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답을 찾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함석헌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많다. 언론인, 민중운동가, 문필가, 사상가 등…. 그중에서도 꼽을만한 표현이 있다면, 단연 ‘겨레의 사상가’가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의 밑이 뜻이요 모든 것의 끝이 뜻이다. 뜻 품으면 사람, 뜻 없으면 사람 아니. 뜻 깨달으면 얼, 못 깨달으면 흙….”

1958년 함석헌이 잡지 『사상계(思想界)』에 기고한 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의 한 구절이다. 아직 6·25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시기, 전쟁이란 고통이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깊게 생채기를 낸 그 시절에 함석헌은 전쟁을 이끈 이들은 물론 전쟁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을 비판했다.


민족의 혼을 지키기 위해 싸운 사상가
▲1901년 평안북도 용천(龍川) 출생 ▲기독교계 덕일소학교와 양시 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관립 평양 고등보통학교 입학 ▲3·1운동 참가 ▲민족교육의 요람인 오산학교로 편입 ▲동경고등사범학교 입학 ▲1927년 무교회주의적 기독교 동인지 『성서조선(聖書朝鮮)』 창간에 참여 ▲1940년 계우회 사건으로 구속 ▲1942년 성서조선 사건으로 재구속 ▲1958년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기고. 구속 이후 권위주의 정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이어감 ▲1970년 잡지 『씨알의 소리』 발간 ▲1989년 2월 4일 별세

함석헌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성서조선(聖書朝鮮)』은 기존의 교회 제도에 반대하는 무교회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이 한데 모여 만든 기독교 동인지다. 함석헌은 여기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를 기고하여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조선의 역사를 신랄하게 논파하고, 진짜 역사를 가르치려 애썼다. 이러한 행보는 중일전쟁 이후 심화된 일본의 민족주의 말살정책 앞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조선어와 조선 역사를 가르칠 수 없게 되자, 함석헌은 미련 없이 오산학교 교사 자리를 사임했다. 그리고 평양 근교의 송산농사학원(松山農士學院)을 인수하여 이곳에서 국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이런 그를 일제가 가만히 놔뒀을 리 만무했다. 함석헌은 일제강점기에 무려 4번이나 투옥되었는데, 당시의 엄혹했던 시절을 이렇게 정의했다. “나의 유일한 범죄는 내가 한국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한국인이었기에 조선의 말과 역사를 지키려 했고, 조선의 사상을 끝까지 파고들어 우리 민족의 얼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여러 차례 이어진 옥고였다.


생각하는 국민이 역사를 바로 세운다
광복 이후 찾아온 권위주의 정부 시절을 보낸 함석헌은 칼날 위를 걷는 삶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 사회에 목소리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주장하는 ‘옳음’이 상식과 세상의 진리에 부합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어떤 권위보다 민주주의를 사랑했고, 투철한 신념으로 이 땅의 민중을 위해 움직인 실천적 사상가다.
우리의 역사적 숙제는 이 한 점에 맺힌다. 깊은 종교를 낳자는 것. 생각하는 민족이 되자는 것. 철학하는 백성이 되자는 것.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는 함석헌이 우리 민족, 우리 국가, 우리 삶을 대하는 자세를 주목해야 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숙제를 세 마디로 정리했는데, 바로 통일정신, 독립정신 그리고 신앙정신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하나로 정리했다. 바로 철학하는 백성, 생각하는 민족이 되자는 것이다.
철학의 핵심은 ‘회의(懷疑)’다. 철학의 시작을 알린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왜’라고 물음으로써 스스로 깨우치게 했다. 의심이 곧 철학이다. 함석헌은 우리 국민이 늘 의심하고 생각함으로써 계몽해야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볼 부르제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자.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는가. 사는 게 팍팍하다는 변명으로 타성에 젖어 살고 있지는 않은지. 미디어와 인터넷이 제공하는 편리한 정보에 길들어가고, 의심할 줄 모른 채 그저 누군가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경술국치는 끝났지만 오늘날 그 치욕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걸 포기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의심과 생각 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은 오늘에 이르러, 나라를 잃고 국민의 주권을 잃었던 지난날의 모멸을 다시금 느끼게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망국의 위기가 다시 그림자를 드리울지도 모를 일이다.
끝없이 의심하고, 늘 생각하자. 스스로 판단하고 깨우치자. 그래야 우리 역사의 주인이 흔들리지 않는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의 말은 60년 전 그날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성주

시나리오 작가 겸 역사칼럼니스트.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조선의 민낯』, 『왕들의 부부싸움』과 같은 역사서를 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제정치와 관련된 연구 및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1, 2, 3권을 출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