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숨은 역사

겨울바다의 서정
- 충청남도 태안 -

겨울바다의 서정<BR />- 충청남도 태안 -

글·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겨울바다의 서정

 - 충청남도 태안 -

 


이름에서부터 평안함이 깃든 고장, 태안(泰安)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원유 유출 사고의 어두운 과거는 아직 완전하게 치유되지 않았지만, 동쪽을 제외한 3면의 바다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태안을 봄·여름 가릴 것 없이 주목받는 여행지로 탈바꿈시켰다. 무술년, 첫 여행의 시작은 태안반도의 최남단 영목항에서부터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영목항

태안에는 유난히 해변이 많다. 같은 바다를 따라 만들어졌지만, 저마다 가진 풍경은 각양각색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12월 서해를 테마로 한 걷기여행길 10선을 선정했다. 그중 한 곳이 태안 해변길, 샛별길이다. 총 7개의 코스로 구성된 샛별길은 최북단 학암포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영목항까지, 끊일 듯 끊어지지 않는 120km의 긴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조성되었다. 태안 여행의 출발지로 영목항을 선정한 이유는 바로 이점 때문이다.

영목항의 바다 건너로는 원산도·효자도·추섬·빼섬·삼형제 바위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만선의 꿈을 품은 배들이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이다. 서해 물고기들의 산란지인 천수만의 길목을 지키는 영목항은 수산업이 발달하여 바지락·소라·고동·우럭·농어 등 다양한 어종을 부담 없는 가격에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배낚시의 포인트가 산재해 있어, 안흥항과 함께 태안반도 내 손꼽히는 낚시터 중 하나다. 낚시에 관심이 있다면 뱃길을 따라 바다로 나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월척의 손맛을 느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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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목항

 

 

이름도 어여쁜 태안반도의 해변들

태안에는 해변이 유난히 많은데, 바람아래·장돌·장삼·운여·샛별·꽃지·몽산포 등 지명이 독특하고 재미있다. 영목항을 출발하여 77번 국도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바로 운여해변이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가 만들어 내는 포말이 마치 구름 같다 해서 운여(雲礖)라는 이름 붙은 이곳은 제방 안쪽에 호수처럼 고인 바닷물과 수면에 비치는 솔숲이 아름다워 사진동호인들의 출사 장소로도 유명하다. 특히 낙조가 환상적인데, 물때와 날씨를 잘 맞춰야 운 좋게 볼 수 있다.꽃지해변은 태안반도의 해변 중 으뜸으로 꼽힌다. 황포항에서 10㎞ 정도 떨어진 이곳에는 잘 단장된 해변공원이 아기자기한 산책코스를 이룬다. 또한 해 질 무렵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사이로 붉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어 보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인근에 위치한 안면도자연휴양림도 연계해 둘러볼만하다. 2㎞에 달하는 소나무숲 산책로는 솔향을 맡으며 삼림욕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휴양림 내에 식수된 수령 100년의 안면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소나무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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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여해변과 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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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자연휴양림

 

독립운동가 문양목이 태어난 몽산포

몽산포해변은 태안8경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40~50년생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솔숲엔 오토캠핑장이 갖춰져 있어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에게 특히 안성맞춤이다.

몽산포는 태안의 대표 독립운동가 문양목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77번 도로를 타고 남면 소재지를 향해 남쪽으로 달리다보면 문양목 생가터로 가는 안내판을 찾아볼 수 있다. 문양목은 1869년 6월, 바다가 펼쳐진 이곳에서 태어나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 을사늑약 체결 후인 1905년에는 하와이로 건너가 항일운동을 펼쳤으며, 1940년 12월 25일 서거하기까지 언론 활동과 교육 사업에 매진하였다. 국권회복을 위한 조직인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는 문양목의 언론활동에 기폭제가 됐는데, 특히 기관지 <대동공보>를 발행해 국내외 동포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안타깝게도 광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지만 오직 조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의 구국정신은 오늘날에도 큰 교감이 되고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03호로 지정된 문양목의 생가터는 현재 정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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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산포해변 근처 문양목 사당         

