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숨결

겨울 속으로 향한다
삼척

겨울 속으로 향한다<BR />삼척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겨울 속으로 향한다

삼척


겨울은 자연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좋은 계절이다. 어디 자연뿐일까. 탁 트인 바다를 달려 바다를 마주하면 일상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나를 만날 수도 있다. 그 바람을 안고 강원도 삼척으로 향한다. 그곳은 바다와 나란히 달리는 해안도로와 수백 년 동안 시인 묵객들이 풍월을 읊었던 누각, 척박한 겨울을 이겨낸 선조들의 옛 가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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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도로에 있는 쉼터



탁 트인 바다와 함께 달리다

삼척항에서 증산해변까지 약 5km의 드라이브 구간을 ‘새천년도로’라 부른다. 이 구간을 달려본 사람들은 이곳을 동해안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는다. 검푸른 바다와 갯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하얀 파도, 푸른 송림이 어우러져 가다 서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도로는 바다와 맞닿을 정도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마치 바다가 살아있는 듯하다. 또 바람이 강한 날에는 도로 위로 솟구는 파도에 탄성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도로 중간에는 주차장과 휴게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안전하게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새천년도로가 시작하는 증산해변은 동해시 추암해변과 이웃해 있다. 감동적인 해돋이는 물론이고 기기묘묘한 기암괴석이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운이 좋다면 장엄한 해돋이의 감동도 챙겨볼 수 있으니 가능한 일출 시각에 맞춰 찾아보길 권한다. 

추암해변을 지나 증산해변을 거쳐 삼척해변에 이르면 겨울 바다의 고즈넉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호젓하게 바다를 거닐어 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상념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차를 몰아 작은후진해변을 지나 비치조각공원에 닿는다. 10여 점의 조각 작품이 전시 중이다. 새천년 해안유원지에는 시선을 압도할만한 큰 탑이 있다. 바로 소망의 탑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성취한 것과 아직 진행 중인 것, 그리고 아쉽게 포기해야 했던 일들을 정리해도 좋겠다.

새천년도로는 야경 드라이브도 꽤 운치가 있다. 검푸른 빛 바다와 육지의 조명과 궤적을 남기며 달리는 차량 행렬이 볼만하다. 시선을 바다로 돌리면 수평선을 수놓는 오징어 배들의 불빛이 장관이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경이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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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도로의 야경



절벽 위에 선 누각, 죽서루

대관령의 동쪽을 관동이라 부른다. 그곳에서 경치 좋은 곳 여덟 곳을 골라 관동팔경이라 부른다. 고성의 청간정,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등이 대표적이다. 그 가운데 삼척의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에서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다. 죽서루 앞에 서면 건축 전문가가 아니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누각을 받치는 기둥이다.

들쑥날쑥 하나같이 똑같은 높이가 없다. 평평하지 않은 천연 암반 위에 누각을 세우면서 17개의 기둥 중 9개는 자연 암반을 기초로, 나머지는 돌로 만든 기초 위에 세워지었다. 기술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옛 선조들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그랭이질’이라 불리는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은 것이다.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며 돌을 깎아내는 대신 나무 기둥의 밑동을 잘라냈다. 돌과 나무를 접착제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 연결하였다. 그랭이질이 제대로 된 기둥 위에 널판을 얹으면 그 위로 걸어 다녀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 2층짜리 누각인데도 계단 없이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드나들도록 설계됐다. 기둥이 17개 홀수인 이유도 암벽 사이로 드나들기 편하게 한쪽은 기둥이 3개, 다른 쪽은 4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자연주의 전통 건축의 진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각에 오르면 풍경이 장쾌하다. 기둥 사이는 벽이 없어 바람이 쉼 없이 오가며 잔잔한 곡을 연주하듯 소리를 읊어댄다. 마치 자연의 합주곡을 듣는 듯하다. 오십천과 어우러져 절벽에 우뚝 솟은 죽서루에는 어떤 이들이 머물렀을까. 고려와 조선 시대 최고의 시인과 묵객이 줄줄이 찾아와 시와 그림을 나누었다. 누각 안에 걸려있는 수많은 현판이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다. 그중 조선 가사문학의 대표작 〈관동별곡〉을 지은 정철(1536~1593)의 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해 와서 내금강과 외금강, 관동팔경을 유람한 뒤 명작을 남겼다. 


진주관 죽서루 오심천 내린 물이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 가니  

차라리 한강의 목멱에 대고 싶구나 

 왕정이 유한하고 풍경이 싫지 않으니  

그윽한 회포도 많기도 하구나  

나그네의 설움도 둘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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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해변의 포토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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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탑



강원도의 겨울나기, 너와집

삼척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너와집을 볼 수 있다. 너와집은 환경에 순응한 독특한 가옥 양식으로 전나무, 소나무 등을 나뭇결대로 쪼갠 뒤 기와처럼 지붕을 이어 지은 집이다. 너와를 올리다 보면 너와와 너와 사이에 틈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것이 오히려 환기와 연기 배출은 물론이고 보온 효과도 있다고 한다. 

현재 너와집을 볼 수 있는 곳은 삼척시 도계읍 신리. 이곳에 너와집 3채가 국가민속문화재 제33호에 지정되어 있다. 도로와 인접한 곳에 너와집을 체험할 수 있도록 너와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너와집에서 특별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마을에서는 화전민이 신고 다녔던 설피 체험도 할 수 있다. 설피는 신 바닥에 덧대어 신는 것으로 이것을 신으면 눈에 빠지거나 미끄러질 염려가 없다. 

너와집 내부에는 ‘코클’과 ‘화티’가 설치되어 있다. 코클은 일종의 벽난로 같은 것으로 난방은 물론 조명으로도 사용한다. 방 모서리 바닥에서 50cm 남짓한 높이에 설치한다. 화티는 아궁이에서 땐 불을 담아두는 곳으로 코클처럼 조명과 난방 역할을 한다. 화티에 담아두는 불꽃을 ‘두둥불’이라 한다. 화력이 좋고 오래 타는 관솔을 주로 사용한다. 관솔은 송진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옹이로 화력이 세고 오래 타서 불이 귀했던 화전민들에게 절대 꺼뜨리지 말아야 하는 불씨였다. 너와집은 놀랍게도 집 안에 외양간이 있다. 날씨가 춥고 들짐승이 자주 출몰하는 산간지역에서 가축을 보호하려는 의도다. 

너와집은 얼핏 보면 매우 허술해 보인다. 하지만 겨울철 눈이 많이 올 때는 벌어진 너와의 틈을 눈이 덮음으로써 외부 공기를 차단해 훈훈하다고 한다. 군불을 피울 때 나는 연기 덕분에 눈이 서서히 녹아서 집이 무너질 염려가 없으며 연기에 훈연 된 너와는 벌레가 잘 꾀지 않아 잘 썩지 않는다. 그래서 너와는 7~8년에 한 번씩만 교체해 주어도 거뜬하다. 너와집은 미완성의 집처럼 보이지만 2% 부족한 것을 자연이 채워주는 현명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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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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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시인 묵객들이 찾아 글을 남긴 죽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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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려앉은 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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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너와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