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식민지 교육과
민족차별에 맞서 싸운
학생 독립운동가 윤창하

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식민지 교육과 민족차별에 맞서 싸운
학생 독립운동가 윤창하

윤창하(尹敞夏)
1908. 4. 9. ~ 1984. 12. 29.
전라남도 해남
건국훈장 독립장(1963)
식민지 교육에 맞서 동맹휴학에 참가하다
윤창하는 1908년 4월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났다. 현산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26년 광주고등보통학교(이하 광주고보)에 입학하였다. 그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8년, 항일선언서를 작성하여 배포한 광주고보 5학년생 이경채가 일경에 붙잡혀 퇴학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반발한 광주고보 학생들은 ‘조선인 본위의 교육 실현’, ‘민족 차별 교사 거부’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에 돌입하였다. 이때 윤창하도 3학년 학생들과 동맹휴학에 참여해 식민지 반대 투쟁에 앞장섰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사건 공판 보도 기사(『동아일보』 1930. 2. 20. 동아일보사 제공)
①광주지방법원 1층 법정
②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400여 명을 수용한 무덕전
③광주고등보통학교 전경
④현재 170여 학생이 수용되어 있는 광주형무소

윤창하 애국지사증(1963)
민족 차별에 맞서 학생 독립운동을 이끌다
일제에 차별받는 민족의 현실을 탐구하고 독립운동의 방안을 고민하던 윤창하는 학생들과 독서모임을 조직하였다. 1929년 6월 여러 학교의 독서모임이 통합되어 독서회 중앙부가 결성되자 회계사무를 담당하는 재정부 위원에 선임되었다. 또한 광주고보 독서회의 조사선전부 위원 겸 소그룹 대표를 맡아 사회과학 연구 모임을 이끌었다. 그러던 중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한·일 학생 충돌을 계기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는 3·1운동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어 대규모로 전개된 대중운동이었다. 당시 독서회의 간부로 활동하며 시위에 참여한 윤창하는 일경에 붙잡힌 후 2년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84년 7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정부는 윤창하의 공훈을 기려 1963년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윤창하와 부인(19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