 

 

세계 어디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 절경

해안길을 따라 한참 달리면 안흥항에 다다른다. 내항과 외항으로 나눠져 있는 안흥항은 해산물 집산지이자 유람선이 떠나는 곳이다. 꽃게를 비롯해 갑오징어·갈치·우럭·대하 등 잡히는 어종도 다양하다. 외항 바로 옆에 붙어있는 작은 섬 마도는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져 경치가 아름답고 등대와 방파제가 있어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다. 외항에서 유람선을 타면 ‘서해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안흥8경을 둘러 볼 수 있다. 유람선은 안흥항을 출발해 죽도-목개도-정족도-가의도-광장각-마도-신진도를 둘러보고 다시 안흥항으로 돌아온다.

안흥항에서 길은 조개 모양으로 빙 둘러서 이어진다. 영화 촬영지로 잘 알려진 갈음이해변을 거쳐 근흥면 소재지를 지나면 파도리·어은돌·만리포·천리포·백리포로 쭉 해변이 이어진다. 사람들로 붐비는 해변이 싫다면 파도리해변과 어은돌해변이 제격이다. 만리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한결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인근에 돌을 가공해 만든 해옥(海玉)전시장도 있다. 해옥은 파도리해변에 널린 자연석 조약돌을 가공해 만든 것으로 반지나 팔찌, 열쇠고리, 조명기구 등 액세서리와 가구류에 두루 쓰인다.

해변이라고 해서 바다만 보라는 법은 없다. 천리포해변은 수목원으로도 유명하다. 1만 2천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는 천리포수목원은 국내 최초의 민간 수목원이자 국제수목학회에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했을 정도로 잘 가꿔져 있다. 한겨울에도 푸른 나무들을 볼 수 있어 휑한 가슴을 달래준다. 또 천리포항 앞에는 닭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양과 닮은 두 개의 닭섬이 있는데, 그중 하나인 섬닭섬은 썰물 때 뭍과 연결되어 장관을 연출한다.

천리포에서 더 북쪽에 위치한 신두리해변에는 자잘한 모래 알갱이들이 쌓여 거대한 언덕을 이룬 해안사구가 볼거리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면 모래가 날려 뿌연 잿빛을 띄는데, 사막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또 사구 깊숙한 곳의 두웅습지에서는 잘 보존된 습지 생태계를 살펴볼 수 있다. 이곳은 습지 보호 국제 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보호지역으로, 금개구리·맹꽁이·표범장지뱀·갯방풍 등 보존가치가 뛰어난 양서류와 수서곤충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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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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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옥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가공된 해옥

 

민족대표 이종일의 고향마을

신두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원북면 반계리 마을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이종일의 생가를 알리는 입간판이 보인다. 1858년 11월 이곳 반계리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6세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총명함을 타고났다. 1882년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와 그곳의 개화된 문물을 깨우치게 되는데, 1898년에는 최초의 한글신문인 <제국신문>을 창간하였다. 이때부터 대한자강회·대한협회·조선국문연구회 등 단체를 조직해 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경향 각지의 7개 학교장을 지내면서 교육사업에 전념하였다. 또한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오세창·권동진·최린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에 뜻을 모으기도 했다.

복원된 이종일 생가는 6칸 겹집의 L자형 목조 초가집으로 건넌방·대청·윗방·안방이 각 1칸씩 있고, 부엌을 2칸 두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당과 기념관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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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이종일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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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일 동상

태안반도는 아직 원유 유출 사고라는 어두운 과거에서 완전하게 치유되지 않았다. 그러나 주말이면 태안해안국립공원은 외지에서 온 차량들로 쉴 새 없다. 여기에는 침체됐던 태안 관광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각계각층의 노력이 한몫했다. 우리의 꾸준한 관심이 태안의 깨끗했던 옛 모습을 되돌려 놓기를 바라며 이 겨울 태안 바다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