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숨은 역사
힐링과 휴식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역사
강원도 홍천

글·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힐링과 휴식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역사
강원도 홍천
‘꿈에 그린 전원도시’ 산 높고 골 깊은 강원도 홍천은 우리나라 지자체 중 가장 넓은 땅을 보유한 고장이면서 나라꽃 무궁화가 군화(郡花)여서 이곳의 의미와 역사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대부분이 산과 계곡, 강으로 이루어진 홍천은 어딜 가나 비경이 널려 있는데, 곳곳에서 나라사랑의 정신도 엿볼 수 있다.

홍천강 줄기를 따라가자
홍천은 땅이 워낙 넓은 까닭에 웬만큼 둘러보려면 최소 2박 3일은 잡아야 한다. 경기도 양평을 지나 홍천군 서면 소재지로 접어들면 그림 같은 강변 정경이 펼쳐진다. 밤골·모곡밤벌·수산·개야·마곡·노일 등 홍천강 줄기의 강변 유원지는 피서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휴식처다. 특히 그 주변엔 무궁화마을(서면 밤범길)과 팔봉돌배마을(서면 오도치길) 등 농촌체험마을이 들어서 있어서 도시민들이 다양한 농촌생활에 푹 빠져볼 수 있다.
홍천강 위쪽에는 팔봉산이 우뚝 솟아 있다. 해발 327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여덟 개의 봉우리가 치맛자락처럼 이어져 있는 모습이 기개가 대단하다. 한국의 100대 명산에 들 만큼 일찍이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팔봉산의 인기는 그 자체의 멋도 있지만 바로 아래 흐르는 홍천강 덕이 크다. 등산과 물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어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다. 홍천강의 자랑인 넓고 고운 백사장은 마치 해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근래 들어 붐을 이루고 있는 오토캠핑장도 마련돼 있는데 비취빛 강물과 파란 하늘을 벗 삼아 색다른 정취에 빠져볼 수 있다.
노일강변유원지: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리 산59-1
팔봉산 등산로 매표소: 강원도 홍천군 서면 한치골길
팔봉참살이마을 오토캠핑장: 강원도 홍천군 서면 도오치길8 / 033-435-1481

노일강변 유원지

나라사랑을 몸소 실천했던 남궁억과 강재구
모곡밤벌유원지 한쪽엔 독립운동가 남궁억의 묘역과 기념관이 있다. 한서 남궁억은 서울 정동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황성신문>을 창간하여 언론인으로서 민중계몽을 위해 힘쓰고, 현산학교를 설립해 구국교육에 노력하는 등 교육자로서도 나라사랑 정신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특히 서재필, 이상재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1933년 11월엔 독립운동 비밀결사대인 ‘십자당’을 조직해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투신하는 한편,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등 1백여 곡의 애국가요를 직접 지어 보급하기도 했다. 한편 남궁억의 자취는 연봉리에 위치한 무궁화공원에도 남아 있다. 이곳엔 남궁억 선생 시비를 비롯해 충혼탑, 3·1만세탑, 홍천지구 전투 전적비, 반공 희생자 위령탑 등이 세워져 있으며 무궁화공원 안쪽에 자리한 향토사료관에서는 남궁억을 기리는 흉상과 무궁화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읍내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 떨어진 북방면 성동로엔 강재구 소령의 추모탑이 서있다. 1965년 10월 4일 월남전에 참가하기 위한 마지막 훈련 중 강재구 소령은 한 부하 병사가 실수로 던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 다른 병사들의 생명을 구했다. 추모탑 옆에는 그가 장렬하게 산화한 장소에 기념비와 기념관을 마련하여 살신성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기념관엔 그가 생전에 기록한 비망록·신상명세서·유도·약혼녀에게 보낸 편지 등 125점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매년 10월 4일이면 고인의 유족과 육사 동기생들이 찾아와 숭고한 넋을 추모하고 있다.
한서남궁억기념관: 강원도 홍천군 서면 한서로 667 / 033-430-4488
무궁화공원: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연봉리 / 033-430-2768
강재구공원기념관: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성동로 275

