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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으로 최대 만족을 추구하는 삶

최소한으로 최대 만족을 추구하는 삶

글 장근영 심리학자 


최소한으로 최대 만족을 추구하는 삶


보다 풍족하고 보다 화려하게 살아가려는 삶의 풍조는 지났다. 2017년 한 해를 관통할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다. 버리고 비움으로써 최소한의 요소로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은 사회 전방위적으로 불고 있는 트렌드다.



오늘을 사느냐 내일을 준비하느냐
미니멀리즘은 사실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원시인 시절의 인류는 모두 유목민이었고, 유목민은 미니멀리스트일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없었기에 그날 구한 음식은 며칠 이내로 전부 먹어치워야 했고, 내가 다 먹을 수 없다면 주변 사람과 나누는 것이 당연했다. 음식만이 아니라 옷이나 도구 같은 생활에 필요한 물품도 나눴다. 동료에게 나누어준 것들은 언젠가 다시 나에게 보답으로 돌아올 것이니 ‘인적 저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살아가는 유목민들은 세간이 조금 늘어나기는 했어도 미니멀리즘의 삶의 양식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천막 하나에 들어갈 수 있는 물건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인류가 물질에 집착을 보이기 시작한 건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유목 인류는 당장 내일이나 다음 달을 바라봤지만, 농경 인류는 내년, 내후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농경 인류의 전망은 점차 후손이 살아갈 미래까지 확장되었다. 인류는 한 해 동안 먹고 남을 만큼의 곡물을 수확해놓고서도 만족하지 못했고, 몇 년간의 식량이 창고에 쌓여있어도 불안해졌다. 높고 단단한 성곽을 건축하기 시작한 건 그 불안감을 달래고 쌓아놓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미래를 내다보게 되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특히 화폐가 만들어지면서 인류의 저장욕구는 끝없이 팽창했고, 희생할 현재의 비중은 더욱 무거워졌다. 오늘날 현대인이 안고 있는 불행의 근원이 만들어진 시점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고 일갈하는 현인들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삶의 본질은 선한 마음이며 재산·명성·외모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봤다. 그는 집을 버리고 길거리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삶을 살며 행복을 즐겼다. 동양의 현인들도 행복과 평화의 본질은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무소유의 삶’이라고 오래 전부터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세상은 현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추운 겨울을 대비해 오늘을 희생하며 최대한 양식을 쌓아놓은 맥시멀리스트(Maximalist) 개미는 풍족한 겨울을 맞이하고, 현재에 충실하며 당장의 행복을 추구한 미니멀리스트 베짱이는 춥고 배고픈 겨울을 보내야 했다.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가르친 건, 미래를 담보로 잡는 것이 지금 현재의 ‘개미’들을 통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본질과 핵심에 집중하다
하루하루 고생해가며 돈을 벌어 미래를 위한 무언가를 축적해놓는 삶을 당연하게 여겨왔던 사람들이 왜 지금 와서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돌아보는 걸까?
먼저 미니멀리즘이란 개념 자체는 물질적 풍요와 동시에 인류를 멸망시킬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던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미니멀리즘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일본에서 기원한다. 당시 9.0규모의 지진은 핵발전소 폭발과 함께 지진해일까지 불러와 도호쿠 지방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재물들은 층격에 부서져 날카로운 파편으로 변했고, 이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인간 따위의 미래 준비나 계획은 자연의 힘 앞에서 그저 부질없을 뿐이라는 사실에 대해 통렬한 자각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앞으로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해서 현재를 즐겁게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소유하자는 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내핍이나 절약과는 전혀 다르다. 최초의 미니멀리스트 중 한 명인 디오게네스가 쾌락주의자였음을 잊지 마시라. 미니멀리즘은 핵심과 본질에 집중하려는 태도다. 삶에서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데 필요한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는 비우려는 생활방식인 것처럼, 업무에서의 미니멀리즘은 불필요한 잡일을 전부 제거하고 핵심 과제에 집중하려는 직장 문화다. 좋은 글이나 말의 기준이 ‘더 이상 버릴 군더더기가 없음’인 것도 결국 미니멀리즘이다.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할 것을 선택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던 스티브 잡스의 말은 미니멀리즘적 태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미니멀리즘의 유행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꽤 의미 있게 다가온다. 무언가의 ‘실천’이 곧 그것을 위한 무언가의 ‘구입’이라고 믿는 소비 문화. 쉽게 말해, 유목민의 삶을 지향하고자 유행한 캠핑을 캠핑장비 수집병으로 변질시킨 소위 ‘장비병’의 나라, 기획안 속에 담긴 아이디어보다 그 문서의 글자체나 편집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이 ‘비효율’의 나라에서 핵심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니까. 미니멀리즘은 삶에서 중요한 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고,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위한 희생보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이 가치 있다는 진리를 되새기게 만든다.

           


          

장근영

심리학자 겸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책연구소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활동하며 대학에선 매체심리학?발달심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 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