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AUTUMN Vol. 163
ISSUE HEALTH COMMUNICATION
건강 레시피 | 멍게비빔밥

단순하지만 매력 넘치는 맛,
멍게비빔밥

글 _ 황인철 산부인과 과장
진료분야 _ 산전관리, 고위험임신, 정밀초음파

해삼, 멍게, 말미잘 같은···

요즘 욕을 내뱉을 일이 참 많다. 시끄러운 정치가 그렇고, 팍팍한 경제 사정을 생각하면 또 한 번 욕이 떠오르고, 심지어 오락가락한 날씨까지 한몫을 더한다. 시원하게 욕 한 번 뱉으면 답답함이 좀 덜하겠는데 평소 욕을 잘 못하는 필자로서는 최고로 심하게 내뱉는 욕이 바로 이것이다.

“아이, 이런 해삼, 멍게, 말미잘 같은···.”

이 욕을 처음 배운 건 중학교 시절이다. 친구들과 이리저리 부대끼는 학교생활 속에서 무심코 따라 배웠는데, 처음에는 너무 해맑게 “해삼, 멍게, 말미잘”을 외쳐서 이를 듣던 친구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 후부터 정말 화가 났을 때는 ‘바보, 멍청이’까지 덧붙이고 인상을 팍 쓰면서 목소리 톤을 높여 크게 외쳤다.

“야!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그런데 왜 이런 욕이 생겼을까? 첫째는 생김새 때문인 것 같다. 말미잘은 척수가 무수히 많이 나와 있어서 조명을 비추면 신비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보면 약간 섬뜩하고 무서운 느낌이 든다. 물컹거리는 해삼과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멍게 또한 아무래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해삼과 멍게를 30세가 되어서야 입에 댄 나로서는 어려서 배운 욕이 큰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 생김새도 크게 한몫을 한 것 같다.

둘째는 생태학적으로 보면 사람과는 먼 하등한 동물이라는 점이다. 말미잘은 식물의 형태이지만 실제로는 자포동물이다. 해삼은 입을 아래로 향한 채 바다 밑에서 서식하는, 육지의 하이에나처럼 쓰레기를 먹고 사는 극피동물이다. 그나마 멍게는 동물에 가까운 척삭동물의 형태를 띠지만 고등동물인 사람에 비하면 한참 아래 등급이다. 그렇다 보니 ‘해삼, 멍게, 말미잘’에는 ‘이런 동물 같지 않은 놈’ 정도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셋째는 욕의 애교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욕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처럼 시원한 말이 없다. ‘해삼, 멍게, 말미잘’이 마치 한 형제를 부르는 것처럼 입에 착착 달라붙으면서 “나는 욕을 이렇게 줄줄 잘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순식간에 튀어나온다. 게다가 흔히 말하는 쌍욕에 비하면 애교 정도로 들리기에 더 큰 화를 불러오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는 맛이다. 말미잘은 먹어보질 못했으니 넘어가고, 해삼과 멍게는 먹어보면 안다. 처음에는 ‘뭐지?’ 하고 인상을 찌푸리게 되지만 초장에 찍어 먹는 해삼과 멍게는 순식간에 그릇을 비우게 만드는 반전의 매력이 있다. 단순하다고 놀린 하등동물이 주는 이 맛은 반전의 킥이라고 할까?

쌉쌀한 멍게비빔밥이 주는 행복

멍게는 5~6월이 제일 맛있지만, 이것도 옛날 이야기인 게 요즘에는 적절한 온도로 양식을 하기 때문에 사실 사계절 다 맛있다고 보면 된다. 식욕이 없어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차에 쌉쌀한 멍게비빔밥 한 그릇이면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아 고민 없이 주문하였다. 일단 멍게를 무쳐야 한다. 잘 손질된 멍게를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딱 한 번 흐르는 물에 씻은 뒤 소금을 뿌려 잠시 절여 놓는다. 멍게에 짠 맛이 있으니 소금은 과하게 치지 말고 1시간만 절여 놓자. 그리고 젓갈에 필요한 갖은양념을 넣고 살살 비빈다. 마지막에 참기름으로 화룡점정의 점을 찍은 뒤 통깨로 마무리하면 된다.

뜨거운 밥은 필수다. 보통 비빔밥에 이것저것 채소를 넣고 비비지만 멍게비빔밥에 채소는 사치스러운 액세서리다. 뜨거운 밥 하나면 족하다. 때로는 단순한 것이 진리일 때가 많다. 너무 복잡하고 시끄러운 요즘, 단순하게 살자. 멍게비빔밥처럼.

한 입 베어 물은 내 입에서 나지막이 한마디가 튀어나온다.

“이런! 해삼, 멍게, 말미잘 같은이라고. 너무 맛나잖아!”

멍게비빔밥

재료 손질된 멍게 500g, 굵은소금 2T, 고춧가루 2T, 매실청 2T, 다진 마늘 1T, 생강청 0.5T, 갈치속젓 2T, 쪽파 3줄, 청고추 2개, 홍고추 2개, 참기름, 통깨

1 멍게를 먹기 좋게 잘라 흐르는 물에 한 번 씻어 둔다.
2 준비한 양념과 잘게 썬 쪽파, 청·홍고추를 잘 섞어준다.
3 마무리로 참기름과 통깨를 넣고 섞어준다.
4 뜨거운 밥에 올려 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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