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숨은 역사

마음의 고향, 봄이 오는 진천을 찾아서
충청북도 진천

마음의 고향, 봄이 오는 진천을 찾아서<BR />충청북도 진천

글·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마음의 고향, 봄이 오는 진천을 찾아서
충청북도 진천


어느새 봄기운이 스멀스멀 퍼지고 있는 이즘,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가 새싹들의 반란으로 화들짝 깨어나고 있다. 충북 진천은 성큼 다가온 새봄을 만끽하기 좋은 고장이다. 일찍이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해서 사람이 살아가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알려져 왔다. 지금도 진천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한데, ‘재해를 모르는 살기 좋은 고을’이라느니, ‘태고 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깨끗한 땅’이라는 말들이 자주 오르내리는 걸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백곡호를 따라가며 보라

중부고속도로 진천 나들목에서 진천 읍내를 거쳐 성환 방면(34번 도로)으로 5분쯤 가면 종 모양으로 지어진 진천종박물관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종박물관으로 종의 탄생과 의미·흥미로운 설화·종의 역사 등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전시실로 들어가면 현존하는 범종 가운데 가장 큰 성덕대왕신종과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을 비롯해 모양과 제작기법이 제각각인 국내외 각종 종들이 펼쳐져 있는데, 문양 탁본과 음향 감상, 타종 등 종으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박물관과 관람 후에는 경치가 좋아서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풍광 수려한 백곡호를 끼고 달린다. 안성 방면 백곡면 소재지로 들어서니 가톨릭 박해·순교지인 배티성지가 기다리고 있다. 천주교 박해 당시 교인들이 이곳에 몸을 피했는데, 최양업 신부(세례명 토마스)가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 조선교구신학교가 둥지를 튼 유서 깊은 현장이다. 경내에는 최 신부를 기리는 기념관(성당)과 교우촌, 순교자 무덤 등이 남아 있어 연중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온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고요함과 경건함이 흐르는 순례길(오솔길)을 따라 걸어봄직하다.


진천종박물관: 충북 진천군 진천읍 백곡로 1504-12 / 043-539-3627

배티성지: 충북 진천군 백곡면 배티로 663-13 / 043-533-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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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종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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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티성지



천 년의 전설이 담긴 돌다리

이번엔 백곡면에서 문백면으로 넘어간다. 구곡리, 일명 굴티마을에 들어서면 붉은 돌로 만들어진 독특한 다리 하나가 나온다. 여기 사람들은 이 다리를 ‘농다리’라 부른다. 진천 들판을 가로지르는 미호천(渼湖川)은 구곡리를 거치면서 이른바 상산8경(常山八景)이란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농다리다. 온갖 자연재해를 거뜬히 이겨내고 오늘도 그 견고함을 자랑하는 농다리는 깊은 세월의 값진 흔적이 아닐 수 없다. 만든 지 1000년(14세기 고려 말)이 넘었다는 이 ‘신비의 다리’는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돌다리다. 암돌과 숫돌을 엇갈리게 끼워 맞춘 모양이 꼭 지네 같아 ‘지네다리’란 별명도 갖고 있다. 원래는 100m(스물여덟 칸) 정도 되는 길이였으나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깎이고 패여 지금은 93m(스물 네 칸) 정도만 남아 있다. 돌과 돌이 서로 잡아당기도록 정교하게 쌓고, 작은 돌로 세운 교각은 토목공학적으로 매우 우수하다는 평을 얻었다.

이 농다리에는 별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고려 고종 때 임행 장군이 구산동(현재 구곡리) 앞 세금천(洗錦川)에서 눈보라가 치는 겨울아침에 세수를 하는데 한 젊은 부인이 친정아버님의 부고를 듣고 차가운 개울을 건너려고 하자, 부인의 효심에 감탄하여 용마를 타고 하루아침에 이 다리를 완성했다는 내용이다. 이 다리는 그 후로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큰 소리로 울었고, 특히 임진왜란과 한일 강제병탄 당시엔 며칠간을 울어 마을 사람들이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농다리를 건너 야트막한 산을 하나 넘어가면 푸른 물을 담은 초평저수지가 나타난다. 진천에서 가장 넓은 저수지라는 이곳은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에 둘러싸여 있다. 저수지 안에는 수초섬, 큰섬 등 작은 섬들이 떠 있어 가만가만 그것들을 감상하기에 좋다. 농다리에서 시작해 초평호를 따라 구름다리까지 이어지는 1.7㎞의 트래킹코스(수변탐방로)도 걸어볼 만하다.


진천 농다리: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6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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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진천 농다리

아래 초평호



역사를 바꾼 김유신을 만나다

진천 읍내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삼국통일이란 위업을 이룩한 흥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흔적이 남아있다. 읍내 군청 앞 삼거리에서 천안 쪽으로 가다보면 장군의 영정을 모신 길상사가 나오고, 이어 4km쯤 더 들어가면 그의 탄생지가 나온다. 흥무대왕은 김유신이 죽어서 받은 시호다. 신라 진평왕 17년(595) 진천 태수였던 김서현과 어머니 만명 부인 사이에 태어난 김유신 장군은 이곳에서 나고 자라 화랑이 됐고, 낭비성 싸움에 출전하는 등 신라군의 사기를 북돋웠다.

