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독립기념관 10월호
사(史)적인 여행

백제부터 근현대까지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충청남도 공주

 

글·사진 박광일 (역사여행작가·여행이야기 대표)

 

‘공주’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 문화와 역사부터 떠오른다. 

하지만 이곳은 조선시대 충청도의 중심지기도 했으며, 예로부터 물길이 좋아 중요한 교통 요충지이자 상업의 중심지였다. 

선선한 바람을 따라 걷기 좋은 10월, 공주 곳곳에 숨어있는 사사롭고도 역사적인 이야기를 찾아 나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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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정사 문루

조선시대와 근대의 역사를 한눈에, 제민천 일대

조선시대 공주에는 도청 역할을 하는 충청감영, 시청 역할을 하는 공주 관아가 제민천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아쉽게도 이러한 옛 모습은 지금은 거의 사라져서 일부 장소에서만 살펴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정문 쪽에 자리한 ‘포정사 문루’이다. 이는 옛 충청감영의 정문 역할을 하던 건물로. 1980년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93호 포정사 및 삼문으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충청감영에는 50여 채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선화당과 포정사 및 삼문, 부속건물 1채 만이 남아있다.

또한 제민천 일대에는 근대의 공주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건물도 있는데, 바로 ‘공주역사영상관’이다.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외관에 장식이 많고 화려하다. 이 건물은 본래 1923년 처음 지어졌고, 당시에는 충남금융조합 건물로 쓰였다. 그러다가 1932년 이후에 공주읍사무소, 그리고 공주시청으로 쓰였다. 지금은 건물의 1층을 전시 공간으로 꾸며 놓았으며, 2층에는 옛 읍사무소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공주역사영상관은 근대의 모습이 찾아보기 힘든 공주에서 역사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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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역사영상관 외관(좌), 공주역사영상관 내부(우)

Tip 1. 조선 후기 충청도를 대표하는 도시였던 공주

우리나라의 ‘도’ 이름은 그 지역의 중요한 두 도시 앞 글자를 따서 붙였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에서 온 이름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을 겪으며 충청도 지역에 약간의 변동이 일어났다. 충청도의 감영이 있던 충주를 대신해서 공주에 지금의 도청에 해당하는 감영을 설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충청도를 ‘공홍도’로 부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공주의 위상은 조선 후기 내내 이어졌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이 전주를 장악한 뒤 공주로 향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공주의 모습은 1932년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며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이처럼 근대 역사가 시작하는 시기에 충청도를 대표하는 도시는 공주였다고 할 수 있다.


포정사 문루 주소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0-8


공주역사영상관 주소 & 관람 시간

충남 공주시 우체국길 8  |  오전 10시~오후 5시

* 매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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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신홍식 목사 동상, 공주기독교박물관(공주제일교회) 내부, 영명중학교(옛 영명학교) 

공주의 선교 역사를 한눈에, 공주기독교박물관

충청도에 포교를 하려던 서양 선교사가 거점으로 삼았던 곳도 바로 공주였다. 이러한 사실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공주 도심에 자리한 ‘공주제일교회’이다. 1898년 스크랜턴 선교사가 공주를 방문한 이후, 1901년부터 공주 지역에 선교가 이뤄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초가집을 사서 교회로 삼았고, 몇 번의 증개축을 거쳐 1931년 현재 모습의 교회를 지었다. 한국전쟁 당시 교회의 상층부가 파괴되었지만, 195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 

공주제일교회는 현재 공주의 기독교 선교 역사를 보여주는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이 교회의 신도들과 관련된 내용도 있지만, 공주제일교회 선교사가 세운 ‘영명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3·1운동, 신간회 지부 설립과 관련된 역사, 그리고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역사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공주제일교회는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인 신홍식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던 곳으로, 충청도 지역 독립운동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이처럼 공주 기독교박물관은 공주지역 독립운동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공주기독교박물관(공주제일교회) 주소 & 관람 시간

충남 공주시 제민1길 18  |  오전 10시~오후 5시

* 매주 월요일 휴관


영명학교 주소 

충남 공주시 영명학당2길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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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가옥(좌), 앨리스 샤프 가족 동상(우)

Tip 2. 광복군의 훈련을 지원한 프랭크 윌리엄스

공주제일교회에서 활동한 선교사 가운데 우리가 기억했으면 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선교와 함께 공주 지역 농업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던 프랭크 윌리엄스(Frank Earl Cranston Williams) 선교사이다. 그는 선교를 통한 독립운동 말고도 우리의 독립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영명학교의 교장을 맡았던 그는 1940년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추방되었고, 이후 인도 뉴델리 근처에서 인그램 학교를 설립해 교육 선교를 이어갔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연합국을 지원하기 위해 인도-미얀마 전선에 광복군 9명을 인면전구 공작대라는 이름으로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광복군들이 영어를 배운 곳이 바로 인그램 학교였다. 프랭크 윌리엄스가 광복군의 훈련을 지원한 것이다. 

한편 프랭크 윌리엄스는 ‘우리암’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07년에 태어난 아들 죠지 윌리엄스에게 ‘우광복’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광복을 염원해서 지었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특별했음을 보여준다.


충청지역 교육사업에 열정을 다한 앨리스 샤프

프랭크 윌리엄스와 같이 활동했던 선교사 가운데 앨리스 샤프(Alice Hammond Sharp)도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한국 이름은 사애리시로, 남편과 함께 공주로 부임하였다가 남편은 3년 만에 작고하였고, 이후 홀로 충청도 교육사업에 열정을 다하면서 9개의 여학교를 비롯해 7개의 유치원을 설립하였다. 그가 가르친 제자 가운데 유명한 인물도 여럿 나왔다. 최초의 여성 경찰서장 노마리아가 대표적 인물이다. 유관순 또한 그가 공주 영명여학교에서 2년 동안 가르친 제자이다. 게다가 그는 유관순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서울 이화학당 진학을 이끌었고, 이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한편 앨리스 샤프가 머물렀던 선교사 사택은 영명학교, 곧 영명중고등학교 근처에 남아있다. 2층의 단아한 건물로 현재는 보수 공사 중인데, 근처에 그의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패널과 기념물이 있다.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가옥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쪽지골길 18-13


앨리스 샤프 가족 동상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쪽지골길 18-13 (선교사가옥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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