한서남궁억기념관

남궁억 기념비

강재구 소령 추모탑

이번에 갈 곳은 공작산 자락에 포근히 안긴 천년고찰 수타사다. 공작산은 조선시대부터 왕릉(세조의 비 정희왕후의 태실)이 자리를 잡으면서 왕실의 숲으로 보호받은 영험한 곳이다. 드물게 평지에 자리한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된 고찰로, 경내에 월인석보(보물 제745호)를 포함한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수타사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더위를 씻어준다.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수타사 옆으로 난 공작산 생태숲 산소길은 사철 내내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며 청아한 새소리는 기분이 절로 좋아지고 피톤치드를 맘껏 들이키자면 심신이 편안해진다. 산소길을 걷다 보면 첫 번째 비경인 출렁다리를 만날 수 있다. 다리 밑에는 움푹 파인 ‘귕소’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귕’은 이곳 말로 소나 말이 여물을 먹는 통을 말하는데, 연못(沼)의 모양이 귕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출렁이는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걸어가면 두 번째 비경, 용담이 나타난다. 용이 승천했다는 연못으로, 그 위에는 펑퍼짐한 너럭바위가 앉아있다.
산소길은 노천리까지 이어지는데 오밀조밀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하늘을 찌를 듯한 잣나무와 마가목, 매끈한 자태의 은사시나무, 아름드리 소나무, 쓰디쓴 열매를 맺는 소태나무, 옛날 도로변에 거리 측량을 위해 심었다는 오리나무와 시무나무 등 사연도 갖가지인 나무들을 눈에 담는 재미가 있다. 산소길은 모두 4개 코스로 나뉘는데, 수타사를 둘러보고 생태숲-출렁다리-귕소-용담-수타사로 돌아오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다. 총2km에 어른 걸음으로 1시간, 천천히 걸으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이다.
수타사: 강원도 홍천군 동면 덕치리 9 / 033-436-6611 / www.sutasa.org

공작산 생태숲

읍내에서 인제 방향인 서석면을 지나 내면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자연이 만들어낸 절경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미약골은 400리를 흐르는 홍천강 발원지로 원시림의 계곡을 따라가노라면 촛대바위·암석폭포·용천수 등 때 묻지 않은 자연생태계가 반긴다. 인제와 접한 내면계곡은 무주구천동을 10개쯤 모아놓은 것 같은 풍광을 자아낸다. 오대산·계방산·응복산 등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시리도록 찬 물은 계방천·자운천·조항천·내린천으로 만나고 다시 갈리면서 수많은 여울과 폭포, 소를 이룬다. 내면계곡은 긴 물줄기의 마지막 단계로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릉도원으로 통하는 곳이다. 열목어·금강모치·꺽지·쉬리·참종개·갈겨니 등 크고 작은 민물고기가 바위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내면 율전리 살둔마을. 강원도에서도 가장 강원도답다는 이곳은 산줄기 물줄기가 첩첩이 돌아가는 산중이다. 내린천이 시작되는 첫 마을로 현재 10가구가 산밭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1985년에 지은 귀틀집 모양의 살둔산장은 한국의 100대 산장에 꼽힌다. 산악인 윤두선(故윤보선 대통령 동생)씨가 월정사 복원 작업에 참여한 도목수에게 부탁해 지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산장 바로 옆 계곡은 내린천의 상류 지점으로 풍광이 수려하다.
살둔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미산계곡·모래소계곡·미천골·명개리계곡·칡소폭포·삼봉약수가 있는 삼봉자연휴양림이 있다. 내면 명계리에서 양양(서면 갈천리)으로 넘어가는 구룡령 옛길(명승 제26호)도 걸어볼만 하다. 예부터 영동 지방 사람들이 한양으로 갈 때 많이 이용했던 길이다.
살둔 정보화마을: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리 183 / 070-7793-0366
살둔산장: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리 212 / 033-435-5984 / www.saldun.co.kr

내린천

살둔계곡

근대 한국의 굵직한 역사를 안고 있는 곳
내면에서 돌아 나와 내촌면 쪽으로 올라가면 홍천의 또 다른 역사와 조우하게 된다. 내촌면·서석면·화촌면 일대는 동학농민군 최후의 항전지면서, 일제강점기에는 치열한 만세운동의 현장, 한국전쟁 때는 수많은 병사들이 피 흘린 곳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16일부터 20일까지 국군 5사단과 중공군 27사단은 이곳 물걸리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근접 전투로 수많은 국군 장병들이 포연과 함께 사라져간 구국의 현장인 것이다. 국방부는 지난 2011년 물걸리 일대에서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실시, 전사자 유해 182구와 유품 1107점을 발굴해 국립현충원에 안장하였다.
물걸리 동창마을에 있는 기미만세공원은 1919년 4월 1일, 일제 탄압에 맞서 만세운동을 하다 이곳에서 순직한 8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기미만세상·비문·팔렬각 등 세워진 조형물들은 3·1운동의 고귀한 정신을 어렴풋이나마 되새겨보도록 하고 있다. 한편 공원 한쪽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가 남아 있다. 그곳에는 3층석탑(보물 제545호)이 단아하면서도 미려한 자태로 홀로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밖에도 산 높고 골 깊은 내촌과 두촌엔 한여름 무더위를 씻겨줄 명소들이 많이 있다. 가리산을 비롯해 용소계곡·물골안강변·화상대강변·눌언동강변·수하리캠핑장·가령폭포 등은 자동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다.
기미만세공원: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92 / 033-430-4441

기미만세운동기념비

기미만세상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겸 수필가. 현재 『월간 비타민』, 『건설경제신문』, 『서울우유』, 『냉동공조신문』에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여행 저서로는 『여름 이야기』, 『7가지 테마가 있는 여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