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질환 예방을 위한
미국의 대규모 임상연구를 경험하다
글 _ 김태호 내분비대사내과 과장진료분야 _ 당뇨, 갑상선, 고지혈증, 부신, 골다공증
코로나로 1년 늦어진 해외 연수, 우여곡절 끝에 샌디에이고로 결정되다
해외 연수가 결정되어 연수지를 알아보는 중에 터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계획보다 일정을 1년 늦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가고자 했던 연수지에서 팬데믹으로 인해 당분간 연수자를 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게 되어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연수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이번 해외 연수에서 제가 연구하고자 하는 당뇨병 예방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몇몇 연구자들에게 연수가 가능한지 알아보던 중,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에서 역학 연구를 하고 계신 저명한 연구자인 Matthew A. Allison 교수에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보통 해외 연수를 준비할 때 방문하고 싶은 기관의 연구자에게 문의하면 답변이 아예 오지 않는 경우가 많고, 연수가 어렵다는 거절의 의사를 보내주기만 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Allison 교수에게 문의하는 이메일을 보내었을 때는 하루 만에 바로 답신이 와서 많이 놀랐습니다. 그 이후 연구할 내용에 대해 한 달 동안 20여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후에 최종적으로 저의 연구계획에 대해 허가받았고, 그 이후 몇 개월 동안 대학의 행정 작업을 마무리한 후 지난 2022년 여름에 가족들과 함께 연수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시작한 미국 생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샌디에이고는 미국당뇨병학회의 참석을 위해 과거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어서 어느 정도는 익숙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학 참석을 위한 1주일의 방문과 장기 연수를 위한 1년의 생활은 참 많이 달랐습니다. 출국 전에는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연수지에 도착하고 보니 현지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더군다나 저 혼자가 아니라 가장이자 아빠만 바라보고 함께 떠나온 아내와 두 아이가 있어서 미국에서의 정착의 과정 및 그 안에서의 심적 부담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먼저 연수를 와 있는 여러 선생님과 정보를 교환하고, 하나씩 하나씩 필요한 일들을 진행하다 보니 어느덧 여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연수를 떠나는 날 인천국제공항에서 기대에 찬 가족들과 한 컷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적극적인 연구 활동하는 UCSD 학풍
보통 UC San Diego 또는 UCSD로 부르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라호야 지역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UC) 시스템에 소속된 주립대학으로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명문 대학 중 하나입니다.
저를 방문 학자로 받아준 Allison 교수는 UCSD 의과대학에서 주로 심혈관질환 역학 연구를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4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한 분입니다. 교수님과의 첫 만남을 위해 병원의 연구실에 방문할 때는 엄청나게 긴장했었는데 실제로 만나보고 나니 상당히 친근하면서도 쿨한 캐릭터를 가진,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분이었습니다.
Allison 교수의 연구실은 주로 역학 연구를 하는 곳이었기에 각자의 계획에 따라 연구를 진행하고, 매주 정기적으로 저널 발표, 다른 학교의 저명한 교수들의 강의, 그리고 각자의 연구 진행 상황에 대해 발표하는 회의가 있었습니다. 미국 현지에서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많이 완화되었지만, 한동안은 온라인으로 회의를 진행하다가 점차 오프라인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연구실 회의에 참여하면서 많이 놀랐던 점은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교수와 펠로우, 대학원생, 의과대학생, 방문학자들로 정말 다양하지만, 아무런 위화감 없이 모두가 적극적으로 또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토론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았던 교수, 학생 간의 딱딱한 위계질서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수많은 연구 실적에 일조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UCSD 메디컬센터 외경
UCSD 의과대학 건물과 그 옆에 우리가 항상 토론하던 회의실이 있던 건물
연수 기간 중 함께했던 Allison 교수와 연구실 동료들
체계적인 코호트 임상 연구 데이터를 경험하다
샌디에이고로 연수 오기 전 Allison 교수와 제가 이곳에서 하려고 하는 연구 내용에 대해 계획서를 쓰고, 연구 데이터를 얻기 위해 위원회에서 계획서에 대한 심의 및 허가를 받고, 허가 이후 데이터를 신청한 후 데이터를 받기까지만 무려 7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한국과 달리 너무나 느린 프로세스에 답답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20년 이상 동안 진행된 큰 연구의 데이터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느리지만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미국의 시스템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영어 선생님은 열정이 넘치는 은퇴 교수님
UCSD에는 유학생이나 방문학자 및 그 가족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영어 회화를 위해 1대1로 자원봉사자를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여하였습니다.
저는 화학과에서 은퇴하신 Perrin 교수와 연결이 되어 매주 한 번씩 만났습니다. Perrin 교수는 70대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실험실을 운영하면서 열정적으로 학술 활동을 진행하고 계신 분입니다. 매주 Perrin 교수와의 만남은 미국인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교의 구성원들이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자기 학교를 방문한 사람과 그들의 가족까지 잘 정착하도록 돕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샌디에이고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를 찾다
샌디에이고는 겨울에도 반팔 차림으로 다닐 정도로 1년 내내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와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해서, 미국인들이 은퇴 이후에 살고 싶은 도시로 항상 거론되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많은 트레일 코스가 유명합니다. 쉬는 날에는 가족들과 함께 트레일 코스들을 걷는 것이 즐거움이었습니다. 트레일을 걸으며 태평양으로 지는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보던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최초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김하성 선수가 뛰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경기를 직관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바쁜 일상에서 정신없이 지냈지만, 이번 해외 연수를 통해 얻게 된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참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금 바쁜 일상에 묻혀서 정신없이 지낸 지 벌써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분주한 일상 가운데 문득 지난 1년간의 연수 생활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때마다 바쁜 일상에서도 마음의 여유는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이렇게 유익한 연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서울의료원 관계자분들과 연수 기간 저의 빈자리를 잘 채워준 내분비대사내과 식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