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한국독립운동의
숨은 조력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한
미국인 선교사

한국독립운동의<BR />숨은 조력자!<BR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한<BR />미국인 선교사

 

글 학예실

 

한국독립운동의 숨은 조력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한 미국인 선교사

 

조지 애쉬모어 피치
George Ashmore Fitch, 費吾生
1883.01.23. ~ 1979.01.20.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광복회와 공동으로 조지 애쉬모어 피치를 2018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애쉬모어는 1920년 한인구제회 이사를 역임하였으며,

1932년 한인애국단 의거 직후 김구 일행에게 피신처를 제공하였다. 이후 1944년 한국광복군과 미군 OSS부대의 합동작전을 추천하는 등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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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피치 부자의 한국 독립운동 지원

조지 애쉬모어 피치는 1883년 1월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장로교회 목사인 조지 필드 피치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1909년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중국으로 돌아왔다.

애쉬모어는 중국 상하이에서 YMCA 간사로 활동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한국의 독립운동을 간접 지원하였다. 1918년에는 주중 미국대사 예정자 환영행사에 여운형을 초대하여 한국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중재하였고, 1919년에는 미국에서 설립된 한인구제회가 모금활동에 어려움을 겪자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구호품과 의연금을 모집하였다. 또한 상하이에 설립된 한인학교 ‘인성학교’가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하자 적극적인 모금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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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쉬모어 일가(18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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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YMCA 간사 시절의 애쉬모어 / 애쉬모어의 부인 제랄딘 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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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조계 언론사에 보낸 애쉬모어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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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쉬모어 자택 생활이 기록된 백범일지

 

애쉬모어 피치 부부와 한국 독립운동

애쉬모어는 1932년 4월 윤봉길의 상하이 홍커우공원 투탄의거 직후 피신해 온 김구·엄항섭·안공근·김철을 자신의 자택에 숨겨주었으며, 일본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부인 제랄딘과 함께 상하이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한편 안창호의 체포 소식을 듣고 프랑스 조계지 언론사와 경찰서장에게 ‘프랑스 조계지에서 일본 경찰의 불법적인 한국인 체포와 탄압을 방조하는 것은 프랑스 혁명정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질타하며 프랑스인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애쉬모어의 부인 제랄딘은 1941년 미국에서 한미협회의 후견인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을 위해 노력하였다. 1944년 애쉬모어는 일본과 전쟁에서 한국광복군을 활용하면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OSS부대의 합동작전이 성사되도록 도왔다.

애쉬모어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2년 1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문화공로훈장을, 1968년 3월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은퇴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몬트 자택에서 여생을 보낸 애쉬모어는 1979년 96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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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안 방문 당시 마오쩌둥과 애쉬모어(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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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에서 김구와 피치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1948년, 백범김구기념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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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문화공로훈장을 수여받는 애쉬모어(195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