면 평범한 집이지만 그 구조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예사롭지 않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동춘당은 햇빛·바람·공기의 흐름을 반영하여 지어졌다. 기후 변화를 받아들여 내·외부 구분을 허물었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집’, ‘살아 있는 집’인 것이다. 정면 3칸 중 마루로 되어 있는 동쪽 2칸과 온돌로 되어 있는 서쪽 1칸, 그리고 온돌방 서쪽 벽면은 사생활을 보호하고 빛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서쪽 벽면에 채광과 환기를 위해 조그마한 창문이 나 있으며 북쪽 벽면에는 안채를 통해 음식을 나를 수 있도록 출입구가 따로 마련돼 있다. 건물을 떠받치는 4각형의 키 높은 주춧돌은 조선 후기의 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굴뚝을 따로 만들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다만 왼쪽 온돌방 아래에 연기 구멍을 뚫어 놓았다.
동춘당 처마 밑에 걸린 현판은 송시열이 쓴 것이다. 그의 자취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우암사적공원에도 남아 있다. 송시열은 선조 40년(1607년)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촌에서 태어나 3살에 스스로 문자를 터득하고, 7세에 형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이를 받아썼을 만큼 총명했다고 한다. 공원에는 송시열이 제자들을 불러들여 학문을 익혔던 남간정사(南澗精舍)를 비롯해 송시열의 문집과 연보 등을 보관한 장경각이 있다.
동춘당: 대전광역시 대덕구 동춘당로 80
우암사적공원: 대전광역시 동구 충정로 53


동춘당 안채


백제의 자취가 서린 계족산
대전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계족산은 산세가 유순하고 완만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대덕구와 동구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계족(鷄足)이라는 이름 그대로 사방으로 뻗은 능선들이 닭의 발을 닮았다. 계족산은 무엇보다 맨발로 거니는 황톳길이 유명하다. 황토의 감촉을 피부로 느끼고 황토에서 뿜어져 나오는 원적외선의 효능을 맛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며,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명소로 소개되고 있다. 신발과 양말을 훌훌 벗고 맨발로 황톳길을 걷노라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상쾌함이 온몸을 감싼다.
산등성이에는 계족산성과 삼림욕장이 있어 하루 나들이 코스로 알맞다. 백제시대에 쌓은 계족산성은 산 정상 동북쪽으로 약 1.3㎞ 거리에 있다. 둘레는 1,038m, 높이는 10.5m에 이른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을 중심으로 신라군의 진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했고, 청주로 올라가는 길목이어서 조선 말기엔 동학농민군의 근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계족산 산행은 경부고속도로 아래, 고성 이씨 집성촌인 비래골에서 출발해 옥류각~절고개(황톳길 갈림길)~계족산성~황톳길~장동산림욕장 코스가 무난하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원 도심권
대전의 중심부인 대덕, 중구(동구 포함) 지역은 근현대 100년 역사를 간직한 대전에서도 가장 ‘핫’한 곳이다. 답답한 도심의 허파 구실을 하는 숲과 하천(갑천)이 있고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한밭수목원·국립중앙과학관·엑스포 과학공원·대전컨벤션센터 등의 관광지가 몰려 있다. 특히 근대문화유산인 옛 충남도청과 옛 대전형무소,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 등은 역사교육장으로 훌륭하다.
1919년 조선총독부가 세운 옛 대전형무소는 안창호·여운형·박헌영·김창숙 등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6·25전쟁 애국지사와 양민들이 수감되고 학살되었던 장소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무렵에는 독재정권 타도를 외친 무수한 시민들이 수감되기도 했다. 공원으로 변모한 형무소 터엔 망루, 우물, 왕버들나무만이 남아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옛 충남도청 건물(현 도청은 내포신도시로 이전했다)은 대전에 남아 있는 근대 관청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됐다. 밝은 갈색의 스크래치 타일을 두른 건물 외벽은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다. 요철(凹凸) 모양으로 파내어 장식한 1층 내부의 벽면과 곡선의 기둥, 기단의 각이 눈길을 끈다. 이 건물은 1937년 일본 시즈오카현의 청사 본관 외관과 비슷해서 1930년대 관공서 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건물 내에 마련된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대전의 역사와 인물, 독립운동가의 활약상 등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이번엔 생태체험장으로 인기 높은 한밭수목원으로 간다. 목련원·약용식물원·암석원·유실수원 등 19개의 테마 정원과 열대식물원을 갖추고 있는 한밭수목원은 대전 시가지를 관통하는 갑천과 이어져 있고 정부대전청사와도 가까워 청사 직원들은 물론 근처 아파트단지 주민들도 즐겨 찾는 명소이다. 가을을 맞아 생태체험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11월까지 매 주말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숲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구 대전형무소 망루: 대전광역시 중구 대종로 471
대전근현대사전시관: 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 101 / www.daejeon.go.kr/mor/main.do
한밭수목원: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대로 157 / www.daejeon.go.kr/treegarden


