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100년의 기억과 미래의 100년

100년의 기억과 미래의 100년
    



글 이계형 국민대학교 특임교수



100년의 기억과 미래의 100년

  



1945년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았지만, 독립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미완으로 남은 사건, 해결되지 못한문제,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은 독립운동사를 과거에 머문 역사가 아닌 현재의 문제로 다루며, 오늘도 신문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독립운동 이슈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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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3·1독립선언서 (오른쪽)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 기념



독립운동사에서 특별한 2019년

2019년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뜻깊지 않은 해가 없겠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르다.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1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김원봉이 중국 길림에 의열단을 조직한 날도 100년이 되었다. 안중근 의거와 이재명 의거는 110주년을, 광주학생운동은 90주년을 맞이했다. 이은찬·이인영 의병장 순국 110주년,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이었던 양한묵 선생이 떠난 지 100주년이 되었다. 만주 독립군 이의준·이수흥·유택수 선생은 90주년, 남궁억·문일평·신흥식·오영선 선생 등은 60주년, 백범김구 선생이 서거한 지도 벌써 70주년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다. 그래도 이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 것이다. 둘은 서로에게 원인이자 결과로서, 하나로 얽혀있기에 불가분하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하다

3·1운동 독립선언문은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독립선언서의 전문을 알지 못하더라도 한 번쯤 들어봄직한 구절이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하였으며, 억압받던 한국인들은 자주민이 되었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선언한다는 내용이다. 그 결과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했다. 같은 해 9월 출범한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임시헌법 전문에 “아(我) 대한인민은 아국(我國)이 독립국임과 아민족(我民族)이 자유민임을 선언하였도다”라는 구절을 넣었다. 이는 몇 가지 부분에서 의미가 크다.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한 주체가 달라졌다. 민족대표 33인을 가리켰던 좁은 의미의 ‘오등’이 5천여 년 동안 이 땅에 살아온 후손으로서의 ‘대한인민’으로 확대되었다. 민족대표 33인은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와 독립통고서에 서명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3·1운동을 기획·조직함은 물론, 운동이 점화되는 데 기폭제 역할을했다. 그러나 실제 운동을 이끈 것은 이 땅의 민중이었다. 10년 동안 일제의 폭압 정치를 몸소 느끼고 고통받아 온 민중은 진정한 독립을 갈망하였고, 이에 일제의 총탄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독립만세’를 외칠수 있었다. 그러므로 대한인민은 독립 선언의 주체라 할만하다. 그래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바꾸고 ‘민주공화제’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시제가 다르다는 점이다. 독립선언서에는 ‘선언한다’는 현재형이 쓰였지만 임시헌법에는 ‘선언하였도다’라는 과거형이 등장한다. 3·1운동에서 ‘독립’을 선언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정부가 필요하며, 그것이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논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1948년 헌법 전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함에…(후략)…”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1987년 10월 지금의 헌법 전문에도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관한 언급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중략)…을 계승하고”


대한민국의 미래 100년을 위하여

그럼에도 2008년 이후 지난 10여 년간 대한민국은 ‘광복절’과 ‘건국절’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해방을 맞이한 1945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둘 사이 3년의 간극이 있지만 공교롭게도 일자가 8월 15일로 같아 생긴 일이다. 이는 이념 논쟁으로 비화하여 1919년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두고 다투기도 했다.

20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기념관을 만들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2015년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지만 그뿐이었다. 지난 정부가 기념관 건립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때를 놓치고 말았다.

2017년 7월 정권이 바뀌고 2018년 1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가 정식 출범했다. 지난해 말에는 서대문형무소, 독립문 등 근·현대유적이 밀집한 부지에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계획이 승인됐다. 2019년 100주년을 맞추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매우 고무적인 성과다. 기념관 건립은 2021년 8월 완료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기원하며, 이를 통해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 3·1운동의 진정한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미래100년을 내다봤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또한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