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한 발걸음

날개 잃은 교권 vs 학생 인권 침해, 해법은?

날개 잃은 교권 vs 학생 인권 침해, 해법은?

글 이현수 일상심리 전문작가, 자유기고가


날개 잃은 교권 vs 학생 인권 침해, 해법은?


고등학교 선생님인 A씨(34)는 출근이 두렵다. 존경하는 선생님과 즐겁게 보낸 학창시절 추억으로 교편을 잡았으나 최근의 학교는 기대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거친 언동과 살벌한 눈빛, 모멸감을 주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학생들을 마주해야 하는 매일이 곤욕스럽다. 학생이 교사를 때렸다는 뉴스의 주인공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하다.


사랑과 배움으로 가득해야 할 교실이 폭력으로 얼룩지고 있다. 교사의 지나친 학생 체벌은 물론, 학생의 교권 침해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폭력으로 물든 학교, 선생도 학생도 불행해
2015년, 경기도 이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찍힌 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돌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영상 속에는 학생들이 빗자루로 교사를 십여 차례 때리면서 욕하고 침을 뱉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교권 침해는 날로 심각해지는 추세다. 2016년 1월, 교육부는 지난 5년간 교권 침해 사례가 무려 2만6천여 건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매년 학교 3곳 중 1곳에서 교권 침해 사건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기간제 교사가 당한 침해 사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비정규직이라는 지위 때문에 신고가 어려운 탓이다.1) 비정규직 교사의 피해까지 포함하면,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교권 침해가 매우 심각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학생 인권 역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학생 22명을 죽도로 폭행한 교사가 전파를 탔다. 신체적 체벌과 함께 “너희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다” 등 폭언41을 일삼는 모습은 경악할 만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경기도에서도 초·중·고 학생의 15%가 일 년에 1~2회 이상 직·간접 체벌을 받았다고 응답했다.2) 특히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교육청이 업무 진행을 미루거나 발생 현황을 파악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3) 학생 인권 침해도 교권 침해와 마찬가지로 인지조차 하지 못한 사례가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일견 반비례나 제로섬 관계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교권은 다음 세대를 길러내기 위해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권리로, 인권 보장에 기반한 헌법의 정신을 계승한다. 때문에 교권은 학생에게 신체적 체벌이나 모독을 가할 권리를 포함하지 않는다. 학생 인권 역시 마찬가지이다. 학생의 인권 보장이 교사에게 폭력을 허락한다는 뜻은 아니다. 두 권리와 가장 극명한 대척점에 있는 것은 ‘폭력’이다.


학생 인권, 체벌 당연시 여기는 인식 전환해야
흔히 체벌에 대해 “사랑의 매”, “맞으면서 크는 거지”라고들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낮은 인권 감수성을 반영하는 말이다. 폭력이 청소년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생각 이상이다. 미국 하버드대와 일본 구마모토대가 발표한 ‘체벌이 뇌에 직접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를 참조해 보자. 4~15세 사이에 손바닥으로 치거나 회초리로 엉덩이를 때리는 체벌을 한 달에 한 번꼴로 3년 이상 받은 남녀를 조사했는데, 체벌을 받은 이들의 뇌용적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뇌용적이 80%에 불과했다. 의욕이나 집중력, 주의력을 관장하는 전두엽 부분도 무려 19%나 작았다.4) 또 한편으로 스웨덴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폭력은 두뇌는 물론 신체 건강까지 악화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5)
이처럼 신체적 체벌은 학생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악화시키는 치명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올바른 지도는 체벌이 아닌 대화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상담과 격려 혹은 제재가 필요할 경우 벌점제 등으로 지도하는 것이 좋다.


교사 인권, 법령 재정비 및 엄격한 적용 필요
독일이나 서유럽·영국·미국 역시 중증의 교권 침해에 직면하고 있다. 매년 수십 명의 교사가 학생에게 총으로 저격당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무관용 정책(Zero tolerance policy)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계기는 1999년 학생 2명의 무차별 총기난사로 동료학생과 교사 13명이 숨진 컬럼바인고교 총격사건 때문이다. 이후 미국에서는 교실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적극 처벌한다. 물론 폭력 및 중범죄와 관련 없는 단순 실수에는 관용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어 방법상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이 덕분에 학교 내 안전 확보가 가능해졌고, 폭력 비율도 현저히 감소했다. 교권 침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근거 법안 마련과 이를 엄격하게 실행하는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 2016년 2월 서울행정법원은 강제 전학당한 중학생이 낸 불복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는데, 교권 침해를 이유로 학생을 강제 전학시키는 규정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존 교권보호법은 근거 규정이 부족해 사실상 교권 침해 방지에 도움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다. 다행히 정부는 현행 교권보호법의 실효성이 미비함을 인지하고 법안 개선을 추진 중이다. 교권을 침해한 학생을 강제 전학시키고, 해당 학생 부모가 특별교육을 거부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개정 법안의 골자다. 법안이 마련되면 이를 원칙대로 적용하여, 폭행과 협박을 당한 교원의 사기 저하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를 방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스승을 국부나 부모님으로 간주할 정도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과 제자가 함께 도우며 성장했던 아름다운 문화가 있었다. 세한도에 얽힌 추사 김정희와 제자 이상적의 미담이나, 거문고 악사 김성기와 왕세기 간의 신분을 뛰어넘은 교감은 후손인 우리의 현재를 부끄럽게 한다. 선생과 학생이 행복한 학교, 참된 스승과 제자가 되는 데는 어느 한 쪽이 아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 각주
1) 일반 교사가 교권 침해를 당했을 경우,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학생을 징계할 수 있지만, 기간제 교사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그대로 채용이 중단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신고는 물론 통계를 내기도 쉽지 않다.(기간제 교사 차별을 방관하는 학교, 2017.03.16., 시사인)

2) 인천일보,2017년 1월 31일, 등잔 및 어두운 ‘학생인권조례’

3) 성균관에는 ‘스캔들’ 대신 ‘체벌’있었다: 과학으로 파헤쳐 본 체벌의 효과(사이언스 타임즈, 이성규, 2010.10.29.)

4)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에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 심혈관계 조절 및 체지방 축적, 지질대사, 포도당 대사, 염증, 내분비대사 등의 신체건강 지표들이 악화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Hard times during adolescence point to health problem later in life, 2011.10.27., Gustafsson)

5) 현재 미국에서는 처벌로 인한 낙인 효과와 이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폭력의 정도에 따라 처벌을 달리하는 등급징계제도와 조기반응모형을 고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