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혹은 거짓
지옥섬에 얽힌 비극적인 역사
영화 <군함도>

글 편집실
지옥섬에 얽힌 비극적인 역사
영화 <군함도>
감독: 류승완
주연: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
개봉일: 2017년 7월 26일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군함도에 강제 징용되었다는 사실은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다뤄지면서 어느 정도 알려진 바다. 관련 책 또한 여러 차례 출판된 가운데, 올해는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군함도>가 개봉하면서 또 한 번 ‘역사 고증’의 논란이 일었다. 영화 줄거리를 살펴보며 실제 역사를 되짚어보자.
Q. 일본 근대화의 그늘에 우리의 끔찍한 역사가 있다?
1945년, 일본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각기 사연을 품은 조선인들이 이 배에 오른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짙은 안개를 뚫고 도착한 곳은 바로 군함도(하시마섬). 조선인들이 마주하게 된 이 섬에서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잔혹했다.
군함도는 1810년경 석탄이 발견된 이후로 1890년 미쓰비시사가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석탄 채굴을 시작한 탄광섬이다. 섬 주변을 시멘트로 도배하고 고층 건물이 들어서 있는 모습이 일본군함과 형태가 비슷해 ‘군함도’라 불렸다.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서는 1km가 넘고 온도가 45도를 웃도는 지하로 내려가야 했는데, 일제는 여기에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해 착취하기 시작했다. 일본 산업혁명의 그늘에 조선인들의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Q. 실제 군함도의 조선인 징용자들의 삶은 어땠나?
군함도에서 노역에 시달리는 조선인들은 지옥과도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속옷 한 장만 입고 지하 갱도로 끌려가 온종일 석탄을 채굴하고,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못해 피골이 상접해간다.
군함도의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은 어둠으로 가득한 지하탄광에서 12시간, 많게는 16시간씩 일해야 했다. 식사라고는 콩찌꺼기로 만든 주먹밥 뿐. 이마저도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야 했고, 잦은 학대와 고문까지 이어졌다. 채굴 작업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었다. 유독가스와 바닷물이 수시로 분출되었고, 자칫 발화되어 폭파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약 800명의 조선인들이 군함도에 끌려갔으며, 그중 122명 가량이 사고·질식·압사 등으로 사망했다.

군함도에 강제 징용되었던 조선인들
Q. 군함도를 탈출한 조선인이 있었다?
미국의 폭격으로 패색이 짙어진 일본은 군함도에서 저지른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모두 갱도에 가두고 폭파하기로 한다. 이를 눈치 챈 광복군 소속 OSS 요원인 무영(송중기)은 사람들과 힘을 합쳐 군함도를 탈출하기로 하는데….
군함도의 또 다른 이름은 ‘지옥섬’이다. 육지가 아닌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이기에 그만큼 그곳을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영화에서처럼 대규모 탈출 시도는 없었지만, 끔찍한 생활에서 도망치고자 했던 사람들은 있었다. 다만 긍정적인 결말은 결코 아니었다. 군함도의 파도는 거칠었다.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대부분 익사했고, 설사 운 좋게 육지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곳은 일본 땅이었기에 희망이 없었다. 탈출 시도를 했다가 잡힌 사람들은 혹독한 매질과 고문을 당해야 했다.
Q. 광복 이후 군함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군함도는 주요 에너지가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되면서 1974년 폐광되었고, 그곳에 거주하던 일본인들도 모두 떠나 무인도가 되었다. 2009년 일본 정부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자 ‘해저탄광 유적’으로서 군함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내세워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201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에 이르렀다. 등재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일본은 군함도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징용을 인정하고 이를 유네스코 등재 결정문에 명시하기로 약속했다가, 등재 결정이 나고 하루 만에 “강제 징용이 없었다”고 번복했다.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과거를 미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군함도, 그 지옥의 섬에서 저질러진 만행은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덮으려 한들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사죄는 기필코 이루어져야 한다.

군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