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숨결
원도심, 바다, 야경을 아우르다
창원의 재발견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원도심, 바다, 야경을 아우르다
창원의 재발견
2010년 창원, 마산, 진해가 통합해 창원시가 출범했다. 창원은 의창구, 성산구로 나뉘었고, 마산은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로, 진해는 진해구로 이름표를 고쳐 달았다. 통합 창원시 내에 5개의 구가 생긴 셈이다. 옛 마산의 원도심, 해안 산책로에서 만나는 바다, 도심 속 공원의 야경이 어우러진 창원을 소개한다.


옛 모습 그대로 창동예술촌 골목길
창원시 통합, 8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산 사람들은 옛 마산을 그리워한다. 마산 토박이들이 특히 그렇다. 마산이 역사와 의미가 남달리 깊은 곳이라는 증거다. 마산은 19세기 말에 개항장이었으며, 1960~1970년대에는 3·15의거와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민주화운동의 발상지였다. 1970~1980년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출자유지역이 조성돼 산업화를 견인하는 공업도시였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애증이 교차하다 보니 쉽게 그 이름을 놔버리지 못했으리라.
왜 그들은 마산을 그렇게도 붙잡고 싶을까? 궁금한 생각에 옛 마산의 향수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는 거리를 찾았다. 구마산이라 불리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조계지가 있던 신마산 지역(지금의 반월, 월영, 중앙동 일대)과 반대되는 곳으로 지금의 오동동, 창동, 노산동 지역이다. 도시는 생성-성장-팽창-쇠락한다. 또 쇠락기를 맞은 도시는 다른 곳으로 확장해가는 속성이 있다. 그런 탓에 원도심은 옛 영화를 간직한 채 잊히기 마련이다. 구마산의 중심이었던 창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창동은 조선시대 조창이 있던 곳이다. 관원과 상인이 오가는 상권의 노른자위였다. 그 이름이 오늘날 창동이 됐다. 골목마다 풍성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오랜 역사에 기인한다. 쇠락의 기운이 한창일 때 창동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때는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2011년 3월이다. 창원시가 창동의 빈 점포 50곳을 임차해 문화예술인에게 무상으로 임대해주고 창동예술촌을 형성한 것이다.
창동예술촌 여행은 상상길에서 시작한다. 불종거리에서 부림시장까지 155m 거리에는 외국인 2만 3천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보도블록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왼쪽 골목길 입구에 ‘250년 길’이라 적힌 이정표가 눈에 띈다. 창동에 조창이 들어선 것을 기념한 것이다. 반대편에는 조각가 문신의 작품에서 모티브한 붉은색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길 가운데 아고라광장과 창동예술아트센터가 보인다.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지역 작가들의 전시회가 기획된다. 창동예술골목은 1950~1980년대를 추억하는 마산예술흔적골목, 작은 공방들과 옷가게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에꼴드창동골목, 공예 거리로 꾸며진 문신예술골목으로 나뉜다. 네댓 사람이 함께 걸으면 비좁을 것 같은 골목이지만 아기자기한 공방과 갤러리,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창동을 지켜온 저력 있는 가게들이 손님을 반긴다. 게다가 골목마다 개성 넘치는 미술작품들이 설치돼 있어 갤러리를 걷는 듯하다. 특히 문신예술골목을 지나 3·15가족나무골목으로 들어서면 형형색색 화사한 화분들이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한다.
창동에 왔다면 들러볼 맛집이 있다. 부림시장의 떡볶이, 진한 멸치국물 맛이 일품인 버들국수, 겨자에 김밥을 찍어 먹는 창동분식, 옥수수식빵이 맛있는 코아양과, 빠다빵이 유명한 고려당이 그곳이다. 마산의 역사와 지역민들의 삶이 서린 음식골목도 있다. 지친 서민들이 하루를 마감하며 술잔을 주고받았던 통술골목과 족발골목, 마산의 대표 음식인 아귀찜골목이다. 창동은 옛 마산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듯 여행자에게 말을 걸어온다. 문화예술로 거듭난 창동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섬의 정취가 느껴지는 저도 비치로드

콰이강의 다리 건너면 섬이 잇댄다, 저도 비치로드
창동예술촌이 옛 마산의 역사와 예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면 그림 같은 자연풍광을 만날 수 있는 곳도 있다.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위치한 ‘저도(猪島)’라 불리는 섬이다. ‘돼지가 누워있는 형상’을 닮아 그리 부른다.
