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하게 변형된 발과 발목에 대한
미국의 선진 처치를 배우다
글 _ 김기천 정형외과 과장진료분야 _ 족부족관절 질환, 족부 외상, 당뇨발, 스포츠족부질환기
코로나19로 꼬인 일정…나 홀로 연수를 떠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애초에 예정했던 연수지에 못 가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얻은 해외 연수 기회를 살리기 위해 국내 학회 일정으로 올 때 안내를 한 인연이 있는 미국 족부 족관절 학회장에게 부탁을 드렸더니 몇 개 병원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다행히 그중에 연수가 가능하다고 답변이 온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 병원(University of IOWA Hospitals and Clinics, UIHC)이 최종 연수지로 확정되었습니다. 장기 해외 연수다 보니 가족 동반으로 가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아이들의 학사 일정과 맞지 않아서 결국 2021년 크리스마스를 지나고 나 홀로 연수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이오와는 미국 중서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미국 전체 농축산물 생산의 7.5%를 담당하는 곡창지대지만 인구는 약 300만 명 정도로 상당히 적은 주입니다.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고 눈보라가 치면 눈송이가 송곳처럼 볼에 꽂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추운 겨울 날씨와 달리 어디를 가도 아이오와 주민들의 친절과 미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병원에 출근해서 길을 몰라 헤매고 있으면 누군가 말을 걸면서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미국의 관광안내 책자도 아이오와에서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은 주민들의 미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덮여 있는 UIHC 본관 및 어린이병원
아이오와 주립대학 병원 전경
아이오와 주립대학 병원에서 시작한 미국 연수
UIHC는 아이오와주에서 제일 큰 병원으로 주 안에서도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모이는 병원이었고 제가 진료하는 족부 족관절 질환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연수 당시 UIHC 정형외과에는 2명의 족부 정형외과 전문의, 3명의 장기 전임의가 있었는데 단기 연수자도 많이 다녀갔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당시 미국에서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Dr. Cesar에게 연수를 받았습니다. 브라질 출신 족부 의사로서 미국 이민 후 많은 경력을 쌓아 최근에 큰 인정받는 의사였습니다.
UIHC는 환자 진료뿐만 아니라 교육과 학술 활동에도 열심이었습니다. 미국의 의대생들은 학부를 졸업하면서 지원한 전공과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관심을 증명하기 위해 교수 연구실에서 각종 실험과 논문 저술 등의 학술 활동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Dr. Cesar의 연구실은 학생과 의사들이 모여서 연구와 토론으로 항상 활기가 넘쳤습니다.
개성과 경험이 넘치는 두 명의 지도 교수
Dr. Cesar는 남미 특유의 열정이 넘치는 의사로 진료와 연구는 물론 가정에서도 에너지가 가득한 의사였습니다. 젊은 나이에도 많은 경험을 통해 심각한 족부 족관절 변형에 대해 거의 정상 정렬에 가까운 발과 발목이 되도록 성공적인 수술을 펼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 한 명의 선임 교수인 Dr. Femino는 굉장히 섬세하게 수술하는 의사였습니다. 모든 술식에 있어서 의학적 근거에 본인만의 진료 철학을 갖고 수술에 임했습니다.
Dr. Cesar가 원숙한 경지에 오른 마스터라면 Dr. Femino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처럼 느껴졌습니다. 두 명의 개성과 실력을 갖춘 족부 전문 의사로부터 저는 국내에서 처치하기 어려웠던 심한 족부 족관절 변형의 다양한 증례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UIHC 정형외과 Dr. Cesar와 함께
아침 컨퍼런스에 발표를 맡은 날. Dr. Femino가 경청하고 있다(우측 아래)
철저한 준비 끝에 임시 미국 의사 면허를 받다
아이오와주는 저와 같이 외국에서 연수 온 의사들이 합법적으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임시 의사 면허 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경력 증명서와 신원 보증, 영어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TOEFL 점수 등의 서류를 먼저 제출해야 하며 심사 역시 까다롭고 여러 절차를 통과해야 임시 면허를 받을 수 있지만, 미국의 다른 주와 달리 직접 수술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심사를 거쳐 7월에 면허를 받은 저는 이후부터 직접 진료와 수술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해외 연수를 다녀온 많은 선생님들이 진료나 수술 참관 또는 실험실에서 연수 기간을 보낸 것과 달리 저는 임시 면허를 토대로 직접 환자 진료와 수술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의료선진국 미국이 될 수 있었던 힘은 ‘신뢰’와 ‘시스템’
연수 기간 중 미국이 의료 선진국이 된 힘이 어디 있을까, 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미국으로 의료시스템을 배우러 올까 생각했습니다. 국내에서 저의 족부 선생님 중 한 분이 당신의 미국 연수 시절 ‘이 나라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하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얻은 답은 ‘경쟁’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미국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뒤 우리나라 족부 족관절 1세대 의사로 활동하면서 ‘경쟁’이라는 단어를 품고 학술 활동과 제자 양성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저에게도 자신만의 단어를 찾아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신뢰’, ‘시스템’이라는 말을 찾았습니다. 어떤 치료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를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원하는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미국의 진료는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스템입니다. 제가 UIHC에 처음 갔을 때 그곳엔 브라질 출신 전임의 2명과 프랑스 출신 전임의 1명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온 전임의는 제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1년 3개월의 전임의 기간을 마치고 귀국했고, 이후에도 단기로 브라질과 페루에서 전임의가 왔습니다. 나이지리아, 이집트에서 온 전임의도 있었습니다. 워크숍에서는 일본과 터키, 몇몇 남미에서 온 족부 의사도 만났습니다. 프랑스와 일본 의사들은 연수 기간이 끝나면 대부분 귀국하였지만, 남미와 아프리카 출신 의사들은 대부분 해당 국가에서 촉망받는 고학력자지만 연수가 끝난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미국 의사 면허를 취득하여 거주를 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선진국에서 온 의사들은 귀국해서 미국 연수를 통해 배운 진료를 자국에서 시행하고, 개발도상국에서 온 의사들은 미국에 정착하여 본국이 아닌 미국의 발전에 기여하게 됩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고급 두뇌들이 자기 돈을 내가면서 혹은 박봉을 받고 일하면서 일하고 그중에서 더 우수한 사람들은 정착하여 미국의 발전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이런 순환 구조가 미국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 같은 시스템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순환 구조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UIHC 연수 기간 중 함께했던 전임의, 전공의, 학생 동료들과 함께
연수 기간 중 열린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가
인생의 의미를 찾는 성찰의 계기도 된 미국 연수
가족과 함께 연수를 온 선생님들과 달리 나 홀로 1년 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여러 가지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하였습니다. 외롭고 지칠 때 도와주시는 많은 분 덕분에 긴 연수 기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선진 의료기술뿐만 아니라 사람과 가족, 그리고 인생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연수 기회를 주신 서울의료원과 UIHC 관계자분, 주변에서 저를 응원해 주신 많은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