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이번 여름 휴가는 38이라는 숫자와 함께 시작되었다. 처음 CU신월신오점, 신월감나무점 매니저로 근무하면서 ‘나는 과연 아버지처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회초년생에게 한번쯤 떠오른 생각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지 어느새 2년이 지났고, 그렇게 아버지는 38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하셨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가족은 훗카이도로 여행을 떠났다.
▲ 훗카이도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인 마일드세븐 언덕. 1977년 일본의 담배 브랜드 '마일드 세븐'의 패키지 광고로 유명해진 곳이다.
여행을 좋아하여 대학생 때 세계일주를 하면서 377일간 30개국을 여행했었다. 나름 전문가라고 자부했음에도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다리가 아프신 어머니를 위해 위치가 좋은 호텔을 알아봐야 했고,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다 보니 가성비가 좋은 곳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예약과 취소만 20번 넘게 했다. 맛집으로 방문할 곳도 구글 맵에 세세히 다 저장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3시간의 비행, 1시간 20분의 기다림, 또 1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고 우리는 ‘노보리베츠’라는 온천 지역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꿈에 그리던 료칸에서 묵었다. 유카타를 입고 차려주는 일본식 한상차림을 먹고 뜨끈한 온천에서 몸을 풀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도깨비 불 축제 행사였다. 약 2개월간 목요일, 금요일만 진행하는 행사로 노보리베츠의 상징인 도깨비 분장을 한 사람들이 불꽃과 함께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바닥에 털썩 앉아서 보는 다소 불편한 사항이었지만 아직도 도깨비들의 불꽃이 머리에 아련히 남아있다.
그렇게 첫날의 일정을 맞추고 우리 가족은 러브레터의 배경지인 오타루로 향했다. 이곳에서 아름다운 운하보다 좋았던 것은 부모님이 맛있게 음식을 드시는 모습이었다. 홋카이도산 메밀만 사용한다는 메밀집을 가고 훗카이도 지역 채소와 해산물만 사용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눈 깜짝할 새 모든 음식을 드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이탈리아 피자를 드시면서 도우가 얇은 피자는 처음 먹어본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죄송한 감정이 들면서 한국에 돌아가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대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였던 오타루 운하
하지만 이렇게 항상 밝고 재밌게 다닌 것만은 아니었다. 삿포로로 넘어가기 전에 스시집을 가려고 했지만 찾아둔 집이 문이 닫아 있었고, 부랴부랴 다른 곳을 찾아 가니 75분이나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처음 방문하는 곳인데 계속 ‘다음에는 어디 가냐’고 물어보시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서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순간 내뱉은 그런 말들에 부모님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지 못한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물론 그날 징기스칸 스타일의 맛있는 양고기를 대접하면서 사과드리기는 했지만, 앞으로 말과 행동을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이틀은 삿포로에 있는 호텔에 머물면서 보냈다.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했던 장소는 후라노, 비에이 일일투어였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부터 관광버스를 타는 일정이었는데 아름다운 들판과 꽃 그리고 아오이케를 방문했다. 아오이케는 청의 호수라는 뜻으로 화산이 분화될 때를 대비하려고 인공호수를 만든 곳이었다. 애플이 아오이케를 찍은 사진을 맥북 및 아이폰 시리즈 배경화면으로 사용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아오이케의 물이 파란색인 이유는 주변에 있는 화산의 영향으로 유황성분을 많이 포함한 비에이강의 강물과 호수의 토지에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는 알루미늄 성분이 섞이면서 그 화학 작용으로 인해 연못이 푸른색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호수 중앙에 있는 나무들이 호수면 위에 비치는 모습과 파란색의 물 그리고 하늘의 구름들이 나의 가슴을 사로잡았고, 아무 말 없이 계속 바라만 보게 만들었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자부했음에도 세상에는 볼게 많고 느낄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청의 호수'라는 뜻을 가진 호수 아오이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어느새 우리 가족은 마지막 날을 보내게 되었다. 마지막 날은 간단하게(?) 쇼핑을 다니고 훗카이도산 털게를 맛보았다. 쇼핑은 돈키호테라는 곳에서 했는데 저렴한 가격에 사전 텍스프리가 가능하여 관광객이 많았다. 유통회사에 다니다 보니 일본여행이 업무적 식견을 많이 키워주었다. 하루에 3번씩은 로손, 세븐일레븐 등 많은 편의점을 다니면서 다양한 간편식품을 보고 감탄하면서 이것저것 맛을 보았다. 거기다 돈키호테와 일부 편의점에서 5,000엔 이상 구매하면 8% 세금을 면제하는 제도를 통해 매출을 올리는 유통업체들을 보면서 우리 회사가 가야할 방향이 어디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4박 5일간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여행 중에 평소에 쑥스러워 말씀을 못 드린 이야기를 작게나마 내비쳤다. 일하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자식을 위해서 회사에서 얼마나 참고 인내하셨을지, 감사하다는 작은 인사말과 함께 짧게나마 포옹을 해드렸다. 아직은 입사 2년차의 사회 초년생이지만 부모님께 보고 배운대로 정직하게 살고, 살아계시는 동안 다양한 경험과 즐겁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효도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 노보리베츠에 도착했을 때 찍은 가족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