저도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은 저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 때문이다. 다리는 모두 2개다. 아래에 붉은색 다리는 1987년 완공된 것으로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온 다리를 닮았다 하여 ‘콰이강의 다리’로 불린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다리 초입에 하트모양의 조형물과 포토존이 있는 이유다. 두 번째 다리는 콰이강의 다리가 보행전용으로 사용되자, 2004년에 완공한 것이다. 괭이갈매기를 형상화한 아치곡선이 특징이다. 저도 주민들과 창원시는 콰이강의 다리 상판의 콘크리트 바닥을 걷어내고 특수 제작된 강화유리를 설치한 뒤 지난해 3월 ‘저도 콰이강의 다리 스카이워크’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야간에는 LED조명을 밝혀 은하수를 걷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그 결과 개장 후 약 1년 2개월 만에 100만 명이 찾는 창원 제일의 명소가 됐다.
유리보호용 덧신을 신고 다리를 건너본다. 13.5m 아래에 바닷물이 일렁인다. 때마침 어선이 바닷물을 가르며 다리 밑을 지난다. 흔치 않은 특별한 볼거리에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린다. 다리를 건너 섬에 발을 디디자 어촌마을 특유의 정취가 느껴진다. 비치로드는 저도 해안선과 등산로를 잇는 6.5km둘레길이다. 코스는 가장 짧은 1코스(3.7km, 1시간 30분), 해안데크로드 전 구간을 걷는 2코스(4.7km, 2시간), 바다와 산길을 잇는 3코스(6.5km, 3시간)로 나뉜다. 숲길은 여느 트레킹 코스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만 숲길 여기저기 벤치가 놓여 있어 쉬어가기 좋고, 숲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소리와 바닷소리, 갈매기소리가 어우러지는 게 특징이다. 그렇다고 실망하긴 이르다. 비치로드의 진짜 매력은 제1전망대 이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숲길에서 느낄 수 없었던 장쾌한 풍광과 남해 바다를 점점이 수놓고 있는 아련한 섬들까지. 안내 팻말에 적힌 대로 거제, 고성은 물론이고 낯선 이름의 섬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2전망대를 지나 제3전망대부터는 해안을 따라 걷는 데크로드 구간이다. 탁 트인 바다, 흰색 바둑돌처럼 촘촘히 뜬 굴양식 부표, 간간히 오가는 어선들이 저도 비치로드의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옛 마산이 역사와 문화의 결정판이라면 옛 창원은 산업화, 계획도시의 표본이다. 시원하게 뚫린 창원대로를 중심으로 대기업 공장이 비행기 격납고처럼 널찍하게 자리하고, 창원시청 로터리 주변 번화가는 서울 강남도 울고 갈 판이다. 게다가 경남 최초 시내면세점인 대동면세점과 100여 개의 브랜드와 호텔, 대형마트 등 편의시설이 입점해 있는 시티세븐까지 있으니 도시문화를 향유하고 싶은 여행자들에게는 꿀잼 가득한 곳이다.
현대적인 도심에 쉼터로 자리매김한 곳이 용지호수공원이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 저녁에도 연인들의 데이트 발걸음이 이어진다. 공원을 즐기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호수를 따라 1km 남짓한 산책로를 걷는다. 곳곳에 벤치가 있어 쉬어가기에도 그만이다. 더위를 피하고 싶다면 산책로를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가 보자. 발을 씻을 수 있는 편의시설이 완비된 발지압장과 해병대 상남훈련대 기념탑 주변에는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숲이 있다. 그늘진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망중한을 즐겨도 좋고, 조각공원에 버금가는 수준 높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잔디광장을 거닐어도 괜찮다.
둘째, 호수 자체를 즐긴다. 창원의 명물 무빙보트를 타고 더위와 시름을 잊는 것이다. 무빙보트는 누구나 간단한 설명만으로 조작이 가능한 8인승 전기 충전식 보트다. 탑승객 스스로 배를 운전할 수 있어 연인들은 단둘이 보트에 올라 프러포즈를 하는 등 이벤트 공간으로도 활용한다. 친구나 가족모임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은 미리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 간다.
셋째, 낮보다 밤을 즐긴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다면 더더욱 용지호수공원을 찾아볼 일이다. 물·빛·음악이 선보이는 환상적인 분수 쇼가 펼쳐지고 야간경관조명은 열대야를 잠재운다. LED조명을 밝힌 무빙보트를 타거나 환상적인 슈퍼문을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남기는 것도 잊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