장군 생가로 가기 전, 길상사부터 들러보는 게 순서일 것 같다. 길상사에 들어서면 먼저 오른쪽 끝으로 김유신 장군에게 올리는 제실(祭室)이 보인다. 제실과 사적비를 지나면 홍살문을 통과해 외삼문과 내삼문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내삼문은 흥무전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 흥무전에는 장우성이 그린 김유신 장군 영정과 흥무왕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스치듯 감상하기보다 구조물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 역사를 찬찬히 둘러볼 일이다.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상계리 계양마을 뒷산은 장군의 태(胎)가 묻혔다 해서 태령산(胎靈山)이라 불린다. 김유신 장군은 이곳에서 태어나 훗날 삼국을 통일했는데, 일설에는 태령산에 태를 묻을 때 용이 내려와 태를 가지고 승천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태령산은 ‘태룡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생가 터에는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 유허비가 있고 김유신 장군이 소년 시절 말을 달리며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치마대(馳馬臺, 치마바위)가 있다. 산길을 따라 태령산 꼭대기에 오르면 태실을 볼 수 있다. 태실은 아기가 태어날 때 나온 태를 따로 보관한 시설을 말한다. 김유신 장군 태실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고 봉토를 마련하였으며 태령산 꼭대기를 따라 돌담을 산성처럼 쌓아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였다.


진천 길상사: 충북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411-38

김유신 탄생지: 충북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170-4 / 043-539-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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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진천 길상사

아래 김유신 탄생지



예사롭지 않은 절집과 독립운동가의 생가

김유신 장군 탄생지에서 길을 따라 계속 가면 그 끝에 보탑사가 나온다. 보탑사를 에두른 앞산은 그 모양새가 마치 연꽃 같아 산 이름도 보련산이란다. 보탑사는 쇠못 하나 쓰지 않은 순수한 목탑으로, 그 규모나 가치 면에서 많은 얘깃거리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고건축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강원도 산 붉은 소나무 8t 트럭 150대 분량의 목재를 전통기법대로 짜맞추어 올렸고, 상륜부는 심을 박아 힘을 지탱하게 했으며, 외부는 5mm의 순동으로 제작했는데 여기에 들어간 구리만도 4t이 넘었다고 한다. 또한 내부는 1층에서 3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게 배려하였다.

한편 보탑사 방문을 마치고 읍내로 돌아 나오다 문백면 봉죽리로 접어들면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정송강사에 닿게 된다. 이정표가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송강 정철은 고산 윤선도와 함께 우리 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강원·전라·함경도 관찰사를 지내면서 ‘관동별곡’·‘사미인곡’·‘성산별곡’·‘속미인곡’ 등 수없이 많은 불후의 명작을 낳았다.

진천은 또한 독립운동가 이상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읍내에서 가까운 산직마을에 가면 그의 생가가 있는데,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에 흙벽돌과 진흙으로 지은 집이다. 이시영·이규형 등과 함께 신학문을 공부했던 이상설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알리고자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갔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1917년 연해주에서 생애를 마칠 때까지도 조국의 앞날을 위해 헌신했다. 생가에 있는 그의 동상은 젊었을 적 모습 그대로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탑사: 충북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641  / 043-533-0206

정송강사: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송강로 523 / 043-532-0878

이상설 생가: 충북 진천군 진천읍 이상설안길 10 승열사 / 043-539-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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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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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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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상설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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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변화를 꿋꿋이 견뎌낸 술도가

진천땅을 돌아다니다 보면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인 건축물을 여럿 만날 수 있다. 1930년에 건립된 덕산양조장, 세왕주조도 그 중 하나다. 양조장 건물로는 유일하게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단층의 함석지붕 목조건축물이다. 백두산에서 전나무를 가져와 지었다는데, 과연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의 굴레에도 원형을 잃지 않고 있다. 자연을 최대한 활용한 건물로 내부로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도록 통풍구를 따로 마련했다. 건물 앞에는 측백나무를 심어 해충을 방지하고 나무로 된 구조물이 썩는 것을 막고자 했다. 3대째 가업을 이어 전통주를 생산하고 있는데, 술도가에 들어가면 들큼한 누룩 냄새와 술 익는 냄새가 진동한다.


세왕주조: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초금로 712 / 043-536-3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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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양조장

           

진천은 어딘지 모르게 마치 고향을 찾은 듯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처음 발 딛는 곳이라고 해서 당황할 필요는 없다. 발길 움직이는 대로, 멈추는 대로 둘러보면 될 일이다. 이곳에서는 찬찬히 눈을 녹이는 햇살처럼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니까.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겸 수필가. 현재 『월간 비타민』, 『건설경제신문』, 『서울우유』, 『냉동공조신문』에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여행 저서로는 『여름 이야기』, 『7가지 테마가 있는 여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