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답을 찾다

우리 민족이 살길 ‘정직’

우리 민족이 살길 ‘정직’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우리 민족이 살길 ‘정직’


도산 안창호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강남 금싸라기 땅 한가운데 자리 잡은 도산공원을 떠올리면 그의 업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도산공원에서도 특히 그곳에 세워진 안창호 기념비에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산 안창호는 일제의 침략에서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60평생을 구국 운동에 바친 위대한 애국자, 한국 민족을 인류의 모범이 되는 최고의 민족으로 완성하기 위하여 부단한 자아 혁신과 국민의 품격 향상을 힘쓴 민중 교화의 교육자, 무실역생과 인격 혁명과 대공주의의 사상으로 민족의 지표와 역사의 진로를 밝힌 탁월한 사상가, 이상촌 건립과 사회개혁과 산업 진흥과 교육 건설로 백년대계의 경륜을 보여준 훌륭한 선각자, 진실과 사랑의 실천으로 위대한 인격을 갈고닦아 국민의 사표가 된 뛰어난 지도자, 그는 겨레의 등불이요, 이 나라의 자랑이다.”


민족과 함께한 59년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 신식학문에 눈을 뜨고 상경해 기독교도가 됨 ▲1897년 독립협회 가입 ▲1899년 고향인 평안남도 강서(江西)에 점진학교를 세우고 황무지 개척사업에 투신 ▲1902년 신학문을 받아들이고자 미국행, 노동을 하면서 초등 과정부터 공부 ▲한일 강제병탄 소식을 듣고 귀국, 이후 항일비밀결사단체 신민회 조직 및 평양에 대성학교 설립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투옥, 이후 미국 망명 ▲1913년 흥사단 조직 ▲3·1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내무국장·국무총리대리·노동총장 역임 ▲윤봉길 의거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 활동을 이유로 투옥과 석방을 반복

안창호의 인생은 그야말로 한평생 오로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온몸을 투신했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가 독립을 위해 외세와 싸웠다는 것 외에도 특히 눈여겨봐야 할 활동이 있다. 바로 교육을 통한 우리 민족의 실력 향상에 큰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소위 말하는 ‘실력양성론’이다. 안창호는 이 때문에 임시정부 내에 있던 급진 무장투쟁파와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실력양성론은 실력을 키워 우리 민족을 개조하자는 ‘민족개조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동포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살아생전에 할 일이 있다면 무슨 일이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저라면 한 마디로 말하겠습니다. 즉, 사람이라면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문으로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고전 예기 대학 편에 나오는 말인데, 사람은 나날이 하루하루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으로 우리 민족도 이 모양으로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 새로워진다는 말을 ‘개조’라는 말로 바꾸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안창호가 임시정부 총리대리로 선출됐을 때 행한 연설 중 일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이 민족개조를 위해 그가 제일 첫머리에 내세웠던 실천방법이 바로 ‘정직’이란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살길은 하나다
안창호가 민족교육 사업에 뜻을 두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한 가지가 바로 ‘정직’이었다. “생도의 가장 큰 죄는 거짓말, 속이는 일이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그는 우리 민족이 쇠퇴해 굴욕적인 한일 강제병탄을 당한 이유를 민족의 잘못된 습성 때문이라 말했고, 이 습성을 딱 두 가지로 정리했다. ‘거짓말’, ‘거짓행동’. 거짓말이 횡행하다 보면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고, 믿지 못하면 단결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일본에게 병탄되는 치욕을 겪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경험에서 나온 뼈저린 교훈이었다. 안창호는 갑신정변 이래로 만민공동회, 독립협회 등 여러 독립운동결사체를 조직했지만 3년 이상 버틴 조직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원인을 거짓에서 찾았다. 이는 빈말이나 허울 좋은 구호가 아니다. 안창호 필생의 사업이었던 흥사단 단원의 선발기준 첫 번째는 ‘거짓 없는 사람’이었다(나머지 하나는 조화로운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고색창연한 교훈이지만,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자신 있게 스스로를 정직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신문 사회면이나 9시 뉴스를 보면 나오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을 보자. 남을 속이지 않고, 스스로에게 정직했다면 아마 신문과 방송은 망했을 것이다. 수많은 사건사고의 시작은 ‘거짓’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 거짓은 우리 사회를 점차 오염시켰고, 정직한 사람들조차도 ‘정직하게 사는 게 멍청하게 사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스스로에게 정직한 태도를 버리는 일을 ‘현실과의 타협’, ‘영리하게 사는 법’이라며 합리화하게 되었다. 우리가 얼마나 정직하지 못했는지는 ‘김영란법’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나 거짓이 횡행했으면, 공직자들의 밥 먹는 것까지 국가가 나서서 단속하려 할까? 안창호가 100여 년 전 우리 민족의 살길이라며 설파한 ‘정직’이란 한 단어. 이 한 단어를 지금까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지금 우리에게는 거창한 주장이나 신념, 윤리 도덕 따위는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정직’ 그 한 글자의 무게를 곱씹어 본다면 말이다.

           


           

이성주

시나리오 작가 겸 역사칼럼니스트.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조선의 민낯』, 『왕들의 부부싸움』과 같은 역사서를 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제정치와 관련된 연구 및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1, 2, 3권을 출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