옛 대전형무소 터의 우물


옛 충남도청 건물 내부


독립운동가의 자취가 서린 장태산
대전 시가지 외곽에서는 장태산자연휴양림도 들러볼만한 명소다. 장태산 자락 30여 만 평에 조성된 사유림으로 인공림과 자연림에 둘러싸인 12km의 숲속 산책로가 일품이다. 휴양림을 따라 작은 계곡이 있고 장태산 전망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스카이타워도 설치되어 있다.
1970년대부터 조성된 장태산의 메타세쿼이아 숲은 독립운동가인 임창봉이 혼을 다해 가꾼 작품으로 우리나라 휴양림의 시초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한평생 나무를 사랑한 임업가였다. 사재를 털어 장태산 24여 만 평에 20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정성을 다해 가꿨다. 휴양림 들머리에는 임창봉의 흉상이 서 있다. 단풍이 들어 오묘한 색깔을 보여주는 메타세쿼이아는 아득한 옛날 공룡과 함께 살아온 ‘화석나무’로 알려져 있다. 높이 35m, 지름이 2m까지 자라는 메타세쿼이아로 길게 뻗은 숲길은 가슴 탁 트이는 상쾌함을 선사한다.
장태산휴양림에서 가까운 곳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남긴 독립운동가 신채호의 생가가 있다. 신채호는 국권을 일본에 빼앗기자 신민회 가입·국채보상운동 추진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및 전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 베이징에서는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하는 등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을 다했다. 1936년 뤼순 감옥에서 옥사하기까지 역작 『조선상고사』를 펴내는 등 우리 역사를 알리는 데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생가 터에는 옛 모습을 살린 생가와 유허비 및 동상이 세워져 있다.
장태산자연휴양림: 대전광역시 서구 장안로 461 / www.jangtaesan.or.kr
단재 신채호선생 생가지: 대전광역시 중구 단재로229번길 47

장태산휴양림 메타세쿼이아 숲


신채호 생가지

을미의병이 일어났던 유성장터
대전 외곽의 유성은 우리 역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항일의병의 현장이다. 유성장터가 그 현장으로, 당시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놀이터와 마을회관이 있는 장터공원에 기념비인 을미의병사적지가 세워져 있다. 1895년 9월 진잠현감을 역임한 문석봉이 주축이 되어 송근수·신응조·오형덕·김문주·송도순 등이 유성장터에서 항일의병을 일으켰다. 600여 명에 달하는 의병들은 회덕현 관아에서 무기를 탈취하여 이곳 유성장터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공주부 공략을 목표로 삼아 진격했다.
유성에는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잠든 대전현충원이 있고 여행의 피로를 씻어줄 유성온천도 지척이다. 이곳의 온천수는 지하 50∼400m의 화강암 단층대에서 분출되는 27~56℃ 정도의 약알칼리성 단순천으로 60여 종의 각종 성분이 함유돼 있어 온천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온천타운 주변으로 대규모 숙박시설이 자리해 있고 한쪽에 들어선 족욕체험장도 인기가 많다. 따끈한 온수에 발을 담그면 손발 냉증이 사라지고 혈압·당뇨병·비만 등 성인병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유성장터: 대전광역시 유성구 어은로51번길 63유성온천지구: 대전광역시 유성구 온천로 59


유성온천단지의 족욕체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