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독립기념관 12월호
이달의 기념관

후손이 전하는
독립운동가 서상교의
삶과 업적

 
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사진 이소연

 

2023년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는 학생비밀결사에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른 서상교·최낙철·신기철이 선정되었다. 

독립기념관은 지난 11월 22일, 서상교 후손 서보현 선생을 모시고 후손초청간담회를 개최했고, 

서보현 선생은 이 자리를 빌려 부친의 유품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날 인터뷰는 서보현 선생이 부친의 유품을 보충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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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부친께서 대구상업학교 5학년 재학 중 태극단을 만들어독립운동을 전개하셨는데요. 그 이전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들어볼 수 있을까요?

A. 부친께서는 생전에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잘 들려주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부친께서 남산소학교를 다니실 때의 성적표가 남아있어서 당시 아버지의 키와 체중 등 신체 측위를 알 수 있었는데요. 여기서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부친의 성적표를 보면 5학년 이후 신체 측위를 적던 ‘란’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황국 신민 맹서’, 이를테면 ‘대일본 제국의 신민이다’, ‘천황에 충성한다’ 같은 내용이 채워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들의 성적표에도 그런 내용이 실렸다는 점이 굉장히 마음 아픕니다.


Q. 태극단은 활동 시기가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전원이 붙잡혀 높은 형을 선고받는데요. 당시의 이야기를들어볼 수 있을까요?

A. 태극단은 총 26명으로 구성되었고 그 가운데 24명이 대구상업학교, 1명이 경북중학교생, 1명이 대구직업학교생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대구상업학교에 입학하여 유도부 생활을 하셨어요, 워낙 풍채가 좋으셨거든요. 이후 태극단에서 체육국장으로 선임된 것도 유도부 생활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학생운동 단체들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로 인해서 주로 연구회·독서회로 진행되었는데요. 태극단도 1942년 5월 결성해 1년여간 비밀리에 단원들을 모집하여 1943년 5월 9일 결단식을 했지만, 어떤 자의 밀고로 단원 전체가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먼저 이상호 단장이 집 천장에 둔 태극단 관련 문서가 발각되면서 일경에게 붙잡혔고, 이어서 부친이 붙잡히게 되었는데요. 이때 총 9명이 투옥되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높은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부친께서는 검사가 단기 4년에 장기 7년형을 선고했는데, 판사가 한술 더 떠서 더 높은 형량인 단기 5년에 장기 7년형을 선고했단 말이에요. 이는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였고, 성인으로 따지면 무기징역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이상호 단장은 단기 5년에 장기 10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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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부 시절의 서상교 (1941)

Q. 광복 후 출옥한 서상교 선생님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제공해주셔서 전시되었는데요. 당시 상황과 더불어광복 이후의 생활도 궁금합니다. 

A. 경찰서에 투옥되었을 당시 심한 고문에 시달리셨다고 들었어요. 이상호 단장이 붙잡히고, 며칠 후에 아버지가 붙잡혀 경찰서에 가보니 이상호 단장이 기어다니고 있었다고 해요. 아버지께서는 형무소로 이감된 이후에도 심한 고문을 받으셨는데, 1945년 8월 16일 출옥 후 집으로 돌아오셔서 8월 18일에 찍은 사진을 보면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언뜻 보면 잘 먹어서 퉁퉁해 보일 수 있는데, 심한 고문으로 부은 것입니다. 

태극단원 모두가 고문에 시달렸는데 이상호 단장은 1945년 2월 병보석으로 출옥하셨지만 그해 말에 순국하셨고, 다른 분들도 이후에 계속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도 고문 후유증으로 폐에 이상이 생겨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아버지께서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훈을 인정받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으셨고, 1969년에는 퇴학 처분으로 졸업을 못하신 아버지께 대구상업고등학교가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평생의 친구였던 김상길(金相吉, 1926~2018, 1963년 독립장) 지사와 이강훈(李康勳, 1903~2003, 1977년 독립장) 선생 등과 함께 교류하셨습니다. 집에서는 주로 서예를 하시며 시간을 보내셨어요. 글씨를 아주 잘 쓰셨거든요, 힘도 있으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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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옥 후 서상교의 모습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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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교의 서예 용구(좌), 서상교의 서예 작품(우)

Q. 2018년 3월 13일, 부친께서 돌아가신 이후서울현충원 국립묘지에 안장되셨습니다. 묘비석 뒷면에아버지를 대신하여 태극단원의 이름을 새기셨다고요?

A. 말씀하신 대로 부친께서는 서울현충원 국립묘지에 안장되셨는데, 제가 살펴보니 이상호 단장만 무후선열제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고 다른 분들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 묘비석 뒷면에 태극단 활동을 함께하신 이준윤(李浚允, 1925~1943, 1991년 애국장), 이원현(李元鉉, 1926~1945, 1991년 애국장), 이상호(李相虎, 1926~1945, 1963년 독립장), 윤삼룡(尹三龍, 1925~1947, 1990년 애족장) 선생의 이름을 새겨드렸습니다.


Q. 흔쾌히 후손초청간담회 참석을 결정하시고 자료 기증의사를 밝혀주셨는데요. 끝으로 부친의 자료를 기증해주신소감이 궁금합니다.

A. 저는 2018년 4월 1일부터 2021년 4월 1일까지 독립기념관 이사로 활동하였습니다. 당시에도 부친의 유품을 모아 독립기념관에 기증할 의사가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번 2023년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전시를 계기로, 아버지의 이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고, 여러 곳에서 초청해주셔서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하였습니다.

독립기념관에서도 ‘이달의 독립운동가’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부친의 자료 관련하여 연락을 주셨는데, 그때 사진 자료 몇 점을 먼저 전달하고 이후 후손초청간담회 때 대다수의 자료를 기증하겠노라고 결정하였습니다. 이렇게 뜻깊은 자리가 마련되어 기쁘고, 이번에 기증한 자료들이 차후 전시 및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후손으로서 정말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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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교 후손 서보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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