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의 추억

호떡집 화재에 담긴 시대의 아픔

호떡집 화재에 담긴 시대의 아픔

글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호떡집 화재에 담긴 시대의 아픔

 


호들갑을 떨며 시끄럽게 소란 피우는 사람을 면박 줄 때 흔히 “호떡집에 불났냐?”라고 말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꽤 인정머리 없는 표현이다.

호떡집이든 무엇이든 집에 불이 나면 함께 걱정하고 안타까워해 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호떡집의 화재에서만큼은 연민보다 희화화된 빈정거림이 앞선다. 왜 그럴까?


 

상류층의 별미이자 귀한 음식이었던 호떡

‘호떡집에 불났다’라는 표현이 생겨난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배경을 추적해 보면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은 물론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아픈 시대상까지 엿볼 수 있다.

호떡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중국에서 전해진 음식이다. 일제강점기 화교들이 만들어 팔면서 널리 퍼졌다. 우리나라에서 호떡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부터다. 지금의 서울시청에 해당하는 경성부 재무국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1924년 경성에는 설렁탕집이 100여 곳이었던 반면 호떡집은 150곳을 웃돌았다. 호떡이 얼마나 유행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호떡의 인기 요인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추측해볼 수 있다. 호떡은 본래 중국 음식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서역, 흉노의 음식이다. 그 때문에 이름도 서역을 뜻하는 터럭 호(胡)자를 써서 호떡이다. 외국에서 전해진 귀한 음식이었을 뿐 아니라 귀한 밀가루로 만들었으니 한나라와 당나라에서도 호떡은 상류층의 별미이자 귀한 식품이었을 것이다. 청나라 때의 문헌인 <이십사사 통속연의(二十四史 通俗演義)>에 따르면 당 현종과 양귀비도 시장에서 호떡을 사다 즐겨 먹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중기 이후 여러 문헌에서 호떡(胡餠)과 관련된 대목을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세종실록에는 대마도주에게 선물로 호떡으로 추정되는 음식인 소병(燒餠)을 두 상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왕족과 귀족의 별미였으니, 1920년대 화교가 호떡을 만들어 팔자 인기는 분명 폭발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호떡을 두고 왜 ‘호떡집에 불났냐?’라는 표현이 생겨났을까?

 

호떡집 화재와 민족 갈등

1920년대 발간된 신문을 살펴보면 호떡집의 화재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호떡은 화덕에서 만드니 기본적으로 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호떡집 수도 설렁탕집보다 두 배 가까이 되었으니 화재 발생빈도도 그만큼 높았다. 즉, 당시 신문에 호떡집 화재 기사가 많았던 것이 ‘호떡집에 불났냐?’라는 말이 생기게 된 배경이자 표면적인 이유가 된 셈이다. 그러나 점포에 불이 나면 누구라도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 속에 빈정거림이 들어간 이유는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중국말을 저속하게 흉내 낼 때 “솰라솰라” 떠든다고 하며 시끄럽다고 말한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후구리 뚜구리” 시끄럽다고 한다. 의미가 통하지 않는 언어는 상대방에게 소음일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시끄럽게 들렸을 호떡집 주인의 중국말이 생활터전이 불타는 상황에서는 또 얼마나 소란스러웠을까? 불을 끄려 악을 쓰며 외쳤겠지만 별 도움은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 무렵 호떡집이 우리에게는 썩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신문을 보면 호떡집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가 많은데, 호떡집에서 아편을 팔다 적발됐다거나 호떡을 미끼로 인신매매를 했다는 등의 내용이 대다수를 이룬다.(동아일보/1929.07.11./호떡장사는 부업, 아편밀수가 주업) 남의 나라에 와서 일자리를 차지하고 돈 벌어 가며 악행(?)을 일삼는 ‘왕서방’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갈등이 빚어낸 결과가 바로 만주의 한인 폭행 사건인 만보산사건과 1927년과 1931년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조선 내 화교 배척사건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면에는 만주에 세력을 형성한 중국과 조선의 반일 공동전선을 분열시키려는 일제의 치밀한 음모가 숨어있었다. 이를 통해 일제는 만주를 대륙침탈의 발판으로 삼고 국제적으로는 자신들의 침략 명분을 세우고자 하였다.

 

겨울철 간식으로 으뜸인 호떡, 그리고 쉽게 뱉는 “호떡집에 불났냐?”라는 말 속에는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절의 흔적이 묻어 있다. 일상 속 쉽게 지나치는 음식 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다시금 새겨보아야 하겠다.

만보산사건: 1931년 7월 중국 지린성에 위치한 만보산 지역에서 이퉁강 수로 개척을 두고 이주한인 농민과 중국 농민 사이에 일어났던 충돌 사건. 이후 인천을 필두로 경성·원산·평양 등에서 중국인 배척운동이 일어났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1984년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해 2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특파원 활동, 출장, 연수 등으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 머물렀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를 수집해온 결과, 음식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주요 저서로는 <음식잡학사전>, <신의 선물 밥>,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